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위대 선두가 든 '뒤집힌 밥그릇', 왜?

[미얀마에서 온 사진] 승려 대신 자리한 시민들의 '탁발 거부'

등록 21.06.03 16:42l수정 21.06.03 16:42l소중한(extremes88)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인들의 시위가 4월 23일 양곤(Yangon)에서 열렸다. ⓒ MPA


뒤집힌 그릇.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넉 달 동안, 현지 사진기자 모임인 MPA(Myanmar Pressphoto Agency)가 보내온 사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사진 속 뒤집힌 그릇은 '발우'라고 부르는 승려들의 밥그릇이다. 미얀마는 인구의 90%가 불교도이다. 승려 숫자도 약 5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교리를 중시하는 상좌부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미얀마에서 승려들이 발우를 들고 음식을 얻으러 다니는 '탁발'은 '오후불식(정오 이후엔 어느 것도 먹지 않는 것)'과 함께 매우 중요한 의례이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탁발은 승려들뿐만 아니라 신도에게도 중요한 의식이다. 신도들은 승려에게 음식을 나누면서 부처님에게 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승려든 신도든 미얀마에서 발우를 뒤집는 것은 '음식을 먹지 않겠다', '복을 받지 않겠다'는 것을 각오한, 최후의 의지를 드러내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때문에 미얀마 사람들은 '발우를 뒤집다'는 말을 '파업하다' 등의 의미로도 사용한다.

미얀마에선 2007년에 '샤프란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운동이 벌어졌다. 샤프란 혁명을 주도했던 승려들은 당시 뒤집은 발우를 손에 든 채 거리로 뛰쳐나왔다. 탁발의 의미를 되새겨봤을 때, 강한 저항의 의사를 표현한 셈이다. 시위 도중 목숨을 잃은 승려도 있었다.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인들이 4월 26일 만달레이(Mandalay)에서 시위를 벌였다. ⓒ MPA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이 4월 14일 타닌타리주 다웨이에서 시위를 벌였다. ⓒ MPA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인들의 시위가 4월 22일 핀우린(Pyin Oo Lwin)에서 열렸다. 핀우린은 가장 많은 군부대와 군사학교가 배치돼 있는 지역이다. ⓒ MPA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인들이 4월 23일 만달레이에서 시위를 벌였다. ⓒ MPA

 
하지만 2021년의 풍경은 좀 다르다. 승려 대신 시민들의 손에 뒤집힌 발우가 들려 있다. 승려들이 서 있어야 할 곳에 시민들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샤프란 혁명 때와 비교해보면 이번엔 승려들의 시위 참여 자체가 크게 줄었다. 군부 쿠데타를 비판하며 시위 대열에 합류하는 승려들도 있지만, 불교계 전체로 보면 관망하는 쪽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군부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실상 국교인 불교에 대한 비판 의식이 움트고 있기도 하다. 
 
지난 5월 30일, MPA가 전해온 사진에도 빗속 시위대의 선두에 뒤집은 발우를 든 이가 서 있었다. 앳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쿠데타 직후보다 시위 열기가 줄어들고 군경의 감시가 더욱 거세지는 와중에도 여전히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강한 의지를 드러낸 이들이 움직이고 있다.   
 

군부 쿠데타와 군사독재에 저항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이 폭우가 내린 5월 30일 다웨이에서 시위를 벌였다. ⓒ MPA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는 승려들이 4월 20일 만달레이에서 시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 MPA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인들들이 3월 22일 만달레이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사이로 승려 한 명이 눈에 띈다. ⓒ MPA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 승려들이 4월 26일 만달레이(Mandalay)의 모 카웅(Moe Kaung) 수도원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 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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