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원고료로 응원하기
등록 2019.02.05 19:58 수정 2019.02.05 20:47
홍승은님은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쓴 작가입니다.
[편집자말]
엄마는 베테랑 돌봄 노동자다. 엄마가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한 건 이혼 직후. 평생 가정주부였던 엄마는 이혼 후 차상위계층이 되었고, 그런 엄마에게 국가는 자립 활동으로 요양보호사 교육을 제공했다. 요양 기관에서 6년, 집집마다 방문하는 재가복지 9년. 긴 시간 동안 엄마는 시골에서 혼자 지내는 외할머니 집에 머물면서 할머니를 돌보며 요양보호사 일을 했다. 

얼마 전, 97세의 나이로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엄마는 할머니 집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 할머니 집은 큰 삼촌이 물려받은 공간이었기에 할머니의 죽음은 자연스레 엄마의 퇴거를 의미했다. 지난 15년 동안 엄마가 이혼한 딸이라는 낙인과 불안정한 일상을 버틸 수 있던 낙은 술이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알코올 중독으로 병든 엄마가 갈 곳은 딸인 내 집뿐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불쑥 내 일상으로 들어왔다. 
 

대물림되는 여성들의 돌봄노동 ⓒ pixabay

 
덕분에 세 가지 키워드가 연말부터 새해까지 내 화두였다. 가족, 여성, 돌봄 노동. 평생 누군가를 돌봐왔으나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해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 어느새 나는 베테랑 돌봄 노동자를 돌보는 딸이 되었다.

엄마를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함께 살아갈 긴 시간이 두려웠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내가 특별한 효녀여서가 아니라 가족이 아니면 엄마가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아픔 앞에서 이제는 희미해졌다고 생각한 '딸'의 역할이 뚜렷해졌다. 어린 시절 나를 돌보던 엄마, 엄마를 돌보는 딸. 그렇다, 신파에나 나올 법한 익숙한 모녀 관계를 나 역시 연출하게 되었다. 

하루는 엄마가 말했다. "그런데 승은아, 그런 게 있다? 엄마가 다니면서 느낀 건데,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사는 게 참 달라. 할머니들은 그래도 씩씩하게 잘 지내거든. 가족이랑 있을 때도 본인들이 그렇게 살아오셨으니까. 근데 혼자 남은 할아버지들은 정말 못 지내셔. 옛날에는 그런 게(가부장문화) 더 심했잖아. 두 부부가 다 살아계신 경우에는 할머니가 꼭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야. 내가 영감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되는데...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죽어야 하는데. 아니면 이 사람 못 사는데, 하시면서 말이야. 내가 봐도 정말 그런 것 같아."

가족이 붕괴되고 핵가족, 1인 가구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풍경이 있다. 아내, 어머니, 며느리, 딸에게 부과되는 돌봄의 대물림이다. 

A가 열 살 무렵, 그의 어머니는 목숨을 건 수술을 받았다. 깨어날 확률이 낮은 수술을 앞둔 어머니는 평생 가보고 싶었던 여행을 가거나 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고, 남겨질 A와 동생을 엄하게 교육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의 부재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이제 서른이 넘은 A는 당시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내가 없으면 어떡하니. 엄마가 죽기 전에 너네한테 가르칠 거 다 가르치고 죽어야지. 안 그러면 편하게 눈도 못 감아." 

B의 어머니는 20대 초반부터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이제 퇴직을 1년 앞두고 있다. B에게는 외국에 사는 형이 있는데, 최근 형네 부부가 아이를 가졌다. 어머니는 퇴직 후 맞벌이하는 형네 부부의 아이를 맡아주려고 외국에 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B는 평생 일하느라 고생한 어머니가 이제는 푹 쉬길 바라는데,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속상하면서도 복잡하다고 했다. B 역시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키워졌기 때문.

놀랄 때마다 '엄마'를 찾는 습관, '살아보니 아들보다 딸이 최고'라는 말, '시집살이'라는 오랜 차별 이면에는 어떤 구조가 있을까? 많은 사람은 아직도 아빠가 아닌 엄마의 돌봄을 받으며 자라고, 아들보다 딸이 노후를 더 잘 책임질 거라는 믿음이 있고, 아들보다 며느리에게 부양을 요구한다. 이혼하고 혼자가 된 엄마가 할머니를 책임지고, 비혼인 나와 동생이 엄마와 함께 살게 되고, A의 어머니가 죽음보다 가족을 걱정하고, B의 어머니가 손주를 맡는 것처럼. 양육을 위해 경력 단절되고, 병든 노모를 딸이나 며느리가 책임지고, 가족을 갈아 넣는 방식의 돌봄 노동에서 끝내 밀려나 요양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나.

우리의 삶과 노동은 서로에게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두가 아닌 어떤 성(gender)에 국한되어 있는 것만 같다. 여성의 노동은 안과 밖을 망라하고 대물림된다. 

<아픈 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연구한 백영경은 가족 관계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한국 사회처럼 돌봄의 일차 책임이 가족에게 향할 때, 특히 돌봄을 제공하던 어머니가 환자가 될 경우 가족 내 긴장감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년 여성에게 중증질환은 신체의 고통 이전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이라는 감정으로 먼저 나타나는데, 이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삶의 조건 자체를 돌아보게 만든다고 했다. 

한 사람의 부재로 흔들리는 공동체는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위태로운 공동체에 기대어 미래를 희망하기엔 우리는 언제든 취약할 수 있는 존재다. 가족(혈연)은 둘도 없는 유일한 안식처라는 인식이 있기까지 사회는 마땅히 제공해야 할 복지 제도를 모두 가족, 특히 가족 내 여성에게 부과했다.

무임금 혹은 저임금 돌봄 노동으로, 돌봄의 대물림으로. 아픔이 서로의 짐이 되지 않도록, 돌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도록, 가족을 넘어선 사회의 개입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는 1월부터 기초생활보장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조금씩 제도와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개개인 삶의 절박함에 비하면 제도는 아직 더디기만 하다. 가족부양제가 아닌 사회돌봄제로, 인식과 제도,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엄마는 내가 사는 집 근처에 동생 승희와 함께 두 칸짜리 방을 계약했다. 처음으로 엄마 이름으로 마련한 엄마의 공간이다. 막상 함께 지내보니 엄마가 반찬을 만들고 나를 더 돌보는 꼴이 되어버려 미안하면서도, 그래도 엄마나 승희나 내가 아프면 어떡하나, 고민을 떨칠 수 없다. '내가 없으면 저 이는 어떻게 사나. 하루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아야 할 텐데'라는 절박함이 사라지기 전까지 나와 우리는 아직, 겨우, 괜찮을 뿐이다.
 

 
댓글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나는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