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2

학교폭력 심각성 보여준 '더 글로리', 꼭 이래야만 했나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23.01.11 05:08최종 업데이트 23.01.1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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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는 드라마 줄거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 이미지 ⓒ Netflix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가던 고등학생 문동은(아역 정지소 분). 어느 날, 동은은 체육관에서 박연진(아역 신예은 분)과 그의 친구들인 이사라(아역 배강희 분), 최혜정(아역 송지우 분), 전재준(아역 송병근), 손명오(아역 서우혁)를 만난다. 자기 대신 화장실 청소를 해달라는 연진의 부탁을 동은이 거절하자, 그들은 온갖 방식으로 동은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학교와 경찰마저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자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참다못한 동은은 자퇴를 선택하며 한 가지 결심을 품는다. 그들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교사가 된 문동은(송혜교 분). 그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강현남(염혜란 분)과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향한 복수심을 품고 있던 바둑 선배 주여정(이도현 분)의 도움을 받아 오랫동안 갈고닦은 계획을 마침내 실행에 옮긴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뉴스에서는 잊을만하면 학교 폭력 소식이 등장한다. 나날이 잔혹해지는 학교폭력 방법과 수위는 과연 한국 사회가 학교 폭력을 제대로 예방하고 처벌하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근래에 많은 대중은 학교 폭력 이후 가해자의 삶에 주목한다.

2021년,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뒤흔든 학교 폭력 고발 사건이 대표적이다. 공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는 인기 연예인과 유명 선수 중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들은 큰 논란에 휩싸인 채 업계에서 퇴출당했다. 사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에게 합당한 고통을 안기고 피해자에게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아주는 것은 마땅히 이뤄져야 할 당연한 일이다. 단지 현실에서 정의가 바로 서지 못했을 뿐이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김은숙 작가의 복수극 <더 글로리>는 바로 이 뒤엉킨 정의를 바로잡으려는 사투를 그려낸다. 

흡인력의 원천, 구조적으로 묘사된 학교 폭력

그래서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을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동은이 복수를 결심한 이유에 공감할수록 이 복수극에 빠져드는 몰입도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는 "'어,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 '네, 아무 잘못 없습니다'를 사명처럼 이해시켜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라는 김은숙 작가의 인터뷰 내용대로 학교 폭력이 단순히 한 개인의 잘못으로 인해 기인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동은이 무의식 중에 화상 흉터를 긁는 장면을 클로즈업하며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부각하거나, 학교 폭력의 다양한 양상을 묘사하며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실제로 학교 폭력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는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플래시백 장면을 통해 동은이 입은 피해의 여러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다른 맥락의 문제를 지적하는 식이다. 약국에서 동은이 윤소희(이소이 분)를 만난 후, 체육관에 불려 가 연진에게 화장실 청소를 대신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은 방관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학교 폭력의 악순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약국에서 화상 흉터를 긁으며 약을 받는 소희를 목격하고도 동은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희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자 동은은 체육관에서 그녀의 대체재가 된다. 그로 인해 복수를 다짐한 동은도 결국 착실히 계획을 실행하면서 또 다른 폭력의 당사자이자 가해자로 변한다.

학교폭력을 키우는 주변 환경 역시 고발 대상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교사 김종문(박윤희 분)이다. 그는 경찰서까지 불려 간 상황에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먼저 챙기고, 각종 가혹 행위가 피해자의 행실에서 비롯됐다고 비난한다. 동은이 자퇴서를 내자 근무평가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그녀를 구타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행실의 기저에는 학교 내에서 사고만 나지 않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깔린 듯 보인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하려는 데 그치는 것이다. 이는 가해 학생 부모의 태도를 보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자녀의 가혹 행위를 훈육하지 않는다. 그저 일을 키워서 시끄럽게 만들었다고 질책한다. 조용히 합의를 이루려는 과정에서 빈부격차 문제가 끼어드는 건 덤이다. 

장르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질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 이미지 ⓒ Netflix

 
이때 <더 글로리>가 학교폭력 장면을 전시하는 방식이 눈길을 끈다. 자칫 복수극의 정형화된 양식에 갇힐 수도 있었던 드라마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복수극은 필연적으로 복수가 이뤄지는 결말의 임팩트가 강할 수밖에 없으므로, 동기와 배경을 쌓아나가는 초중반부 내용이 지루하거나 답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글로리>는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는다. 동은이 계획대로 복수를 실천하는 과정 사이사이에 짧은 호흡으로 과거 장면을 플래시백처럼 삽입하며 복수의 진행과 이유를 병치한다. 그 결과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묘사와 설정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전개 속도는 자연히 빨라지고, 극의 흡인력 역시 더욱 강해진다.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파멸시키려는 동은의 계획이 학교 폭력과 쌍을 이루고 있기에 드라마의 전반적인 구조는 더 인상적이다. 그녀는 본인이 겪은 학교 폭력의 수법을 고스란히 역이용해 가해자에게 되돌려줄 계획이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지위로 고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였던 김종문에게 복수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1부에서 결과가 명백하게 드러난 몇 안 되는 복수 중 하나이기에 유독 의미심장하다. 동은은 자신이 교사가 된 사실을 옛날 선생님께 알려드리며 그가 자신의 악행이 탄로 날까 봐 불안에 떨도록 만든다. 또 학교 후배로서 종문의 아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아버지에 대한 의심을 불어넣으면서 가족 관계를 파탄 낸다. 

이에 더해 자신이 고통받은 수법으로 연진 일당을 궁지에 몬다. 일단 방관자와 피해자였던 경험을 살려 가해자 간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들 사이에도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악행에 상대적으로 덜 가담한 방관자가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동등한 친구로 대우받지 못하는 손명오를 자극해 계획에 포섭하고, 상대적으로 푸대접받던 혜정을 협박해 연진, 사라, 재준을 옥죄는 도구로 활용한다. 지옥 같던 학교라는 공간도 역이용한다. 교실이 자신만의 체육관이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모든 부모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닫힌 사회이면서 모든 권한과 힘이 교사에게 집중된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딸 예솔을 동은에게 맡겨야 하는 연진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복수 계획은 확실한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기제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복수가 절대 영광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받지 않은 당연한 처벌을 동일한 방식으로 되돌려 받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설정과 평면적인 캐릭터라는 단점

다만 <더 글로리>의 1부는 단점도 적지 않다. 아직 전체 분량의 절반까지만 공개되었기에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김은숙 작가의 복수극이라는 타이틀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목들이 곳곳에 있다. 예를 들어 너무 익숙한 설정을 주요 소재로 활용하면서 시원하고 통쾌한 스토리텔링의 힘을 허비한다. 후반부로 들어서면 중요한 갈등 소재로 출생의 비밀이 부각되고, 친부와 생부 간의 대립이 이어진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통속극으로 길이 새기 시작한다. 바둑을 활용한 복선이나 암시 등에서 두뇌 싸움을 기대한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전개는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충분하다. 

평면적인 악역 묘사와 활용법도 문제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연진 일당에게 조그만 동정의 여지도 주지 않으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에 매진하는 동은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문제는 그들을 심판받는 악역으로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묘사하면서 개성을 억누른다는 점이다. 그들은 동은이 목을 조여 오는 와중에도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 화내고 당황하고 짜증 내고, 비웃는 리액션만 보여줄 뿐 극을 주도하지 못한다. 이에 더해 빈자와 부자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듯한 묘사도 기시감을 더한다. 죄의식 없는 가해자와 상류층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보이기는 하지만, 스테레오타입에 갇혀 있는 듯한 인상이 짙다. 그 결과 동은의 계획이 진행될수록 쾌감과 반비례해 극의 긴장감은 떨어진다. 그래도 결말에서 연진을 비롯한 몇몇 캐릭터가 다르게 활용될 기미가 엿보이기에 2부를 기대할 여지는 있다. 

연출과 주제의 모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 이미지 ⓒ Netflix

 
무엇보다도 주제 의식과 충돌하는 연출법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동은을 향한 가혹 행위가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부에 화상을 입거나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하고, 학교 밖에서까지 가혹행위가 이어지는 장면은 적나라하게 화면을 채운다. 이는 동은이 겪은 고통을 전달하고 복수에 당위성을 부여하겠다는 최소한의 목적을 넘어서는 듯 보인다. 그보다는 누군가의 지옥을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고,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만 소비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폭력이 자극적으로 묘사될수록 시청자의 동정심과 증오 역시 더 강해지므로. 

이는 결국 주제와 형식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더 글로리>는 수십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기는 폭력을 경계하고, 동시에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드라마다. 하지만 작품 속 폭력은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듯 여러 차례에 걸쳐 너무나도 세밀하게 모습을 비춘다. 이는 앞서 보았듯이 장르적 재미를 보장하지만, 조심성이 다소 부족했다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도 충분하다. 혹시 모를 실제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배려해 보다 우회적인 형태로 학교 폭력을 묘사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그래도 <더 글로리>가 한 번 보면 정주행을 피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드라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탁월한 김은숙 작가의 필력과 배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의 필력은 기대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한 전작 <더 킹: 영원의 군주> 이후 칼을 갈았구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겉으로는 냉정하나 속으로는 복수심과 상처로 타들어 가고 있는 송혜교의 연기는 명불허전이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악역으로 변신한 임지연과 신예은의 재발견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덕분에 <더 글로리>는 몇몇 문제가 있기는 하나 사회비판물로서의 본분과 장르물로서의 쾌감을 모두 잡아내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16부작을 두 파트로 나누어 공개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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