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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2.12 10:07 수정 2019.02.12 10:07

국무총리 공관 삼청당 안의 모습. 이곳에서 막걸리 만찬이 열린다. ⓒ 막걸리학교


막걸리로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늘 막걸리만을 마시는 시골 노인이라면 혹시 몰라도, 출세한 사람이 그러기는 쉽지 않다. 술은 사람 따라 취향이 달라서, 내가 좋아하는 술을 남에게 강요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막걸리는 잘 사는 사람일수록, 높이 된 사람일수록 손님을 초대한 자리에 내놓기 만만치 않다. 싼 술로 대접한다며 인색하고 야박하다는 뒷말을 들을지 몰라서다. 그런 세상에서 막걸리만 내놓고 거의 매일 밤 손님을 대접하는 사람이 있다 해서 그의 집에 방문했다. 바로 이낙연 국무총리다.

술은 막걸리, 안주는 김치찌개
 

국무총리 공관의 살림채 뒤편에 사랑채 삼청당이 있다. ⓒ 막걸리학교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 거리의 중심에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총리 공관이 있다. 그의 집에서 올려다보이는 언덕에, 북촌 한옥과 아기자기한 카페와 오래된 골목길이 펼쳐져 있다. 그의 집 대문 맞은편에는 꼬치구이 집도 보인다. "너는 내게 꽃이고, 나는 네게 꼬치당." 꼬치구이집에 적힌 글귀다. 그도 이 집을 들렀다고 한다.

그의 집에 들어서니 굳건한 암벽이 있고, 암벽 위쪽에 두 동의 집이 서 있다. 앞 동이 살림집이고 뒷동은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채 삼청당이다. 살림집 마당에는 천연기념물 제255호로 지정된 300년 된 측백나무가 있고, 사랑채 마당에는 천연기념물 제254호로 지정된 900년 된 등나무가 있다. 이 터에 사람이 산 지가 적어도 900년은 됐다는 징표다.

나무는 누가 심었는지 모르지만, 안내판이 있다. 측백나무는 사철 푸르고 나뭇결이 좋아 정원수로 잘 심는다. 잘 여문 측백나무 열매인 백자인은 신장에 좋아 약재로도 쓰인다. 등나무는 사이가 멀어진 부부라도 이 잎을 달여 마시면 금슬이 좋아진다고 한다. 등나무가 잘 감기기 때문에 생긴 말일 것이다. 집안에 나무를 들이더라도, 함께 살아갈 사람의 건강과 안녕을 지켜주는 것이라야 세월을 견디나 보다.
 

삼청당 주련에는 '높이 있어도 욕심 없기를, 복잡해도 너그럽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 ⓒ 막걸리학교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채 삼청당의 기둥에 주련이 걸려있다.
 
壁立千仞無欲則剛 천길 벼랑은 높이 서 있어도 욕심 없으니 굳건하고
海納百川有容乃大 바다는 모든 내를 받아들여 더욱 넓어진다

송나라 때 강지가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간추려서 편찬한 <통감절요>에 나온 글귀다. <통감절요>는 주자가 높이 평가했고, 조선 선비들이 필독서로 삼았던 책이다. 바위와 바다처럼 살라는 말인데, 높이 있어도 욕심 없기를, 복잡해도 너그럽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 한 집안에 두기에는 무척 큰 글씨다.

이 집의 주인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일 저녁이면 손님들과 이 사랑채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저녁을 먹는다. 막걸리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막걸리를 마시면 자리가 부드러워지고 독주와 달리 다투는 일이 없기 때문이란다. 저녁 식사의 주요 식단은 김치찌개다. 왜냐고 물으니, 김치찌개는 많이, 오래 끓일수록 맛이 더해지는 음식이라, 손님 접대하기에 좋다고 했다.

사랑채에 손님이 들면, 주인은 손수 노란 양재기 잔에 막걸리를 따라준다. 결코 미리 막걸리를 따라 놓거나, 스스로 따르게 하지는 않는다. 더러 막걸리를 꺼리는 여성이 있다면 홍초로 색깔을 내고 도수를 낮춘 칵테일 막걸리를 즉석에서 만들어준다.

잔을 모두 채우고 나면 직접 건배사를 한다. 주인이 자주 쓰는 건배사는 한자성어인 '주경야독(晝耕夜讀)'이다.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독서한다는 뜻인데, 결코 그대로 풀지 않는다. "낮에는 가벼운 술로, 저녁은 독한 술로!"라고 풀어주고, 주인이 주경! 하면 손님이 야독!으로 건배한다. 때로 식사를 권하기 위해 '박학다식(博學多識)'으로 건배사를 하기도 한다. 이때도 "학문은 얇지만, 밥은 많이!"로 풀어, 웃음바다를 만들어 놓고 시작한다.

솔송주 설 매출 껑충 뛴 사연  
 

총리공관에 팔도 막걸리가 다 모였다. 양은잔과 찾아가는 양조장 기념잔이 놓여 있다. ⓒ 막걸리학교

 
아주 빨리 첫 잔을 비우고 나서, 다음 잔을 채우고서야 비로소 담화가 시작된다. 이날 준비된 막걸리는 초대받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초대받은 사람들 중에 좌장이 있으면, 그 좌장의 출신 지역 막걸리를 준비한다.

요사이는 팔도 막걸리를 취급하는 유통상이 있어서 그곳에 연락해 주문한다. 만약에 출신 지역 막걸리가 없다면, 바로 옆 동네 것이라도 기어이 불러온다. 초대받은 사람을 위한 배려와 관심이고, 그 지역의 이야기를 풀기 위한 실마리다. 주인은 아마도 막걸리로 대접하는 명분을 찾고 있는 게 틀림없지 싶다.

때로 좌장이 없는 수평적인 모임의 손님들이 오면, 그때는 서울 장수막걸리를 낸다. 장수막걸리에 흰 뚜껑과 초록 뚜껑 제품이 있는데, 흰 뚜껑이 국내산 쌀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집에서는 흰 뚜껑의 장수막걸리만 내놓는다.

그는 막걸리업계의 돈키호테 같은 '송명섭 막걸리'도 알고 있어서, 그 막걸리를 낼 때면 무감미료라서 덤덤하고 씁쓸하다고 소개한다. 최근에는 포천에서 만든 프리미엄 막걸리 '담은'을 주문해 손님들에게 소개하기도 하고, 1000억 유산균 막걸리도 준비해서 막걸리가 장에 좋다는 건강 상식도 강조한다.
   
솔송주를 빚어 식품 명인이 된 박흥선씨가 지난 여름에 이 집에 다른 명인들과 함께 초대돼 솔송주를 건네며, 양조장을 한번 방문해 달라고 청한 적이 있었다. 그가 그러마고 했는데, 한 달 뒤에 진짜 경남 함양 개평마을의 솔송주를 찾아갔다. 박흥선씨는 그렇게 빨리 약속이 이뤄질지 몰랐단다.

솔송주가 조선시대 성리학자 정여창 선생의 고택 마을의 술이기도 했지만, 그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찾아왔을 것이라고 박 대표는 미루어 짐작되더란다. 그의 영향력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솔송주는 2019년 대통령 설 선물으로 선정돼 나라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 뉴스에 솔송주의 설 매출이 껑충 뛰어올랐다.

그가 이 집 주인이 되면서 했던 말이 있다. 막걸리를 한 저수지만큼 마시겠다고. 자칫 술꾼인가 오해받을 수 있기에, 여간한 배포와 용기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선언하기란 쉽지 않다. 덕분에 그는 막걸리를 통해서 널리 소통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더불어 소탈하다는 평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가 평소에 막걸리 예찬론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막걸리를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
 

이낙연 국무총리가 2017년 8월 16일 저녁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지도부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해 '막걸리 회동'을 하며 건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첫째, 막걸리는 배가 불러 안주를 많이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건강에 좋습니다. 둘째, 어지간해서는 막걸리로 원샷을 외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천천히 나눠 마시며 마주 앉은 사람과 도란도란 담소할 수 있어 정을 쌓기에 좋습니다.

셋째, 주머니 사정에 좋습니다. 막걸리값이 싼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배가 불러 웬만해서는 2차를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2차를 안 가니 술 마시고도 집에 일찍 들어갑니다. 심야 귀가를 하지 않으니 가족 관계 등 삶에 문제가 없고 다음날 일에도 지장이 없습니다."

그의 막걸리 예찬론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꼭 순서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적어도 술에 있어서 수신제가를 이룬 셈이다. 그가 막걸리를 내면 아흔아홉 명은 막걸리를 마시지만, 한 명은 소주를 찾는다고 한다. 그 한 명은 그보다 더 기가 센 사람이거나, 그와 아주 친한 사람일 것이다. 친구들끼리 다섯 명만 모여도 소주나 맥주를 마시자면 아무런 저항이 없는데, 막걸리를 마시자 하면 마다는 이들이 생긴다.

술이 생산되는 출고액 기준(2013년)으로, 전체 8조8천억 원에서 맥주가 4조3천억 원, 소주가 3조1천억 원, 막걸리가 4천7백억 원으로, 막걸리가 5.3%에 불과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날 비가 오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으면 막걸리만으로 술자리를 관철하기가 쉽지 않다. 막걸리를 자유롭게 마시려면, 그것을 거절할 수 없는 사소한 핑계가 있어야 한다.

그는 막걸리를 무척 아낀다. 그가 만든 술자리는 막걸리로 시작해서 막걸리로 끝난다. 자리를 파할 때 막걸리를 남기는 법이란 없다. 그런 줄 알기에 주방에서는 파할 시간이 지나면 막걸리가 다 떨어졌다고 신호한다.

신사적인 주당들의 특징 하나는 술이 없으면 흔쾌히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는 점이다. 할 이야기는 많고 헤어지기는 싫지만, 술이 떨어졌으니 자리를 파할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명분을 들고 일어난다. 내일 마실 수 있고, 내일 또 마셔야 하니.

하찮아 보이는 막걸리가 그의 집에서는 바위처럼 굳건하게, 바다처럼 넉넉하게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소박한 막걸리를 따라서 그는 도도하게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막걸리를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가 3백 년 된 측백나무와 9백 년 된 등나무와 함께 잠시 살고 있는 이 집,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은 주점이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막걸리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공간임이 틀림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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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