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1

'더 글로리' 속 송혜교 복수, 과거와 이렇게 다르다

[기획]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로 살펴보는 여성 복수극 변천사

23.01.07 19:39최종 업데이트 23.01.0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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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 이미지 ⓒ Netflix

      
지난해 12월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가 화제다. <태양의 후예> <미스터 션샤인> 등을 집필한 스타 작가 김은숙과 배우 송혜교가 6년여 만에 다시 손을 맞잡은 작품으로 주목받은 <더 글로리>는 어린 시절 학교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잊지 못하던 주인공이 인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를 그린다. 

극 중에서 문동은(정지소 분)은 매일 박연진(신예은 분), 이사라(배강희 분), 최혜정(송지우 분) 등 가해 학생들로부터 폭행, 고문 등 갖가지 괴롭힘을 당하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담임 선생님은 "친구들끼리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경찰에 신고해서 피곤하게 만드냐"고 피해자를 나무란다. 

동은의 상처를 보고 놀란 보건교사가 "누가 그랬냐"고 신고해주겠다고 하자, 연진은 당당하게 "내가 그랬다"고 고백한다. 아무도 부잣집 딸 연진을 나무라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퇴서에 자퇴 이유를 학교폭력이라고 썼다는 이유로 교사는 학생을 교무실에서 심하게 폭행하기도 한다. 자신의 근무평가에 흠이 된다는 이유다. 주인공은 과거를 늘 되새기며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꿈꾸며 살아왔다.

학교 폭력 세태 반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 이미지 ⓒ Netflix

 
이는 학교폭력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한 '2023 치안전망'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언어폭력, 신체 및 사이버폭력, 성폭력을 포함한 전 분야에서 유지 및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2년 개정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시 반드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시키는 등 제도 보완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사적 복수를 해서라도 가해자들이 응당한 벌을 받게 만들고 싶다는 주인공의 욕망은 이러한 현실이 있기에 더욱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다.

<더 글로리>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마이네임> <킹덤: 아신전> 등 최근 몇년새 여성 캐릭터의 복수를 그리는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에도 <아내의 유혹> <인어아가씨> 등 여자의 복수극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주로 이들 작품에서 복수 동기는 남편의 바람 등 가정 내 문제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최근 <더 글로리> 등 OTT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복수극은 소재가 훨씬 다양해지고 시대상이 반영된 경향을 보인다. 
 
지난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아신전>은 조선인으로부터 차별받고 이용당했던 소수민족 주인공이 조선인들을 상대로 복수하는 내용이다. 조선에서 여진족은 조선인과 다른 천한 신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조선인도 여진족도 아닌 주인공의 가족들은 양쪽 모두에게 멸시 받으며, 양쪽의 이해관계에 의해 몰살당한다.

아신(전지현 분)은 이를 겪고 조선 땅과 여진 땅에 살아있는 모든 걸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이를 두고 국내 소수자 혐오 문제를 빗대었다는 해석이 많았다. 재중동포, 이민자, 성소수자 등 우리 사회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 속 달라진 여성성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아신전> 스틸 이미지 ⓒ Netflix

 
OTT 왓챠플레이를 통해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을 확보한 미국 드라마 <와이 우먼 킬>은 같은 집에 살았던, 시대별로 다른 개성을 지닌 아내들이 남편을 살해하는 이야기다. 극 중에서 남편들은 바람을 피거나, 어린 딸을 죽게 만들었으면서 아내에게 덮어씌우거나, 주기적으로 아내를 폭행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죽음을 자초한다.

얼핏 <아내의 유혹> 시절과 달라지지 않은 소재인 것 같지만, <와이 우먼 킬>이 시즌2까지 제작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 여성상과 성소수자 차별 등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가 보여준 새로운 여성 복수극 서사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5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문제를 액션으로, 물리적인 보복을 하는 게 아니라 치밀한 수싸움이나 계산을 통해 철저히 준비한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그동안의 여성 복수극과) 다른 지점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학교폭력 이면에 있는 사회적 불평등, 차별 문제를 전면에 끄집어낸 작품이기에 사적인 복수를 다뤘지만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런 방식으로 바뀐 것이 <더 글로리>의 특징이라고 본다"며 "기존 가족 내 복수극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 불렀다. 그건 사적인 복수가 대부분이다, 본인이 당했던 것을 똑같이 돌려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더 글로리>는 계속 들여다보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에 대해 보여준다. 피해자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도 체감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라며 "가해자의 서사를 많이 지우려고 하고. 이런 점들이 기존 복수극과 다르다"고 말했다.

같은날 황진미 평론가는 <오마이뉴스>에 최근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 콘텐츠 속 여성 캐릭터가 변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당연한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황진미는 "복수뿐만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여성 서사가 많아졌다. 판사, 검사, 형사 등 사회적 위치가 있는 여성 캐릭터도 많아졌고. 복수극이 가정 내 복수극에서 벗어난 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원래 복수를 하다보면 정의 실현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여성 캐릭터와 여성 서사가 다양하게 바뀐 지는 이미 한참 됐다. 남성 캐릭터들 위주로 출연하는 장르물에 그대로 여성 캐릭터를 넣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작품이 양산되고 있다. 이젠 장르물마다 여자 주인공을 세우지 않으면 오히려 낡아 보이는 상황이 됐다"며 "여성 복수극 보다 더 나아간 서사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나와야 하는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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