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2

3040 열광하는 '슬램덩크',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

[당신에게 '슬램덩크'란?] 각본 없는 드라마와 '중꺾마',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매력

23.01.11 18:32최종 업데이트 23.01.1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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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매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이 심상치 않다. 만화 '슬램덩크' 완결편이 나온 지 26년 만의 극장판이면서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감독까지 맡았다는 게 주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추억'을 빠뜨릴 수 없다. 스크린 속 캐릭터들이 반갑고, 그 캐릭터에 열광했던 어린시절이 떠올라 더 반갑단다. 단순 영화 흥행으로만 이야기를 채울 수 없는 이유다. 만화 '슬램덩크'와 얽힌 당신의 추억도 안녕하신가.[편집자말]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한 장면. ⓒ 에스엠지홀딩스㈜

 
지난 4일,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다. 안타깝게도 이 개봉 사실 자체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 농구도 잘 모르고, 만화 <슬램덩크>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만화를 '인생작' 중 하나로 꼽는 주변의 30, 40대들은 이 영화가 개봉 예정이라는 사실에 흥분했고,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인생작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했다나 뭐라나. 원래 이렇게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들은 그것을 당시에 즐겼던 이들과 아닌 이들의 반응이 확연하게 갈리지 않던가. 

심상치 않은 컴백, 심상치 않은 반응

실제 성적으로 보면 정말로 확연히 갈리는 것처럼 보인다. 나이별 관람 추이 통계에 따르면 30, 40대 관람객이 전체의 77%를 차지한다. 이 영화가 누구를 타깃으로 삼았는지가 명확해지는 지점이다.

"왼손은 거들뿐" 슬램덩크의 귀환... 3040 팬덤 돌풍 <연합뉴스>
3040 모여라! '더 퍼스트 슬램덩크' 흥행 팝업스토어 열려 <일간스포츠>
3040에 통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2위 <서울신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품들이 남긴 강렬한 기억들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 영화가 새로운 이야기나 후일담보다는 '이미 아는 내용', 즉 산왕공고와의 경기를 영상에 담았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30, 40대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지만 20대도 17%나 차지하고 있다. <슬램덩크>가 연재되던 당시의 직접적인 소비층은 아니지만, 인터넷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짤방(이미지 형식의 인터넷 밈을 광범위하게 통칭하는 용어. '짤림 방지'의 축약어)' 중에 <슬램덩크>가 출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왼손은 거들뿐', '포기하면 편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단념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라는 대사다),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등 마치 원작 만화를 본 것 같이 익숙한 대사들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왼손은 거들뿐", "영감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등의 명대사들이 극 중에 나온다. 그런 대사들을 직접 들으며 '어, 이 대사...' 하고 알아채는 재미가 나름 있다. 

경기에서도 삶에서도 꺾이지 않기 위하여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한 장면. ⓒ 에스엠지홀딩스㈜

 
하지만 단순히 '귀에 익숙한 인터넷 밈'을 직접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슬램덩크> 세대가 아닌 나 같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원작에서 비중이 작았던 송태섭이 주인공이 됐지만, 승산이 없을 것 같은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결국에는 승리해 내는, '반전의 드라마'를 충실히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현실에 그런 낭만적인 일이 남아있긴 하는가 싶을 정도로 냉소하던 와중에도 가끔씩은 그런 일이 때때로 벌어지긴 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2대 0으로 이겼던 독일전이 그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2대 1로 이겼던 포르투갈전이 그랬다.

물론 승패와 무관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들은 이외에도 많다. 우리가 스포츠를 보며 선수들을 응원하는 이유가 그런 모습들을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투지에도 매료되는 것 아닐까. 자기밖에 모르던 서태웅이 패스를 하는 모습이 특히 그랬다. "서태웅은 패스를 통해 성장했다"고 원작 팬들이 평하는 것을 보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정말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밖에 모르던 이가 동료의식을 알게 되고, 팀플레이를 알게 되고, 그렇게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이 아니겠나.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지난 3일 <씨네21>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트 위 강자들의 태연한 얼굴 뒤에도 각각의 삶이 있고 그곳까지 가는 길이 있다. 그건 객석에 앉아 있는 분들도 똑같아서 각자 자신이 주인공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조금은 힘이 나지 않을까 한다." 

연재가 종료되고 26년이 지난 지금, 왜 <슬램덩크>여야 하는지는 각자의 답이 있을 것이다. 농구도, <슬램덩크>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이노우에 감독의 말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게 됐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코트 위에서나 코트 밖에서 이어지는 삶에서나 소중하다는 것을. 꺾이지 않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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