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2 09:23최종 업데이트 18.10.12 09:23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등수가 매겨졌고, 어느새 나와 우리는 그런 상황에 익숙해졌다. 내 자신이 제일 비참하다고 느낀 경험은 중학교 시절 내 오랜 친구의 수학 성적이 나보다 낮다는 이유로 잠깐의 안도감을 얻었을 때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 맞추어지다 보니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서로를 견제하고, 가축마냥 등급이 매겨져야 했다.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아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단지 시험기간이 되면 예의상 어느 정도 공부를 해서 중위권에 속했다. 가족과 친척들은 지금 하던 것처럼 하라고, 그냥 평범하게 대학 가서 취직하고 시집이나 가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운이 좋게도 (내가 열심히 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과목이 1등급인 상위권 학생이 되었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늘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대학만 가라고 이야기하던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선생님까지 날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드디어 최씨 집안에서도 검사 나오는 거야?"(그 당시 장래희망이 검사였다.)
"아이고, 우리 딸 공부하려면 많이 힘드니까 더 많이 먹어둬."
"모두 너한테 거는 기대가 큰 거 알지?"
"우리도 이제 어깨 펴고 살아보자."


와! 나에게 매겨진 등급이 단지 '1'로 바뀌었을 뿐인데, 날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달라졌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이런 관심이 좋았고,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건 한층 더 커진 기대였고, 점점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급이 '1'로 바뀌었을 뿐인데

고등학교에서 1등급 학생들은 교장선생님부터 심지어는 체육선생님에게까지 특급 대우를 받는다. 반대로 9등급 학생들에게는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갑게 대하고 심지어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몇 달 전 교무실에 우연히 들른 적이 있는데, 그때 상위권 학생들의 사진이 붙은 종이를 보면서 선생님들께서 성적 얘기를 하고 계셨다. 비참해졌다. 내 이야기의 요점은 하나다. 등급에 따라 받는 대우가 다르다는 것.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매겨진 '숫자'가 더 중요했다.

우리는 왜 항상 등급이 매겨지고, 거기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고, 굳이 서로 경쟁을 해야 하며, "너희는 친구이자 경쟁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한참 동안 왠지 모를 회의감에 빠졌다.

앞으로 1년 뒤면 대학을 가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미리 자기소개서와 모의면접을 준비하라고 과제를 종종 내준다. 자신의 취미, 특기 등 자기소개 500자 내외, 이 학과에 지원하게 된 계기 500자 내외, 학교생활 중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과 그 이유 700자 내외…. 이 질문들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제 취미는 시사에 관한 영상을 시청하고 제 생각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또한 평소에 친구들과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문제들에 관해 토론하고 그에 알맞은 대안을 모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 자기소개서를 보고 묻는다. "정말 시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네요?" 이때 내 진짜 속마음은 이렇다.

'아니요, 사실 제 진짜 취미와 특기는 총 게임이에요. 총 게임을 할 때 저는 돌격병, 즉 라이플보단 스나이퍼로 잘 쏘구요. 아, 맞다. 그리고 저는 평소에 〈아는 형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자주 봐요. 엄청 재밌거든요.'

덧붙여 그 사람들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런데요. 내 19년 인생을 어떻게 500자 내외로, 그것도 거짓 없이 설명할 수 있나요?"

나는 이때까지 내면에 진짜 나를 감추고, 아무도 모르게 나를 예쁘게 포장했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까. 그래야 앞으로의 내 인생이 핀다고 생각했으니까.

대부분의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자기소개서를 쓸 때 나처럼 솔직하게 쓰지 못할 것이다. 다들 나와 비슷한 이유로 진짜 모습은 저 깊숙이 감추고, 예쁜 포장지로 돌돌 감싸 남들에게 내보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해서 미래의 우리가 얻는 게 행복일까? 이건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꿈을 잃은 언니의 눈물

작년 겨울 새벽쯤 잠을 뒤척이다가 누군가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언니였다. 언니는 공부를 잘한다. 그래서 가족과 친척들도 나보다 언니에게 거는 기대가 더 컸다. 언니는 모 대학의 경찰행정학과에 가서 지금은 휴학을 하고, 경찰학원을 다니면서 경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나도 언니가 금방 경찰시험에 합격할 것 같았고, 언니는 어릴 때부터 경찰이 꿈이어서 정말로 경찰이 될 것 같았다. 또 나에겐 정말 우상이기도 했다. 그런 언니가 새벽에 몰래 흐느껴 울었다. 조심스레 방에 들어가 왜 우냐고 물었을 때 언니는 어렵게 나에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언니는 사실 고등학교 2학년 즈음부터 꿈이 경찰이 아니었단다. 예상치 못한 사실에 정말 놀랐지만 애써 놀란 티를 감추고, 그런데 왜 경찰행정학과를 갔냐고 물으니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거는 기대가 크잖아.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제 경찰이 꿈이 아니라고 말을 해. 솔직히 나도 옛날엔 경찰이 꿈이었으니까 경찰이 되면 나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젠 나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언니가 가는 길은 언니의 길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친척들이 만들어놓은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저는 제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엄마가 살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여태까지 우리는 밥상에 좋아하는 반찬이 놓여 있어도 남의 눈치를 보느라 좋아하지 않는 반찬들만 억지로 골라 먹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걷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미래를 핑계랍시고 우리는 어쩌면 진짜 '우리'를 잊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고, 나는 스스로에게 정말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게 맞냐고 물었다. 비로소 내면의 거울을 통해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진짜 나를 찾고 있다. 이젠 남들에겐 어렵지만 솔직하게 말하려고 한다.

"난 광고 만드는 사람도 되고 싶고, 만화 작가도 되고 싶어. 요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요리사도 괜찮다고 생각해. 난 지금 할 수 있는 게 엄청 많은 사람이거든. 뭘 할진 나도 아직 몰라."

나 자신에게 먼저 솔직해진 다음 남들에게 솔직해지는 것. 이것이 내 작은 꿈틀거림의 시작이다. 그게 몇 시간, 며칠, 몇 년이 걸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고, 앞으로도 더 힘차게 꿈틀거릴 계획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쓰인 글귀가 기억난다.

"우리에게도 내일이 온다. 그 내일은 우리의 오늘이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어떤 씨앗을 뿌리느냐에 우리의 내일이 달려 있다. 지금 곳곳에서 새로운 가치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안에 덴마크가 자라고 있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길이 아니라 내 꿈틀거림으로 만들어낸 길이기 때문에 느릴 수 있다. 그런데 느리면 어떤가. 우리는 매 순간의 꿈틀거림만 보고 가면 되는데!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묻고 싶다.

"이런 나도 이제 사랑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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