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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09 09:32 수정 2019.04.09 09:32
김영준님은 <골목의 전쟁> 저자로 2007년부터 '김바비'라는 필명으로 경제 관련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손 쓸 수 없이 번지는 불길지난 5일 오전 강원도 속초 장사동 일대 야산에 전날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와 임야를 태우고 있다. ⓒ 이희훈

  
지난 4월 4일 밤 발생한 고성·속초 화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다행히도 화재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 덕분에 불은 빠르게 진압되었고 그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매년 봄이면 이런저런 산불 사고가 발생한다. 1996년에 발생한 고성 산불은 산림 3834ha(약 1160만평)를 태운 참사였고, 4월 23일에 발화하여 25일에 진화됐다. 그리고 2000년에 고성군, 강릉시, 동해시 등 5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2만3794ha의 임야를 태웠고, 이 또한 4월 7일부터 15일 사이에 일어났다. 그리고 2005년에 발생하여 낙산사를 전소시킨 산불 또한 4월 5일에 발생했다.

이렇게 매번 산불이 반복되다 보니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왜 산불을 미리 막지 못하는 것인가?"

산림청에서 발간한 2018년 산불통계연보를 살펴보면 지난 10년간의 '원인별 산불발생 현황'이 나온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입산자 실화(36%)이고, 그 다음으로 논/밭두렁 소각(17%)과 쓰레기 소각(14%)이 뒤를 잇는다. 이것을 보면 역시 산불의 주요 원인은 '인간에 의한 것'이란 점을 알 수 있다.

  

09-18년 원인별 산불발생 현황,자료 출처. 2018 산불통계연보 ⓒ 산림청

 
이 통계를 보면 인적 발화요소를 모두 제거할 시에 산불의 발생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적인 요소를 모두 배제하면 산불은 일어나지 않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인간에 의한 산불이 없는 상태를 가정해보자. 산에 나무들은 늘어나고, 오래된 나무와 말라죽은 나뭇가지들, 마른 잎들 또한 늘어난다. 이런 것들은 불이 잘 붙는 연료 물질에 해당한다. 산이 오래되고 나무가 오래될수록 연료가 될 물질들도 차곡차곡 늘어난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시기가 주로 겨울-봄이란 것을 생각해보자. 이 시기에 불이 주로 발생하는 것은 그만큼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이다. 건조한 기간 동안 불이 발생했을 때에 '연료 물질'들은 더욱 건조해져 불이 붙기 좋은 상태가 된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 충분히 잘 말라서 불이 붙기 좋은 상태가 된 충분한 양의 연료 물질들. 이 조건에서 불씨가 발생하는 약간의 우연만 있다면, 언제든 불씨는 거대한 산불로 번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우연은 벼락으로 인한 발화가 될 수도 있고, 건조한 날씨로 인해 나무나 돌의 마찰로 인한 정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우연이 발생했을 때 산 전체가 급속도로 불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산불은 이해하기 어려운 특징을 가지게 된다. 발생 확률 자체를 억제할수록 산의 연료 물질은 훨씬 더 많이 증가하므로, 한 번의 우연으로 불이 발생했을 때 그 불이 파괴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1890년 이후 미국 산림청은 '단 하나의 산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늘어나는 자연발생적 연료 물질로 인해 통제할 수 없는 거대산불의 발생을 늘릴 뿐이었다.

이러한 흐름에 변화를 준 인물이 산불을 연구하던 몬타나 대학의 로날드와카모토 교수였다. 그는 1988년에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32%를 불태운 옐로스톤 화재 사건 이후의 화재정책리뷰 팀에 참여하였고, 이때의 연구를 바탕으로 의회에서 증언을 하며 산불 정책의 변경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미국 산림청은 산불의 무조건적인 예방과 방지에서 '관리'로 정책을 변경하고, 다음과 같은 문구를 그들의 홈페이지에 남기게 된다. "산불은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 홍수처럼 통제가 어렵고 막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자연의 힘입니다." (전문 링크: https://www.fs.fed.us/managing-land/fire) 이후 미국의 산불 정책은 인위적 화재는 진압하되 자연적인 산불은 방치하는 형태가 되었다. 다만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게 발화시 연료가 될 물질은 최대한 사전에 제거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인간에 의한 인위적 화재는 막아야 한다. 하지만 산불 자체는 완벽히 막을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설령 인간이 사라지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인위적 산불'의 발생을 최대한 통제하면서도, 산불 자체가 인간에게 미칠 피해는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번 산불은 더 큰 피해를 막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사고 발생 자체를 관대하게 허용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사고 발생을 아예 틀어막으려 하는 경우 재난적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산불은 잘 보여준다.

사고를 완벽히 막으려다가 더 큰 위기를 불러온 사례는 경제에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야기 할 때 '탐욕'을 주로 이야기 하지만, 그 원인이 된 금융상품들은 최초에 리스크를 줄이고 철저히 통제하기 위한 상품들이었다.

신용파생상품의 등장 덕분에 어지간한 리스크는 이제 관리 가능하다고 믿었고, 이런 혁신으로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 위기 이전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렇게 리스크가 통제 가능해지고 분산화로 더욱 안전한 세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많은 리스크를 짊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한 번의 우연으로 거대한 산불이 일어난 것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또한 그렇게 터지고 말았다.

사고 자체를 막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염두해둘 필요가 있다. 오히려 '불가능한 것을 막으려는' 시도가 막을 수 없는 거대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피해의 최소화'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고,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위기는 막는 것이 아니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으신 이재민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빠른 시일 내에 생업에 복귀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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