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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04 15:27 수정 2019.06.04 15:27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 [편집자말]
 

구두 ⓒ pixabay


어느 날 친구가 메신저로 구두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딱 봐도 미끈하게 빠진 예쁜 디자인의 해외 브랜드 구두였다. 나 또한 일 때문에 구두를 자주 신는 편이었기에 디자인이 잘 빠진 예쁜 구두라면 관심이 간다. 그래서 친구가 사진을 보내줄 때마다 나는 메신저로 감탄과 함께 '이 것도 좋아 보인다'라는 대답을 했다. 물론 '전부 좋다고 하면 난 뭘 고르냐'라는 핀잔을 들은 것은 덤이다.

결국은 후보군을 추리고 추려서 하나를 골랐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신발 밑창, 그러니까 솔(sole)이라 부르는 부분이 가죽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가죽이라니! 그러면 걷다 보면 가죽이 다 상할 거 아닌가? 게다가 가죽의 특성상 비 오는 날이나 물에 젖은 길 같은 곳을 걸어 다니기도 힘들다. 뭐 이런 불편한 구두가 다 있어? 바로 그 이상함 때문에 친구에게 질문을 했다. 이런 구두를 신고 다니면 걸을 수 있는 곳이 극히 제한되지 않느냐는 거였다. 그때 친구의 답이 기억난다.

"응 알아. 이 구두는 차 없으면 못 신지."

당시 친구의 말대로 가죽으로 밑창을 댄 레더 솔 구두는 외부에서 신기에 적당한 신발은 아니다. 자가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고 날씨의 영향과 노면 상태가 고른 실내에서 신어야 오래 신을 수 있는 신발이다. 물론 솔 부분을 좀 더 보강한다면 실외에서 신고 다니더라도 손상을 줄일 수 있겠지만 결국 바닥이 상하긴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 가죽제품의 특성상 충분한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는 신발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레더 솔 구두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결함이 많다. 발을 보호하고 걷기 위한 신발이 가급적 덜 걷는 쪽으로 디자인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매우 역설적인 상품이다. 실용성이란 측면에선 고무창을 댄 러버 솔이 훨씬 압도적이다. 심지어 나는 많이 걷는 편이어서 러버 솔 구두가 훨씬 우월한 상품이란 것을 머리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쓸모없고 어울리지도 않는 레더 솔에 끌린 것이다. 두 구두의 차이는 평상시에는 보이지도 않는 밑바닥의 재질 차이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이는 남성용 구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여성용 구두 중에서도 예쁘다고 평가받는 구두는 역시나 편의성과 실용성 측면과는 거리가 있다. 이쯤 되면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이 대체 무엇인지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적인 부분은 대부분 실용성과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성은 우리가 소위 '로망'으로 삼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손목시계는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힌다. 그런데 냉정하게 이야기해보자. 시계는 쓸모가 없을수록 높은 미적 평가를 받는 상품이다. 특히나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기계식 시계로 가면 실용성을 논하는 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오차도 크고 관리도 매우 까다로우며 유지비도 비싸고 내구도도 낮다. 시계라는 측면에선 가장 무용한 시계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실용성' 강조한 등산복의 역설

'실용성'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의 등산복 패션에 대해 질색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등산복은 우리가 입는 의복 중에서도 실용성에 가장 특화된 편한 옷이다. 부모 세대들이 등산복을 선호하는 것도 그 어떤 옷보다도 실용적이고 편하기 때문인 점이 크다. 아이러니한 점은 실용성과 편의성을 강조한 등산복조차도 한국에서의 일생생활에서는 굳이 필요치 않은 온갖 기능이 부가된 것들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용성이 가장 강조된 상품에서조차, 다소 덜 실용적일수록 더 비싸고 더 예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매료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듯 사람들이 예쁘다고 여기며 매력을 느끼는 상품들은 덜 실용적이며 관리가 까다로우며, 상품의 이용에 요구되는 생활 패턴이 따로 존재한다. 즉, 특정 상품을 구매하고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 수준과 삶의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가 아름답고 멋지다고 하는 것에 대한 선호는 더 많은 부와 부유한 삶의 방식에 대한 선호로 수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바로 소비와 취향의 이러한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한 경제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유한계급론>을 통해 미적 취향과 감각, 소비에서 드러나는 계급의 표현을 이야기했다. 베블런의 주장대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미적 감각과 취향은 단순히 돈만 많다고 해서 축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삶의 방식과 교육을 통해 그런 감각을 쌓아 나가는 것으로, 부에 비해 쉽게 축적하기 어려운 일종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소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반영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소비와 미적 감각 취향은 우리가 지향하는 소득과 생활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간접적이고 우회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도 매우 경제적인 것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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