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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04 07:52 수정 2019.04.04 09:37

파리 시내 번화가인 샹젤리제 모습 ⓒ 연합뉴스


프랑스엔 집세를 오래 밀린 세입자일지라도 겨울철엔 내쫓을 수 없게 하는 법이 있다. 그러나 이런 프랑스식 제도적 관용은 매년 3월 마지막 날 밤까지만 작동한다. 4월 1일이 되면 세입자들은 퇴거명령이라는 현실 앞에 다시 서야 한다. 하여 "잔인한 4월"은 실존적 고통을 증언하는 표현이 된다.
 
2017년 한 해만 프랑스엔 12만6천 건의 퇴거 명령이 내려진 바 있다. 이는 10년 전과 비교해 49% 증가한 숫자다. 세입자 주거권을 위해 싸우는 시민단체들은 퇴거 명령을 받고 거리에 나앉게 되는 사람의 숫자가 올해 다시 한 번 역사적인 기록을 세울 거라고 예측한다. 4월은 또한 동절기 동안 노숙인들이 맞이해왔던 일부 시설들이 문을 닫는 시기이기도 하다. 4월이 되어, 이런 시설의 문 밖으로 나와야 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약 8000명에 달한다.
 
타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불법적인 점거를 마냥 관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길바닥에 나앉는 극단적 상황이 일상에서 이탈한 일부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들에게도 닥쳐온다면 이는 심각한 사회붕괴로 이어진다.
 
삐에르신부재단은 프랑스 세입자들의 17%가 집세를 제때 내지 못하거나, 주택 융자금을 제 때에 갚지 못하고 있다고 최근 보고서에서 밝힌 바 있다. 즉, 17%의 사람들이 잠재적인 퇴거 명령의 위협을 상시적으로 접하며 아슬아슬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숫자다. 프랑스는 여전히 유럽에서 빈곤율이 가장 낮은(13.6%) 국가에 속하며, 영국(23.2%), 스페인(22.3%) 등에 비하면 프랑스 서민들은 아직 절망을 말하기엔 이르다. 그럼에도 주거비가 주는 압박은 이들에게 이토록 심각한 실존적 위기를 안기고 있는 것이다.
 
파리 집값 12년간 '수직 상승'
 

파리의 평방미터당 집값의 진화 2006년부터 2018년까지 파리 집값의 가파른 상승을 보여주는 그래프. ⓒ 프랑스 일드프랑스 공증인협회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있다. 특히 파리의 집값은 지난 12년간 48.6% 수직 상승했다. 12년 전 1㎡에 5650유로(약 719만 원)였던 파리의 부동산 가격은 2019년 9500유로(약 1210만 원)로 급등했다. 프랑스 전체 세입자들의 수입 중 집세의 비중도 1978년엔 10%였던 것이 20018년엔 30%로 3배 증가 했고, 집세가 전체 수입의 40% 이상인 가정도 20%에 달한다.
 
1946년 270만이었던 파리 인구가 2019년 현재 210만으로 감소했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매년 1만2천 명씩 꾸준히 파리의 인구가 줄었던 것도 서민들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주거비가 원인이 되었다. 그렇게 남겨진 집들은 점점 단기 체류를 하는 관광객들의 숙박시설이 되어 부동산 소유주들의 소득을 급등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퇴거는 가난의 조건일 뿐 아니라 원인이기도 하다."
 
하버드대학 사회학 교수 매튜 데스몬드는 저서 <쫓겨난 사람들>에서 퇴거가 가진 핵심적 문제를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자신의 모든 삶이 거리로 내동댕이쳐진 사람은 영혼이 붕괴되는 경험을 하며, 일어설 힘을 상실하게 된다. 집은 인간의 생명, 자유,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주거권 강화는 따라서 가장 핵심적인 복지정책이며, 서민층 몰락을 추동하는 가장 치명적인 방법일 수 있다. 또한 가장 민감하게 민심을 자극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의 장관 청문회에서 낙마하신 분의 사례가 알려주듯이.
 
연대의 힘으로 버티는 시민들
 

거리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4월 1일 동절기 퇴거 금지기간이 끝나고, 장기 집세 미납부자들이 대거 퇴거명령을 받게되는 시기가 오자, 빈민운동 단체인 삐에르신부재단에서 주택부 청사 앞에 "거리로 나온 것을 환영합니다. 동절기 퇴거 금지 해지는 수만명의 사람들의 삶을 위협합니다" 라고 적힌 카펫을 까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 삐에르신부재단

 
지난해 11월 17일 시작되어 3월말 20번째의 '거사'를 치른 바 있는 '노란조끼' 운동의 핵심을 이루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주거권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다수다. 빠듯한 연금으로 한달을 살아내기 힘들고,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있는 은퇴자들. 계속 일을 하지만 삶은 점점 주저앉기만 하고 즐거움은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서 허덕여야 하는 젊은이들. 자기가 살아온 땅에서 계속 밀려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은 샹젤리제에만 모였던 것이 아니라, 전국의 수천 개의 원형교차로에 모여서 그들의 커뮤니티를 꾸려가기 시작했다.
 
좌파정당 '복종하지 않는 프랑스(France Insoumise)'의 국회의원이자 독립언론인인 프랑수아 뤼팡(François Ruffin)은 3일 프랑스 전역에서 개봉한 다큐영화 <나는 태양을 원해(J' veux du soleil)>를 통해 지난 11월부터 진행되어 온 노란조끼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실제 얼굴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노란조끼 운동이 시작되던 첫날부터 전국 방방곡곡의 원형교차로에 모여, 일찍이 그들이 알지 못했던 인류애를 발견하고, 두터운 연대의 힘을 축적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육성을 카메라에 담아, 미디어가 왜곡해온 노란조끼의 실제 목소리를 전달한다. 그들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더 이상 사회에서 내던져지지 않고, 각자 삶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양보할 수 없는 싸움에 나섰다. 노란조끼를 입은 중년의 여성은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는 전혀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게 아니죠, 우리가 양도했던 권력을 되찾으려는 것 뿐"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경제적 위기에 몰렸던 사람들은 동시에 정신적 소외와 절망에 처했고, 노란조끼 운동이 만들어낸 교차로라는 아지트에 모여, 비로소 사회적 가족을 만나고 인간의 공동체가 갖는 놀라운 치유의 힘을 발견했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커플이 노란조끼들 사이에서 탄생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수의 방송과 언론이 반복적으로 조작해낸 파괴자가 아니라, 진정한 공동체의 건설자로서의 뜨거운 힘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함께 모여, 노숙인들을 맞이하고, 식사를 나누고,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정부가 방치해왔던 공공의 임무를 연대의 힘으로 복원해 내고 있다.
 
지난 주말 20회를 맞은 노란조끼 시위에서 시민주거권협회의 멤버들은 노란조끼의 대열에 합류하여, 주택부 앞에 텐트를 치고 피크닉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주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거리로 사람들을 내쫓는 야만을 중단할 것과, 마크롱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대로 저소득자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지을 것을 요구했다. 

마크롱은 2017년 임기 초기에 "연말까지 프랑스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존엄한 방식으로 주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굳게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세입자들의 고통을 줄이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노숙자들을 위한 구조 기금을 오히려 축소했다. 
 
잔인한 4월, 그 결말은
 

프랑수아 뤼팡노란조끼 운동에 초기부터 합류하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온 프랑스 국회의원(FI) 뤼팡. 자신이 만든 영화 <나는 태양을 원해> 시사회에 장에서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목수정

 
마크롱 정부가 가속화 한 주거권의 위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은 교차로에서 노란조끼를 입고 빼앗긴 민중의 권력을 되찾기 위한 힘이 되어 가고 있다.
 
3월 31일자 <파리지앵>은 마크롱 측근의 말을 인용해 그가 거의 탈진 상태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전한 바 있다.
 
"그는 지금 물 속에 빠졌어요. 물에 헹궈지고, 탈수되고... 거의 번아웃에 이르렀죠. 측근들이 다 떠나고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마침내 봄은 다시 왔고, 노란조끼들은 긴 겨울을 싸우며 버텼다. 지배 권력이 잔인하게 거리로 내몬 사람들이 노란조끼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와중에 권력의 수장은 지쳐간다.
 
"그가 번 아웃 상태라면, 산재에 의한 휴직을 권고하고, 이제 우리가 권력을 찾으러 가면 되는 것 아닐까요."
 
거침없는 초선의원 뤼팡이 감독 시사회에서 만난 열광적 청중을 향해 말한다. 잔인한 권력이 일궈놓은 잔인한 4월은 번져가는 노란조끼들이 함께 들판을 물들이며 빼앗긴 태양을 되찾아 오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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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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