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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9.19 19:41 수정 2017.06.07 10:44
'당신은 정말 행복하십니까?' '꿈틀비행기 2호'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를 다녀왔습니다. 무엇이 덴마크를 행복 사회로 만들었는지, 8월 13일부터 22일까지 8박 9일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말]

차근차근 배워보자.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WAKE UP 호텔 앞에서 병률 삼촌에게 자전거를 배우고 있다. 선생님이 뒤에서 잡아주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태롭다. ⓒ 김영주


'할머니! 뒤에 자전거 있어요. 제발, 안 다치게 비키세요!'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은 혀끝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입이 바짝 마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덴마크 할머니와 내가 탄 자전거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할머니 옷에 새겨진 회색 줄무늬가 보일 만큼 가까워졌을 때, '이러다 정말 사람을 치겠다' 싶어 결국 본능적으로 내 몸을 넘어트려서 자전거를 멈췄다.

그렇게 할머니 뒤에서 자전거와 함께 '쾅'하고 넘어졌다. 입고 있던 청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에서 피가 났다. 다행히 할머니는 다치지 않았다. 길을 가던 덴마크 시민들이 놀란 눈으로 나에게 다가와 '괜찮으냐'고 물었다. 함께 간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목적지였던 덴마크 왕립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자전거로 덴마크 할머니를 치었다면? 상상만 해도 온몸이 굳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줬고,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지금부터 덴마크에서 겪었던 특별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내 몸은 자전거 탔던 기억을 지웠다

"어디를 가볼까?"아침 9시부터 조별로 모여 하루 일정을 짜기로 했다. 코펜하겐 시내 지도를 보며 열심히 계획을 세우는 중인 우리 조의 모습. 꿈틀비행기 2호의 기장인 오연호 선생님이 잘하고 있나 확인하러 오셨다. ⓒ 김영주


"자전거를 타고 코펜하겐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면 어떨까요?"

한 선생님(조원 중에 상당수가 교사여서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했다)의 제안에 조원들이 모두 반갑게 동의했다. 나만 빼고.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그래도 분위기 때문에 선뜻 나서서 반대할 수 없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코펜하겐 시내를 누비며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2015년 8월 15일, '꿈틀비행기 2호' 3일째 일정은 자유여행이었다. '꿈틀비행기'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 2014) 독자들이 행복사회 덴마크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떠난 견학여행이다. 지난 5월 1호기에 이어 이번 2호기에는 모두 22명의 꿈틀이들이 탑승했고, 8월 13일부터 22일까지 8박 9일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우리 조는 자전거의 도시인 코펜하겐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각자 가고 싶은 곳들을 모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어 나이가 가장 어린 내가 우리 조의 일일총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자전거의 도시인만큼 호텔에도 투숙객들을 위한 자전거들이 비치되어 있다. 우리가 묵은 WakeUp Copenhagen 호텔의 카운터에 가서 5명이 탈 자전거를 5시간 동안 빌리는 조건으로 375크로네(약 6만7000원)를 지급했다.

호텔에서 빌린 자전거는 우리나라 자전거보다 안장이 높았다. 작은 내 손을 있는 힘껏 쭉 펴야만 브레이크 손잡이에 닿았다. 자전거를 타기도 전에 식은땀부터 났다. 조원들에게는 소심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전거를 처음 배웠다. 그것도 친구 자전거로 두 바퀴 돌아본 게 전부다. 오랜만에 만난 자전거는 언제 자기와 안면이 있었느냐는 듯 도도하게 내 인사를 거부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다 계속 중심을 못 잡고 픽 쓰러졌다. 혼자서는 출발조차 어려웠다. 우리 조 선생님들이 내게 다가왔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렇게 나는 호텔 앞에서 다시 6년 만에 자전거를 배우게 되었다.

신뢰는 두려움을 이기고

불안한 움직임자전거 중심을 못잡는 나를 보며 이문희 선생님이 걱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 이병록


"와~! 됐다!!"

2시간 만에 내 자전거가 호텔을 한 바퀴 돌았다. 선생님들은 마치 갓난아기가 안간힘 끝에 뒤집기 하는 것을 지켜본 부모님처럼 환호했다. 한번 탔다고 계속 잘 타는 건 아니었다. 출발하고 나서도 몇 번씩 계속 쓰러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쓰러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문제는 내가 자전거를 타다 멈출 때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고, 차도 방향으로 자전거를 쓰러트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전하게 자전거 세우는 법도 새로 배웠다.

선생님들의 따뜻한 격려, 몇 시간이고 나를 기다리며 보여주시는 미소, 내 자전거를 따라 뛸 때 흘리는 땀방울들. 선생님들은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내게 어떻게 자전거가 움직이고, 어떤 식으로 자전거를 타야 하는지 알려줬다. 선생님들의 헌신과 사랑이 느껴져 콧등이 시큰거렸다. 그들의 무한정 지원과 응원으로 인해 나는 선생님들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신뢰는 두려움을 이기고 도전하게 하는 힘을 만들었다. 나는 페달을 용기 내서 밟았고, 처음으로 한발 짝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아갈 수 있었다. 

드디어 출발... 그리고 넘어지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내가 두 삼촌에게 집중 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 우리 조 첫 단체사진을 찍었다.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찡그림 하나 없는 선생님들의 얼굴. ⓒ 김영주


예정보다 두 시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모두가 함께 가기에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제 연습이 아닌 실전이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잔뜩 긴장하고 초집중해서 자전거를 타느라 심장이 쉴 새 없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맞는 강바람은 너무 시원했다. 이래서 다들 자전거를 타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해냈다는 점에서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도착지인 왕립 도서관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내 앞에 천천히 걷고 있는 덴마크 할머니 한 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전거가 가고 있으니 할머니가 알아서 비키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덴마크어를 모르니 소리라도 질러야 했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고, 자전거 벨을 울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다행히도 나는 할머니와의 충돌을 피해 혼자 넘어졌다.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안에 있는 서점에 가서 직원에게 약을 문의했다. 직원은 바로 밴드와 소독 티슈를 무료로 건네주었다. 무릎이 아픈 것보다 나보다 더 마음 아파하시는 선생님들 때문에 마음 한 편이 먹먹했다. '선생님들 덕택에 탈 수 있었는데 이런 모습 보여드리다니.' 올라오는 감정을 참은 채로 얼른 화장실에 가서 소독하고, 무릎에 밴드를 붙였다.

선생님들 앞에서 티는 안 냈지만 나도 많이 놀랐기 때문에 혼자 화장실에서 치료하는데 내 눈가가 빨개졌다. 다행히 밴드를 붙이니 무릎이 한결 편안해졌다. 하지만 워낙 긴장하고 타서 그런지 체력이 바로 고갈되었다. 다리가 풀려 자전거가 자꾸 비틀거렸다. 결국, 나는 30대 후반, 50대 초반의 두 '삼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자전거를 함께 끌고 가기로 했다. 남녀노소 쌩쌩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의 도시 코펜하겐에서 우리는 유일하게 자전거를 끌고 긴 거리를 걸어갔다. 

'신뢰'와 '연대'를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

처음과 달라진 청바지처음으로 혼자 자전거를 타고 넘어진 영광의 흔적. 오른쪽 무릎과 다른 것이 누가 봐도 넘어진 티가 난다. ⓒ 강수연


자전거를 못 타는 내가 자전거의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누가 봐도 힘든 도전이었고, 무리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뢰'와 '연대'가 실패를 무릅쓰더라도 도전할 힘을 주고,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몸소 배우게 되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소개한 덴마크 사회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이웃에 대한 신뢰와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기반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고 시도하며 직접 해내는 경험을 쌓는 것. 그것이 덴마크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 학교에서 농민들을 계몽시킨 그룬트비, 황무지 개간 운동을 펼친 달가스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던 것처럼. 자전거를 못 타던 내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한 것처럼. '신뢰'와 '연대'가 있다면 우리 사회도 덴마크 사회 만큼이나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 사회는 개인의 자존감과 연대의식이 살아있기 때문에 행복한 사회라고 한다. 나는 덴마크에서 꿈틀비행기를 같이 타고 온 선생님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한 사회를 경험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더불어 행복하기 위해, 우리 안의 덴마크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계신 선생님들. 그 속에서 나는 개인의 외적 조건을 넘어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나눌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자전거의 나라에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고 해낸 나 자신을 전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

'따르릉' 비켜나세요'행복사회 덴마크'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 2호'가 8월 13일~22일 덴마크 코펜하겐에 다녀왔다. '자전거의 나라' 덴마크답게 거리 곳곳에서 자전거에 몸을 실은 코펜하겐 시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덴마크에선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더 잘 피해 다녀야 한다. ⓒ 소중한


덴마크의 사회안전망을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대신 '꿈틀 안전망'을 통해 나는 '넘어져도 괜찮다'는 귀한 경험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여전히 그때 입었던 청바지 무릎 아랫부분은 찢어져 있다. 다들 넘어진 티 안 나게 한쪽도 찢어서 입고 다니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둘 생각이다. 넘어져도 괜찮으니까 언제든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자는 나 스스로와의 다짐이자 흔적이다.

당장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순 없겠지만 내가 속한 자리에서 행복 사회를 만드는 가치를 함께 나누며 희망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장기전으로 씨앗 뿌릴 준비를 하기 위해 꿈틀비행기에 탑승했고, 꿈틀비행기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하고 싶다는 열정을 얻었다. 이제 첫 발걸음을 내디뎌, 다음 주에 내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에게 덴마크 견학 보고를 한다. 앞으로 또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고민하고 도전하다 보면 또 넘어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래서 조금 더 우리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는 다른 무릎이 깨질지라도 웃으리라.

아름다운 운하를 배경으로 '찰칵'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다 같이 한 걸음이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자전거 라이딩. ⓒ 이문희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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