논쟁2 반대

"상환 능력 없어도 대출? 대부업체 배만 불릴 수도"

[논쟁 / 기본대출 도입 - 반대]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1.06.21 13:13최종 업데이트 21.06.2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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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대출은 금융이나 대출이 아니다. 경제 이론 측면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금융은 돈을 빌려주고, 그에 따른 이자를 받는 것이다. 대출자가 돈을 갚을 수 있을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이런 식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으면 이건 복지정책으로 봐야 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권우성


"(신용) 심사를 하지 않겠다면, 대출이 아니라 일회성으로 1000만원을 지급하는 게 더 낫습니다. 잘못하면 대부업체 배만 불려줄 수 있어요. 돈을 갚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은 금융시장에서 분리해 도와줘야 합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답답한 감정을 토해내듯 이렇게 말했다. 최근 금융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1000만원까지 무심사·저금리로 대출해주는 기본대출 구상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기본대출이 금융소외계층을 도와주는 제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기본대출이 자칫 잘못하면 불필요한 대출을 낳고 상환 불능으로 이어지면, 오히려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이력을 불문하고 돈을 빌려준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돈을 갚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대출해서는 안된다"라며 "만약 기본대출이 시행돼 1000만원을 빌렸는데 잘 갚지 못하면 (신용도가 떨어져) 기존의 금융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공정거래위원회 자문위원, 한국경제학회장 등을 역임한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다.

이 교수는 특히 기본대출이 도입되더라도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선별 대출이 필수라고 못박았다. 그는 "저금리로 대출하면 상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출자가 돈을 벌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라며 "금융시장 이용의 비용은 낮추되, 이용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해야 기본대출 제도가 더 오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대출을 해주기보다 복지 정책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곳에 지원해야 한다"며 "기본대출을 이용해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에 쓰지 않도록 막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금융소외 계층 돕더라도 금융이력 심사해야"
 

"심사를 하지 않겠다면, 대출이 아니라 일회성으로 10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더 낫다. 앞으로 소득이 줄어 돈을 갚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은 금융시장에서 분리해 도와줘야 한다. 대출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제대로 대출해줘야 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권우성

  
- 기본대출에 대해 금융정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는데. 

"기본대출은 금융이나 대출이 아니다. 경제 이론 측면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금융은 돈을 빌려주고, 그에 따른 이자를 받는 것이다. 한쪽에선 지금 써야 할 돈보다 많은 돈이 있고, 다른 한쪽에선 돈이 모자란 상황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대출자가 돈을 갚을 수 있을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이런 식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으면 이건 복지정책으로 봐야 한다. 돈을 빌려주고 받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 신용 심사 없이 누구에게나 돈을 빌려준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 같다. 

"저금리여서 돈을 잘 갚을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력을 불문하고 돈을 빌려준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능력은 있는데 환경 때문에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해 금융시장이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금융이력을 참고하는 것은 중요하다. 금융이력이 없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력을 쌓아가면서 금융시장에 건강한 참여자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이게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면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식이다."

- 금융이력을 보지 않는 대출은 복지정책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심사를 하지 않겠다면, 대출이 아니라 일회성으로 10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더 낫다. 현재에도 미소금융 등 정책성 대출은 여러 가지 있다. 이 경우에도 이를 이용해 대부업 대출을 메우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한다. 잘못하면 대부업체 배만 불려줄 수 있다. 앞으로 소득이 줄어 돈을 갚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은 금융시장에서 분리해 도와줘야 한다. 대출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제대로 대출해줘야 한다."

- 그렇다면 금융이력이 없는 20대나 소득이 줄어드는 노년층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텐데.

"사실 50~60대는 돈을 잘 갚아 다시 금융시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적은 편이다. 이들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한 건 현금 지급이나 직업 교육이다. 그런데 이런 사각지대에 있는 세대에 대해서도 금융이력을 따져볼 수 있다. 휴대전화 요금 납부내역 등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기본대출은 이런 것도 배제한 채 금융이력을 묻지 않고 무조건 빌려주도록 설계돼 있다. 금융소외 계층을 도와주는 제도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기본대출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정책성 서민대출, 결과가 좋지 않다"
 

"청년층이 기본대출로 돈을 빌려 도박에 사용할 수도 있다. '어차피 집도 못 살 것 같은데 가상화폐에 투자하자'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걸 위해서 1000만원을 빌려주면 안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권우성


- 아직 이자율 등 상세 사항이 확정되지 않아 혼란이 더 큰 것 같다. 

"사람들은 기본대출로 돈을 빌린 다음 '기본'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약속을 할 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주고 서로 행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어떤 약속이나 정책이 가장 안 좋은 경우는 구체성이 모호할 때다. 만약 기본대출을 받은 사람이 상환을 하지 않으면 신용도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부분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금융이력이 없거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겠다는 것은 금융 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신용을 쌓을 충분한 기회가 없었던 청년들을 위해 대출 때 가산점을 준다든지, 신용도를 다양한 방법으로 입증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가야한다. 저금리로 대출하면 상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출자가 돈을 벌 가능성이 있는지다. 금융시장 이용의 비용은 낮추되, 이용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해야 기본대출 제도가 더 오래갈 수 있다."

- 최근 발의된 기본대출법에서는 연체율을 10%로 가정했는데, 적정하다고 보나.

"대출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청년층이 기본대출로 돈을 빌려 도박에 사용할 수도 있다. '어차피 집도 못 살 것 같은데 가상화폐에 투자하자'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걸 위해서 1000만원을 빌려주면 안된다.

만약 기본대출이 시행돼 1000만원을 빌렸는데 잘 갚지 못하고 (신용도가 떨어져) 기존의 금융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미국의 경우 소액대출로 청년층이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 등 정당한 사유에 대해 대출을 지원해주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2019년 정책성 서민금융상품 관련 KDI 보고서를 보면, 장기적으로는 대출을 이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신용등급 등이 더 나빠졌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민간 금융시장에서 잘 살아남은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내는 '생존자 편향의 오류'가 포함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햇살론 등 특화된 대출 프로그램들의 결과가 보통 좋지 않다. 대출받는 사람들이 조금 느슨하게 갚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등생도 이번 성적은 내신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하면 열심히 안 하지 않나. 사후적으로 이런 프로그램들에 대해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통계 처리를 할 때 일정한 조건을 마련해 적용하면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사실상 어떤 통계 방법론이라도 트집을 잡으려면 모두 잡을 수 있다."

- 그렇다면 기본대출도 정책성 서민금융상품처럼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 대출 전에 심사를 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곳에 지원해야 한다. 기본대출을 이용해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에 쓰지 않도록 막는 장치도 필요하다. 1000만원 대출을 활용해 사회적으로 점프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내는 절차가 필요하다. 설계를 잘해야 한다. 무조건 대출해줘선 안 된다. 자유롭게 돈을 나눠주면 유용하게 쓸 것이라는 식이면 안된다."

"정부가 100% 보증? 은행도 해이해 질 것"
 

"1000만원 대출을 활용해 사회적으로 점프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내는 절차가 필요하다. 설계를 잘해야 한다. 무조건 대출해줘선 안 된다. 자유롭게 돈을 나눠주면 유용하게 쓸 것이라는 식이면 안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권우성

 
- 기본대출법에 따르면 정부가 대출에 대해 100% 보증해주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보증률이 100%라면 신용보증기금 등 보증기관은 대출자를 심사할 필요가 없게 된다. 시장경제를 공부하는 입장에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CDS(신용부도스와프)와 관련돼 있는데, 부도에 대한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는 구조여서 일면 안전해 보인다는 게 특징이었다. 당시 투자자들은 금융회사들이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몰랐는데, 이후 (숨겨진 CDS가 드러나면서) 없던 부채가 마구 발생해 문제가 됐다. 

예를 들어 보증률이 10%면 금융회사의 책임은 90%가 된다. 기업에 대출해준 경우 은행 대출 담당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 등을 방문해 들여다본다. 그런데 이 채권이 CDS 형태면 은행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 중소·서민 쪽은 다른 나라에 비해 보증 비율이 높다. 이렇게 되면 (부실에 대비한)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보증 부분은 부실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대차대조표 부채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 기본대출의 재원은 정부와 지자체, 금융회사의 출연금 등으로 충당한다고 하는데, 이에 한국은행도 시중은행에 저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어떤 복지제도든 한은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통화와 관련해선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다른 나라의) 신뢰를 얻는 데는 10년이 걸리는데, 신뢰를 잃는 데는 하루면 된다. 기본대출에 통화당국을 개입시켜 언제든 금고가 텅 빌 수 있다는 신호를 주게 되면 전체 경제가 다 무너질 수 있다. 하나의 복지정책을 위해 그렇게 위험하게 가서는 안된다. 차라리 세금을 더 걷어 출연금을 충당하자고 하는 게 낫다."

- 정상 상환을 유도하려면 일자리 연계 대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기본대출법에는 그런 부분이 빠져있다. 행정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라는 설명이 있는데 어떻게 보나.

"가장 중요한 것이 일자리 연계다. 일자리 연계에 들어가는 비용을 과도한 행정비용이라고 치부해 없애면 안된다. 기본대출에 들어가는 돈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꼭 필요한 비용이다. 예를 들어 재난지원금의 경우 소득에 따라 다르게 주지 않았나. 이때도 행정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보편지급으로 가자고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국세청에서 소득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1000만원을 무심사로 대출해주면, 결과야 뻔하다. 그나마 착한 사람들은 가상화폐 등에 투자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엔 비생산적인 유흥 등에 탕진할 수 있다. 금융시장의 작동원리를 활용하면서 사회적인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야 하는데, 사회적 목적 달성만 이야기하고 금융시장의 작동원리를 무시해버리면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지구상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중력 법칙을 생각하면서 어떤 계획을 짜야 한다. 계획만 세우고 중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떨어져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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