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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6.08.31 16:24 수정 2017.06.07 11:27
"모두 엄마랑 한 마음인 사람들인 것 같아"

꿈틀비행기 6호의 출발 공지가 뜨고 짐을 챙기면서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되었다. 가족들을 떠나 혼자서, 모르는 일행들과 열흘에 가까운 장기 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군 복무중인 아들이 정기휴가 일정을 조정하여 공항까지 동행해주었다. 아들은 집합 장소에 모인 참가자들을 진지하게 살펴보더니 내게 용기를 준다.

"엄마,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모두 엄마랑 한 마음인 사람들인 것 같아."

인천공항은 나와 우리 아들 사이엔 아린 아픔이 있는 곳이다. 이별과 만남을 이곳에서 반복했으니까.

나는 한때 극성 엄마였다. 정성껏 잘 키워보겠다고 아들이 24개월이 될 때부터 플래시 카드를 들이대던 나였다.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학원과 과외로 내몰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친 아들은 결국 중2학년이 되자 무기력에 빠졌고, 스스로를 포기하고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도 책상에 앉으면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생명력을 잃어가는 꽃처럼 시들시들 우울로 빠져들고 있었다. 

순간 아찔하여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했던 일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휘둘렀던 폭력임을 알게 되었다. 시들어가는 아들을 보고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후 아들은 스스로 다른 길을 선택했고, 나는 그것을 응원했다.

그래서 인천공항에서 안타까운 이별과 반가운 만남을 10여 년간 되풀이 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 녀석이 엄마를 배웅한다. 우리가 서로 역할을 바꾸게 되었다며 너스레를 떤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덴마크의 '행복교육'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나를 위해.

내가 꿈틀비행기 6호에 탑승한 것은 내 눈으로 직접 덴마크 사람들이 왜 행복한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꿈틀비행기는 오마이뉴스가 주최하고 오연호 대표가 리드하는 7박9일 과정의 덴마크 견학여행이다.

나는 오 대표가 덴마크에 대해 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었고 그의 강연까지 들은 터라 궁금증이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다. 덴마크는 어떤 교육제도와 교육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초등학생 때의 밝은 표정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유지되고 있을까? 나는 그 비밀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변화무쌍한 하늘이었다. 해가 떠 있던 멀쩡한 날씨인데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뿌린다. 제대로 소나기를 퍼붓는 것도 아니고 찔금찔금 우산쓰기에 미안한 정도로 비가 내렸다 맑았다 한다. 한 하늘에 파아란 하늘과 흰구름 먹구름이 공존한다.

저녁노을은 총천연색을 연출해 감탄을 자아내지만, 하루 종일 맑은 날을 보기는 힘들다. 날씨가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여름도 이렇다. 1년에 해 뜨는 날이 50일밖에 안된다고 하니, 덴마크의 날씨는 형편없다. 그런데도 덴마크 사람들은 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이들이 되었을까?

코펜하겐 숙소에서 바라본 일출. 온종일 맑은 날을 보기가 어렵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맑다가도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리는 변화무쌍한 날씨다. 1년에 해뜨는 날이 50일밖에 안 된다고 한다. ⓒ 김정희


중학교 졸업후 '옆을 볼 자유'를 누리며 인생을 설계하는 학교

우리 일행 38명은 8월9일 코펜하겐에 도착해 8월15일까지 매일 전세버스를 타고 덴마크의 행복교육 현장들을 방문했다. 숲유치원부터 초등학교, 고등학교, 에프터스콜레, 교원노조, 교육청 등 각종 교육기관과 마을공동체 뭉크스가든까지 덴마크 사람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내 가슴을 가장 설레게 한 때는 12일 오전이었다. 우리는 아침을 일찍 먹고 코펜하겐에서 남서쪽으로 버스로 1시간 정도 달리면 나오는 한 학교로 향했다. 목적지는
수드웨스트셀런드 이드래쓰 에프터스콜레(Sydøstsjællands Idrætsefterskole)다.

내가 오연호 대표의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었을 때, 우리 아들의 중학시절을 생각하면서, 가장 부러워했던 것이 바로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 제도였다. 버스 창가로 끝임 없이 펼쳐지는 밀밭을 보면서 나는 올해 3월에 오 대표의 서울 송파지역 강연을 들었던 때를 생각했다.

오 대표는 "에프터스콜레 제도는 덴마크 학생들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아닌 '옆도 볼 수 있고, 뒤로도 갈 수 있는 창의적인 야생마'로 만든다"고 강조했고, 나는 그 순간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로 그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덴마크에는 248개의 에프터스콜레가 있는데, 우리로 치면 중3을 졸업한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직행하지 않고 1년간 '옆을 볼 자유'를 누리면서 인생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덴마크의 10대 중 약 20%가 이 1년짜리 학교를 선택한다.

수드웨스트셀런드 이드래쓰 에프터스콜레("Sydøstsjællands Idrætsefterskole) 학교로 향하는 좁은 길목에 1백년은 넘었을 법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고즈넉하게 서 있다. 이 학교의 오랜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 ⓒ 김경년


오전 9시20분, 우리는 나이가 1백년은 넘었을 법한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난 좁은 학교입구 도로를 지나 드디어 이드랫츠 에프터스콜레에 도착했다. 1904년에 농업학교로 개교했고, 1970년부터 현재의 에프터스콜레로 전환된 이 학교는 136명의 학생과 28명의 교사가 근무하고 있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들은 학교마다 특성이 있는데 이 학교는 크리스천 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국·영·수 공부와 스포츠의 조화를 교육과정의 중심에 두고 있었다.

버스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널따란 천연잔디구장이다. 정규구장보다 넓어 보인다. "아, 부럽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런데 이 학교 체육 선생의 말을 들어보니 '참말로' 부럽다.

버스에서 내리자마다 첫눈에 들어온 천연잔디구장. 정규 축구구장보다 넓어보이는 이 구장이 단 20명의 여학생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 김경년


"지금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철학이 관철되는 학교

"우리 학교 학생들은 스포츠를 한 종목씩 집중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축구가 제일 인기가 많습니다. 약 60명 정도가 축구를 하지요. 그래서 이 운동장에서는 20명 정도 되는 여자들만 뜁니다. 남자들은 여기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합니다."  

이 넓은 구장이 단 20명의 여학생만을 위한 공간이라니. 부러움은 실내체육관을 둘러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풋살구장 크기의 넓고 깔끔한 실내체육관에 넋을 잃고 감탄하고 있는데, 우리를 안내하는 학생이 또 다른 문을 열어 보인다. 거기에 같은 크기의 실내체육관이 또 하나 있지 않은가?

"저기에서는 농구와 실내축구를 하고, 여기에서는 체조와 춤을 춥니다."

이렇게 넉넉한 공간에서 스포츠를 즐기면 조급함이 사라지고 절로 여유가 생기고 배려심이 생길 듯했다.

그런데 부러움은 시설만이 아니었다. 덴마크의 교육철학이 그러하듯이 이 학교의 스포츠 교육은 '지금 이미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가 관철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1주일에 4번씩, 한번에 1시간30분씩 자기가 선택한 종목의 스포츠를 즐긴다.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는 한 선생님은 말했다.

"우리는 초보자와 우수자가 함께 즐겁게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학생들이 여러 곳에서 왔기 때문에, 서로 실력이 다르기 때문에, 잘하지 않은 학생도 참여하면서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지요."

그러자 우리 일행 중에 몇몇이 말한다.

"나도 이런 환경에서 축구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학교 다닐 때 축구하면 골키퍼를 주로 봤는데, 골을 먹었을 때 친구들의 질타가 두려워 그 후 축구를 그만뒀다니까요."

듣고 보니 짠하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우리는 왜 놀이가 경쟁이 되고, 누군가에겐 깊은 상처를 남겨주게 되었을까?

'지금 이미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학비부담에서 '지금 부자가 아니어도 괜찮아'로 이어진다. 덴마크는 대학교육까지 학비가 전혀 없지만, 대학생이 되면 오히려 1인당 120만원의 '월급'을 지원비로 받지만, 에프터스콜레 과정은 사립이고 기숙형이고 선택 과정이기 때문에 학비를 낸다.

그래도 정부가 학비의 약 60%를 내주는데, 학부모는 1년에 부부수입에 따라 6백만원에서 9백만원까지 낸다. 이 학교에 꼭 오고 싶은데 6백만원을 마련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이 학교와 지자체에서 장학금을 추가 지원을 할 수 있다. 사회구성원들을 주눅 들지 않게 배려해주는 시스템은 이렇게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기숙사에 위치한 학생들의 공동 쉼터. 이곳에서 학생들은 쉬기도 하고 친목을 다지며 공동의 문제를 의논하여 스스로 해결한다. 더불어 함께 살면서 함께 문제해결을 하는 ‘삶의 학교’ 정신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 김정희


이 학교의 학생들은 다른 에프터스콜레들처럼 아침의 시작을 다함께 모여 노래 부르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 명의 학생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5분스피치를 한다.

덴마크 행복교육의 아버지인 그룬트비가 강조한 '살아있는 말'과, '살아있는 노래'를 나누면서 더불어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함께 배우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논다. 공동체 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학생들 스스로 해결한다. 그야말로 삶의 학교다.

아침 일찍 도착한 우리 일행을 위해 학교에서 준비해 놓은 다과. 손님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이 학교 학생들은 아침마다 이 공간에 모여서 다함께 노래 부르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 김경년


그래서일까? 개학한지 3일밖에 안됐지만, 우리를 안내한 학생 맨들러는 마치 몇 달째 이 학교에서 지낸 것처럼 안정감을 가지고 학교 이곳저곳을 소개했다. 그는 "축구를 좋아한다, 앞으로 축구 관련 전문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우리 일행에는 중고등학생 4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이 학교를 둘러보고 감탄하고 부러워할 때마다 나는 아팠다. 참 미안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초등학교 4학년 경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아이들이 많은 대한민국,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아이들을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나는 루저야"라는 생각을 품게 하는 사회, 우리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것일까?

그 답을 쉽게 찾지 못할 듯해 나는 더욱 우리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우리 일행은 선생님이 많았는데 몇몇 여자 선생님은 밝은 표정의 덴마크 학생들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 학교 교장선생님인 리시 브라에(Lissi Braae)씨는 63세의 여성이었는데 25년째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커피와 과일을 내주고 40분씩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교육철학과 실천사례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 중 내 마음에 새겨진 말은 "우리는 더불어 함께 하는 정신을 강조한다, 늘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이 교장 선생님은 말이 아닌 스스로의 실천으로 그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수년전 인도를 여행하던 도중 인도 청소년들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목격하고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해 그곳에 인도 최초의 에프터스콜레를 만드는 것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리시 브라에(Lissi Braae) 이드랫츠 에프터스콜레 교장 선생님. 63세라는 나이가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더불어 함께하는 정신과 나눔의 철학을 몸소 실천한 사례를 열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 김경년


"저는 인도에 에프터스콜레를 만드는 것을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지인들을 찾아가 부탁했지요. '나는 꿈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습니다. 이 일을 함께 해줄 수 있나요? 도와줄 수 있나요? 그렇게 해서 꿈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인도 에프터스콜레에는 20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한 학생마다 덴마크인 후원자가 한 명씩 있습니다."

이 지원 사업은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인도의 에프터스콜레 학생들은 대부분 불교나 힌두교 신자라는데, 기독교정신을 기반으로 한 이 학교가 그들을 조건 없이 도와주고 있었다.

감동을 머금고 이 학교를 떠나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우리는 오연호 대표의 사회로 견학 소감을 서로 나눴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점이다.

강화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를 모델로 한 꿈틀리 인생학교가 만들어져 30명의 학생들이 1학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학교의 모토는 "쉬었다 가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지금 이미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 학교를 만든 오연호 대표의 소망대로 이런 학교가 우리나라에 5년 안에 20개가 만들어지고, 10년 안에 100개가 만들어진다면,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선택의 자유를 누리면서 1년 동안 '옆을 볼 자유'를 누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점심식사를 위하여 식당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학생들.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그들의 밝고 행복한 미소가 가슴에 오래 남는다. ⓒ 김정희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주세요~

내가 덴마크에서 돌아 온지 1주일째, 이제 시차도 완전히 극복되었다. 군대에 가 있는 아들에게 면회를 가서 반가이 덴마크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 꿈틀거릴 것인가?

함께 덴마크에 다녀온 이들로 만들어진 단체 카톡방과 밴드는 '그 후 이야기'가 쉼 없이 올라온다. 내 꿈틀거림의 시작은, 내가 덴마크에서 확인한 소중한 가치를, 과거의 나 같은 젊은 엄마들을 만나 나누는 것이다.

"엄마의 지나친 사랑은 때론 폭력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주세요, 옆을 볼 자유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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