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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2.21 15:57 수정 2019.02.21 17:00

지난해 4월 닛산(日産)자동차 회장인 카를로스 곤이 홍콩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 연합뉴스/AP


2018년 11월 19일, 세계 2위 규모의 자동차 왕국 르노-닛산-미쓰비시의 경영자 카를로스 곤이 일본 검찰에 의해 전격 체포되었다. 그가 전용기로 일본 하네다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대기 중이던 도쿄지검 특수부가 비행기 안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같은 시간 그의 일본 자택과 사무실에도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가장 높은 곳에서 권력과 부를 누리던 자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광경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지난 2011년 칸 총재의 추락을 떠올렸다. IMF총재이자 차기 프랑스 대통령으로 강력하게 점쳐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그가 워싱턴 소피텔 호텔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존에프케네디 국제공항 비행기 안에서 체포된 장면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더 큰 권력, 더 많은 부를 향해 나아가던 그들은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의 삶을 유린하고 짓밟았다. 구금 직후, 그들의 황금날개가 부러지게 된 원인을 설명하는 수많은 음모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 날개를 직접 부러뜨린 당사자는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칸은 숱한 성범죄를, 곤은 숱한 도둑질을 저질러 왔다. 어느 날 만인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법'이 마침내 그들을 향해 작동하자, 두 사람은 옥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국 문제는 법이 그들을 향해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지난 5년간 총 1000억 원(1년에 200억씩)의 급여를 받아온 카를로스 곤은 자신의 연봉을 절반으로 축소 신고해 세금을 탈루하고, 회사 자금을 유용한 혐의를 받는다. 그가 받은 200억 원의 연봉은 실은 잔혹한 칼잡이 역할에 대한 대가였다. 그는 한 줌의 주주들이 더 많은 이윤을 챙겨갈 수 있도록, 수많은 노동자들의 숨통을 틀어쥐었다. 수만 명을 해고하고, 남은 사람들을 쥐어짜 만들어낸 '수익'을 극소수 자본가에게 바쳤다. 그 대가로 수백 명 노동자 분의 연봉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허기진 배가 채워지지 않아 탈세하고 횡령했다. 이런 자가 맞이해야 마땅한 종말은 적절한 시점에 법이 작동하면서 마련되었다.
 
구속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경영권 다툼을 둘러싼 모함에 빠진 것이라 항변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의 죄목은 늘어나고있다. 칸이 저지른 성범죄의 목록이 소피텔 사건 이후 1년간 쉬지 않고 신문을 새로 장식했던 것과 같다. 
 
날개 잃은 그에게 낙하산을 보내줄 동지는 이제 없다. 구속 직후, 닛산과 미쓰비시사 회장직에서 해임된 데 이어 1월말에는 르노자동차에서도 해임되었고, 르노 이사회는 그에게 성과급으로 약속된 주식과 임금 970만 유로(약 124억)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가 르노의 경영인으로서 배임해 온 경비가 밝혀지면서, 그는 일본의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프랑스 감옥에 들어가야 할 상황에 놓였다. 지난 30여 년간 그가 휘둘러온 잔인한 칼에 자신의 손발이 잘린 셈이다.
 
코스트 킬러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재판 마친 후 나온 프랑스 주일 대사. ⓒ 연합뉴스/AP

 
브라질로 이민한 레바논계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카를로스 곤은 브라질, 레바논, 프랑스에서 성장했고, 고교 시절부터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아 프랑스 최고의 엔지니어 학교인 에꼴 폴리네크닉과 에콜데민을 졸업했다. 3개의 국적을 가졌고, 4개국에 저택을 두고 있으며 6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그에겐 또렷한 다문화의 뿌리와 여러 기업을 경영해 오던 부친으로부터 내려온 자본가의 뿌리가 있었다.
 
첫 직장인 미쉘린에서부터 그는 '코스트 킬러(cost-killer)'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1981년 31살 나이에 경영 악화에 빠진 브라질 미쉘린 대표로 임명된 그는 공장폐쇄와 대량해고를 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해 나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난관에 봉착한 재정상황 외에도 고질적인 문화적 폐쇄성이 조직 운영을 크게 방해한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는 다양한 국적과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배치해 조직 기능의 효율과 활력, 문화적 다양성이란 요소를 통해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그의 방식은 이후 르노를 거쳐, 르노가 지분 46%를 인수한 닛산의 경영난을 해결하는 데도 여전히 유효했다. 공장 5개를 폐쇄하고, 2만1천 명을 감원하는 동시에, 그는 동경대 출신이 절반이 넘는 임원의 60% 이상을 '물갈이'해 동질 집단들이 꾸려온 폐쇄구조를 깨갔다.
 
그렇게 닛산은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그는 일본의 국민영웅이 될 판이었다. 마치 히딩크가 선후배간 위계질서로 엄격하게 짜인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서열을 무너뜨려 4강 진출 신화를 남긴 것과 같다. 곤의 경영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이다.
 
그러나 그가 닛산과 함께 최고경영자로 일하던 르노에서 일어난 일을 보자. 2005~2006년 사이 르노에서는 노동자 10명이 자살을 하고, 6명이 자살시도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8~2009년 프랑스텔레콤에서 대량 구조조정(해고 2만 명, 직종 변경 1만 명 등) 이후 이어진 35명의 연쇄자살과 맥을 같이 하는 이 사건은 당연히 곤 회장의 강도 높은 개혁이 빚은 후유증으로 해석되었다.
 
프랑스텔레콤의 자살사태는 조직적으로 진행된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죄목으로 최고경영진이 법정구속 되는 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닛산-미쓰비시까지 영역을 넓혀 거대한 자동차 그룹을 이끌어간 곤 회장에 대해선 프랑스 법정은 죄를 묻지 않았다. 2006년 연쇄자살의 폭풍이 지나간 뒤 10년 후에 실시된 조사에서 르노사의 테크노센터에서 일하는 136명의 연구인력들이 여전히 번아웃 상태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들은 곤 회장이 세팅해 놓은 스트레스 최대치의 경영 체제 속에서 여전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일본 검찰이 그를 향해 법의 칼끝을 겨누는 현 상황을 지켜보는 프랑스 시민들은 오히려 이 상황을 반기는 분위기다. '마크롱의 비선실세'로 현재 프랑스 검찰 수사를 받는 알렉상드르 베날라도 일본으로 보내서 수사하게 하자는 농담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을 정도다.
 
낯설고, 인상적인 일본 검찰
 

도쿄지검이 입주해 있는 도쿄도(東京都) 지요다(千代田)구 소재 일본정부 중앙합동청사 제6호관의 모습. ⓒ 연합뉴스

 
일본 검찰이 자국 이해에 불리한 방향으로 자국 기업을 이끌어 가는 외국 경영인의 목덜미를 잡아 즉각 수감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대기업의 외국인 경영진을 한국 검찰이 탈세 의혹으로 전격 수감하는 광경을 본 적이 없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럴 수밖에 없다.
  
2004년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로 쌍용차를 인수한 뒤, 2009년 노조의 예측대로 알맹이만 먹고 튀어 버린 '상하이차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쌍용차에 대한 투자 약속은 이행하지 않고, 기술만 빼낸 뒤 회계장부를 조작하여 파산을 선언했다. 정부도 검찰도 그들의 사기행각에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검찰은 뒤늦게 몇몇 연구원만을 불구속 수사했을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천 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옥시의 미국인 사장 존 리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사법부는 감히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갑작스럽게 군산공장을 폐쇄하며 지역경제를 파산 지경으로 몰고 간 GM대우(현 한국지엠) 사태에서도 관리 당국의 무능함이 절실히 드러났다.
 

마크롱 반대 시위 연 프랑스 노동자들 2018년 10월 9일 프랑스 니스에서 노동자들이 마크롱 정부에 대한 반대 시위를 연 모습 ⓒ 연합뉴스/EPA

  
일본 검찰이 자국의 이해를 사수하기 위해 닛산의 내부 경영진과 협력하여 곤의 덜미를 잡았다면, 그 행동은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국익을 해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 사건을 바라보는 프랑스 시민들은 오히려, 도쿄 검찰 특수부가 보여준 단호함에 환호하는 모습이다.

3개월째 이어지는 노란조끼의 저항이 촉발된 지점도 조세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실과 조세회피처에 재산을 은닉하며 탈세하는 자본가들과 그들의 범죄를 단죄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무슨 짓을 해도 법이 건드리지 않는 구름 위에서 사는 자들, 그들이 누려온 '처벌받지 않는 특권(Impunité)'이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은 대다수 프랑스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카를로스 곤에 대한 동정론은 현재 제로에 가깝다. 언론들도 그런 여론에 따라 곤이 저지른 여죄들을 샅샅이 찾아내는 데 여념이 없다. 

상상해 본다. 노조 측 이야기에 산업은행과 공정위, 검찰이 귀 기울이고, 경영진이 저지른 불법 행각이 드러날 경우 그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을 위해 경영진을 재정비하는 모습.
 
그리고 묻는다. 대한민국 검찰, 그들은 언제까지 힘없는 이 나라의 시민들만 준엄하게 다스리고 있을 셈인가? 최근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를 본격화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4조5천억 상당의 분식회계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우리 눈앞에서 국익을 강탈하는 자본에게 이번엔 법의 칼날을 휘두를 것인가? 대한민국 검찰과 사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는 조만간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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