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13
4,000
등록 2019.06.06 21:06 수정 2019.06.07 10:27
 

50년간의 영광 끝에 제왕의 자리를 내주게 된 프랑스 대형 슈퍼마켓의 대명사 까르푸. ⓒ 목수정


대형 마트가 사라진다
 
주말 오후, 대형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온가족이 쇼핑몰을 천천히 둘러보며, 행사 중인 상품들 위주로 카트 한가득 물건을 채우며 쇼핑을 즐기는 일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익숙한 일상의 풍경이다.

프랑스에서도 1960년대부터 대략 50년간, 하이퍼마켓(2500제곱미터(m2) 이상의 초대형 복합매장으로 우리나라의 이마트, 롯데마트 등이 이에 해당됨)의 호시절이 이어져왔다.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쇼핑을 즐겼고, 다발로 포장된 제품들을 싸게 구입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하이퍼마켓을 떠나기 시작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제 하이퍼마켓들이 느리지만 확실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고 단언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하이퍼마켓의 선두주자인 까르푸는 올해 직원 2300명을 해고하고, 크고 작은 매장 300개를 줄이는 계획에 착수했다. 까르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샹도 지난해에만 10억 유로(약1조3천억원)의 손실을 보며, 더 이상 흑자를 내지 못하는 21개의 대형매장을 폐쇄할 계획임을 지난 5월초에 발표한 바 있다. 카지노도 실적이 부진한 19개의 대형 매장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하이퍼마트 부진의 가장 원인은 날로 늘어나는 인터넷 쇼핑에 있다. 지난 8년간 하이퍼마켓에서 비식품류의 판매는 30%나 감소했다. 그러나 이것만이 문제였다면, 식품 위주로 매장을 구성하는 것으로 극복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식품 부문에서는, 달라진 소비자의 선호도가 유기농 전문 매장, 소비자 직거래 장터로 그들의 발걸음을 유인했다. 결국, 하이퍼마켓들은 지난 7~8년간 연 3~4%의 수입 감소를 기록해 오다가, 역사의 퇴물이 될 것임을 선고받았다.  

1980, 90년대 소비자들은 양적인 쇼핑을 즐겼다. 하지만 2008년 유럽을 강타한 금융위기가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위축시킨 이후, 소비자들은 환경이나 공중 보건 분야에서 잇달아 빚어져 온 참사들로에 예민해졌다. 그 결과 보다 신중하고 세심한 소비 패턴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대형 매장을 거닐며, 1+1 같은 문구에 의해 충동구매하는 식의 쇼핑은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긴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건강과 환경에 관심이 증가하면서 적게 소비하는 대신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신선한 제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패턴이 변화했다.  

유기농, 비GMO, 식품첨가물 비사용뿐 아니라, 염분과 당도가 낮은 음식들을 전반적으로 선호하고, 냉동 가공식품에 기피도도 늘어났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 2명 중 1명은 하이퍼마켓에 가는 것이 "귀찮은 노동"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실용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하이퍼마켓은 이제 사람들의 마음에서 떠나가고 있다. 카트를 가득 채우는 행위에서 기쁨을 느끼던 시절이 저물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람들은 이제 대형마트에서 모든 걸 구입하기 보다 기꺼이 필요한 것들을 전문 매장에서 구입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내 경우에도 생필품들은 동네 슈퍼에서, 대부분의 식료품은 유기농 식품매장에서, 생선은 매주 화요일 열리는 장터에서 구입하며, 라면이나 떡볶이같은 (불량) 소울 푸드들은 지하철을 타고 30분을 이동해 사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소비가 줄어든다
 

한 생협(Biocoop) 내부 모습. 대형 매장에 비해 따뜻한 조명과 실내 장식이 눈에 띈다. ⓒ 목수정

  

이제 사람들은 복잡한 대형 마트 대신 조용하고 여유로운 로컬 마켓을 좋아한다. ⓒ pixabay


소비의 중심지였던 하이퍼마켓을 정서적으로도 멀리하게 된 탓일까. 심지어 최근 3년 동안에는 프랑스인들의 소비 자체가 줄어드는 초유의 현상들이 빚어지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일시적으로 감소했던 소비는 금세 다시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2016년 프랑스는 전해 대비 0.1%의 감소했고, 2017년에는 0.3%, 2018년에는 0.5% '소비 감소' 행진을 이어갔다.

이 같은 소비의 감소는 지속되는 인구 증가(2017년 1.9%)에 반하는 것이기에 더욱 눈에 띈다. 불황의 여파가 구매력을 감소시킨 탓도 있겠지만 '양'에서 '질'의 추구로 변모한 소비 패턴의 영향도 크다.
 
대형 슈퍼마켓이 고객을 빼앗기는 동안, 확고한 성장을 이룬 시장은 인터넷 쇼핑뿐 아니라 유기농 매장이다. 1999년 10억 유로에 불과했던 프랑스의 유기농 식품 매장의 매출은 2017년 83억 7300만 유로로 성장하면서 8배 이상의 급격한 신장을 보였다. 물론 대형 슈퍼마켓에서도 유기농 매장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많은 면적을 차지해 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곳은 단연, 유기농 전문 매장과 생산자 직거래 유통이다.

매주 계절 채소들로 채워져 전달되는 생산자 직거래 채소 바구니(Panier Vert)는 수년 사이에 전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히트 아이템이다. 지역의 소규모 생산자와 도심의 소비자들, 혹은 유기농 직거래 매장이 계약을 맺고, 대략 15유로 어치의 계절 야채들을 바구니 한가득 채워서 매주 전해주는 시스템이다.

겨울엔 간신히 배추와 감자, 무 정도로만 바구니가 채워지지만,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생산자가 직접 키운 계절 야채들을 받아먹는 데서 큰 기쁨을 찾는다. 건강한 음식물을 섭취한다는 안도감에다 바구니를 받을 때 예기치 않은 갖가지 야채를 발견하는 즐거움, 중소규모의 농민들의 안정적 수입에 기여한다는 만족감까지 더해진다.
 

프랑스에서 가장 넓게 확산된 유기농 식품 매장 나뛰랄리아. ⓒ 목수정

  

포도주나 맥주에서도 다양한 품목들이 진열된 유기농 식품 매장의 모습. 다양한 곡물들을 필요한 만큼 종이봉투에 담아 무게를 재서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 목수정

 
지난 달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이 13.5% 득표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낸 것도, 환경과 자연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관심이 부쩍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또 지금의 소비 패턴이 '반짝 나타나는' 소비자의 변덕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지난 15년간 파리 수도권 지역의 인구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108kg(약 20%) 줄어든 것도, 높아진 환경에 대한 관심과 이와 연계된 소비 패턴이 이뤄낸 긍정적 변화다.
 
직거래를 선호하고 사람들과의 긴밀한 접촉에 눈 뜬 도시민들은 곳곳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열리는 장터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물론 프랑스에서는 도심에서든 시골에서든 한 번도 장터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점점 더 활기를 띠어가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기 때문에 더 싱싱한 농산물을 접할 수 있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이웃과 상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식품 이외에도, 쇠락해 가는 대형매장을 대신해 등장하는 매장들은 제품의 질적인 면과 인간적 접촉이 가능한 소형 전문매장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 영역에서도 일관되게 관찰된다.
 
동네 서점은 죽지 않는다, 새롭게 태어날 뿐 
 

동네 서점 Mille Pages(천개의 페이지) 의 내부 모습서점 곳곳엔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들이 마련되어 있다. ⓒ 목수정

 
전자책이나 아마존 같은 인터넷서점들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서점은 이제 사양길로 들어선게 아닐까 짐작하기 쉽지만, 실상 파리의 서점들은 건재하다. 뿐만 아니라, 들를 때마다 많은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 동네 서점은 아마존이 결코 줄 수 없는 것들을 주기 때문이다. 조언, 대화, 미소, 예기치 않은 발견, 사회적 관계 맺음 같은…

동네 서점에 가면 와인숍에 갔을 때처럼 '북 소믈리에'를 만날 수가 있다. 와인숍에는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설명하고 거기에 어울릴 만한 포도주를 권해달라고 청하면, 소믈리에가 자신의 직관과 지식을 총동원해 고객과 논의를 거쳐 적합한 포도주를 권해준다. 서점에 가서 자신이 요즘 원하는 책을 설명하거나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어 그 사람에 대한 몇가지 정보를 전달하면, 서점 직원은 전문가다운 식견을 총 동원하여 적절한 책들을 골라주고, 그 책의 장점들을 설명해 준다.

 

동네 서점 Mille Pages(천개의 페이지) 의 내부 모습 추천 도서 위에는 깨알같이 서점측이 마련한 서평이 적혀 있다.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다. ⓒ 목수정

 
때론 그들의 적절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달에 새로 나온 책에 서점 직원들이 한줄 서평을 적어 책 위에 얹어두기도 하고, 서점의 관점에서 뽑은 이달의 책을 선정하기도 한다.

작은 서점은 동네 사람들이 마주치고 대화 나누는 사랑방이 되기도 하고, 화제의 저자와 만나 대화하는 지식의 토론장이 된다.  그렇게 서점은 마을 사람들이 온 마음으로 품는, 공동체의 공유 공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영혼이 있는 공간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관 2위로 꼽힌 공공 영화관 '멜리에스'. ⓒ 목수정


같은 현상은 영화관에서도 목격된다. 지난 4월 프랑스 영화팬 83만명에게 실시한 '선호하는 영화관 조사'에서 1위는 마르세이유에 있는 단관 영화관 '알람브라'였다. 2위는 6개 관이 있는 파리 외곽의 시립 영화관 '멜리에스'가 차지했다.

조사는 흥겨운 분위기, 영화 선택의 엄격함, 영화의 다양성, 영화인들과의 만남, 인간적 측면, 즉 영화관 직원과의 소통에서 얻는 만족도, 접근성 등을 기준으로 이뤄졌다. 이 영화관들은 예술영화들을 많이 틀어주는 마이너 영화관, 그러나 푸근하고 여유로운 환경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인간 중심의 공간들이었다.

15위까지 순위에 든 영화관 가운데 프랑스의 3대 메이저 멀티플렉스 체인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사람들 역시 그런 영화관이 매력적이고 모던하다고 느꼈다고, 이 설문조사 소식을 전하는 영화 소식지는 밝히고 있다. 당시 톱 15 영화관의 판도는 오늘의 결과와 딴판이었다는 사실에서 지난 10년간 사람들의 의식에 불어온 변화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이젠 사람들끼리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극장의 색깔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을 갖추고 어린 관객에 대해서도 꼼꼼히 배려하는, 소위 '영혼을 가진' 영화관들이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영화관이 되어가고 있다고 멜리에스의 디렉트 스테판 구데는 말한다. 대형 쇼핑몰 대신 살갑고 흥겨운 인간의 재잘거림이 맞아주는 곳으로 사람들이 발길이 옮겨가고 있는 현상과 맥을 같이 한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시장을 장악하고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 때, 인간이 마침내 찾아낼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그들의 미숙함이 비뚤빼뚤 흔적을 드러내는 아날로그한 공간, 기계와 자본이 덜 개입한 대신 인간의 온기와 영혼이 오롯이 들어차 있는 장소라는 점을 프랑스 사회의 변화는 귀띔해준다. 
댓글1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4,000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