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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5.28 08:31 수정 2019.05.28 08:31
홍승은님은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쓴 작가입니다.[편집자말]
 

Nikki Kaufman의 작품 Polyamory ⓒ vimeo


급성 장염에 걸린 A를 부축해서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입구에서 병원 관계자가 물었다. "환자와 어떤 관계세요?" 동거인이라고 답하자 아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아내가 아니라 애인이라고 답하자 결혼할 사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A가 무척 고통스러운 상태였다. 곧 결혼할 사이라고 얼버무리고 나서야 A의 보호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나와 A와 B는 동거인이자 가족이다. 사람 셋, 강아지 넷. 총 일곱 식구가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다. 비혼주의자 셋이 산다고 하면 "친구들이에요? 대학 동기? 직장 동료?"라는 질문을 듣는다. 둘이 아닌 셋은 연인이 아닐 거라는 확신에서 나온 말이다. 그럼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한다. "아니요. 제 애인들이에요."

조금 자세하게 말하자면 나는 A와 연인이고, B와도 연인이며, A와 B는 메타아모르(애인의 애인)이다. 우리는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 관계를 맺고 있다. A와는 6년째 B와는 3년째 만나고 있고, 셋이 함께 산 지는 1년이 넘었다. A와 B와 나는 결혼제도를 이탈하게 된 역사가 비슷하다. 부모님의 갈등, 주위 결혼 생활의 비극, '정상 가족'과 '정상 연애' 규범에 대한 반감,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이 모여서 다른 방식의 사랑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애인이 둘이나 돼? 무책임한 거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 중 한 명과 헤어지고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오겠지. 자주 듣는 염려와 비난은 내가 애인 한 명을 만나며 동거할 때 들었던 말과도 비슷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그렇지, 무슨 동거야. 나중에 결혼할 거지?' 애인 없이 혼자 지낼 때 듣던 말과도 닮았다. '젊은 애가 연애도 안 하고 뭐하니. 얼른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야지.' 결혼하지 않은 상태, '정상'적인 혼인을 맺지 않는(못하는) 관계는 가볍고 불안정하고 일시적이고 무책임하다는 편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수군거림은 단지 소문에 그치지 않는다. 제도와 관습에도 편견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의 상황처럼 우리는 서로의 의료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만약 세 사람 중 누군가 갑자기 수술이라도 받게 된다면 남은 두 사람은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도 없다. 동성 애인과 동거하는 D도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D가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병원에서는 함께 사는 애인을 보호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가장 긴밀한 관계였지만, D와 애인은 아무 사이가 아니게 취급되었다. 결국 D는 수술을 받기 위해 1년에 한 번 볼까 하는 부모님을 소환해야 했다.

집을 구할 때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었다. 대부분의 집은 부부 방(안방)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서 세 사람이 각자의 공간을 가지면서도 함께 살 조건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많은 경우 전세자금 대출은 가족 단위(특히 신혼부부)로 설계되어 있었다. 지금 사는 월셋집의 재계약을 앞둔 요즘,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냥 둘 중 한 사람과 혼인신고 하고 전세자금 대출받을까?" 비슷한 고민은 셋이 아닌 둘이 사는 동거 커플이나 동거하는 지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인지, 서류상으로만 혼인신고하고 대출을 받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평등한 혼인권을 꿈꾸는 비혼주의자 
 

"우리는 이제 법적인 부부입니다"24일 오전 대만 타이베이시 신의구청에서 린쉐인(왼쪽)과 위안샤오밍이 예복을 입고 결혼 등기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사회보장제도 앞에 서면 한숨이 나온다. 30대를 통과하며 질병, 실업, 노후 등 삶의 다양한 변수를 생각하게 되는데, 한국의 사회보장기본법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가정이 건전하게 유지되고 그 기능이 향상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가정은 이성애 남녀의 혼인 관계를 전제한 친족과 혈족을 기본 단위로 설정되어 있다. 상속, 건강보험, 의료결정 등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권리와 권한이 우리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뚜렷하게 확인하는 순간이다. '정상'의 틀은 수많은 '비정상'을 만들 뿐만 아니라 그 틀에서 벗어난 존재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권리를 박탈한다.

나에게 비혼은 선택일까? '할 자유' 없는 '하지 않을 자유'는 자유일까? 애인과 일대일 관계를 맺을 때는 들지 않던 질문이다. 이전에는 주로 이성애 일대일 관계로 연애를 해왔으니 결혼할 조건이 충족된 상태였다. 그때의 나는 결혼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법적인 혼인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니 비혼이라는 화두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비혼을 결혼하지 않을 자유로만 정의하기에 정상 가족을 중심으로 짜인 사회의 각본은 촘촘하고 복잡하다. 건축, 문화, 제도 모두에 스며든 기준 앞에서 '비혼'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비혼은 결혼하지 않을 자유와 더불어 누구든 원하는 상대와 결혼할 권리, 스스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 결혼하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어떤 형태의 관계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을 가꾸기 위한 약속, 나아가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시민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포함하는 운동이 아닐까. 비혼이 품는 고민이 넓어질수록 정상 가족을 향하는 질문 또한 날카로워졌다.

얼마 전 '지금, 성소수자에게 혼인평등과 가족구성권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있었다. 혼인평등권, 가족구성권, 생활동반자보호법, 가족의 의미에 대해 폭넓은 이야기가 오가던 중, 청중석에서 질문이 나왔다. "앞으로 한국 사회의 가족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운동 전략이 필요할까요?" 패널로 참여한 류민희 변호사가 답했다. "저는 시기상조라는 둥의 한가한 소리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해요. 시기상조가 어디 있나요? 개개인의 위치에서 나오는 다양한 관계의 서사가 흘러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여기저기에서 난리를 쳐야죠. 운동은 가능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가능하도록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그 말이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다. 기존의 언어가 설명하지 못하는 빈 곳을 채우려고 '난리 치는' 서사들. 그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왜 지금 이대로는 결혼이 불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관계 맺고 있다고, 이 관계를 없는 관계로 여기지 말라고, 내가 맺는 관계와 상관없이 개인에 대한, 관계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고. 나는 누구나 가능한 평등한 혼인을 꿈꾸면서도 개인으로 존재할 권리를 꿈꾸는 비혼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지난 5월 17일,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 간 결혼을 법제화했다. 이제 대만의 동성 커플은 자녀 양육권, 세금, 보험 등과 관련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뉴스에 따르면 결혼등기를 받기 시작한 24일 하루 동안 대만 전역에서 총 526건의 동성 간 결혼 등기가 이뤄졌다고 한다. 거리에서 커플들이 부둥켜안고 울고 웃는 사진을 보았다. 얼마나 많은 차별을 꾸역꾸역 삼키며 이날을 기다렸을까?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져서 울컥했다.

증명하거나 숨기거나 드러내거나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차별 받지 않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시기상조라는 말은 무척 한가하고 무책임한 말이고, 우리는 이미 많이 늦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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