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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27 16:57 수정 2019.06.27 16:57
여행은 보통 숙박을 줄이고, 최대한 여행지에 오래 있기 위해서 아침 비행을 이용하기 마련이라 새벽에 집에서 나와야 하는 때가 많다. 이번 여행도 오전 9시 비행기라 공항에 늦어도 6시 반까지 도착하기 위해, 집 앞에서 새벽 5시에는 공항버스를 타야 했다.

그렇다면 준비시간을 감안하여 적어도 4시에는 일어나야 하고, 일찍 자야 했지만, 출국 전날 퇴근 하고 늦은 저녁에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련 준비물(우비 등)은 미리 구매를 해놓았기 때문에 급하게 전날 부랴부랴 준비해야 할 것들은 없었다.
 
오마이TV 로드다큐<임정>은 이번 여행 준비물을 준비할 때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현장의 정보를 눈으로 생생하고 볼 수 있어서, 준비물의 필요성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서울보다 더운 날씨와 잦은 비를 보며, 시원한 옷과 우비를 챙겼다.

드디어! 6월 1일 6시반 공항에서 임정로드 1기 탐방단이 모였다. 늦은 여행 준비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느라고 2시간도 못 자고 일어났지만 긴장한 상태에서 공항에 도착했다.

출발하기 며칠 전 단톡방이 먼저 개설 되었다. 서울 현충원에서 독립운동가분들의 묘역을 미리 탐방하는 임정탐방단 O.T.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공항에서 초면이었기 때문에 설렘과 긴장감이 더했다.

'어떤 분들과 함께 할까?'

이른 아침이지만 역시 인천공항은 사람들로 붐볐다. 별다른 말없이 사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또는 어딘가 익숙한 듯 각자 도착하는 순서대로 명단 체크를 하고 서로에 대한 별도의 소개나 인사 없이 나눠준 각자의 여행 일정 책자와 명찰에 박힌 이름을 확인하고 목에 걸었다. 짐을 부치고 비행기 티켓을 받아 출국하는 비행기 게이트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곧바로 헤어졌다.

이와 중에 눈에 띄는 것은 12명 출발 인원 중에 내 캐리어(85L) 가방이 제일 컸다. 새벽까지 짐 싸기를 마무리하고 캐리어를 닫는 순간까지 캐리어를 절반 이하 사이즈인 기내용(32L)으로 바꿔 챙겨야 할까 고민했는데, 역시나 오바였던 것이다.

나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다른 분들은 여행을 많이 다녀보신 포스가 느껴졌다. 일반 책가방만한 배낭 하나로(기내용 캐리어보다도 작아 보이는) 짐을 꾸려오신 분도 있었다.

평소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랑 가느냐를 중요 여행 포인트로 삼는 내가 이렇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7박8일이라는 여행을 결심했다는 것도 사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임시정부 탐방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라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의 첫 마디는 '정계에 진출할 것이냐?'라는 농담을 던지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뿐이었다.
 
함께 정치적 문제를 그래도 비교적 관심 있게 나누던 친구들조차 직장에서 1년에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휴가를 그렇게(?) 쓸 수는 없다는 반응이었다. 게다가 중국을 7박8일로 횡단 하다시피 하는 일정이고 하루도 같은 숙소에 머물지 않으며, 야간열차 침대 칸에서 하룻밤을 꼬박 보내는 일정도 있었기에 함께 할 친구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혼자 여행도 아닌 그렇다고 친구와 함께 가는 것도 아닌 이번 여행의 비행기 옆 좌석에 배정받는 분은 누굴까? 설렘도 잠시, 옆 좌석 2자리 모두 비워진 상태로 비행기는 이륙해버렸다. 첫만남의 어색함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여러모로 어색한 이번 여행에 적응할 시간이 보너스로 할당된 것으로 여겼다. 마치 목적지에 누군가를 만나러 떠나는 사람처럼 약간의 긴장과 약간의 설렘으로 비행기는 이륙했다.

2시간 정도의 짧은 비행시간, 상해 푸동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연착으로 오전 12시가 넘어서야 공항을 벗어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일행 12명 모두 중국식 하나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서금이로'로 향했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에서 조차 부담감이 들 정도로 이번 일정에 고생을 각오하고 시작한 임정로드의 첫 장소다.
 

상하이 서금이로 부근, 첫 임시정부 청사 추정지 ⓒ 이근주

  
그러나 상가들이 늘어선 '서금이로(瑞金二路)'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옛날에는 '김신부로(金神父路)'라고 불리었던 이곳에 임시정부 첫 번째 청사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측정할 수 없단다. 길게 이어진 이 길 어딘가에서 시작됐단다.

예를 들면, 종로1가 어디쯤 이런 느낌에서 끝이 났다. 너무 막연했다. 길 한폭판에서 한국인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보며 경청하고 있으니 지나가는 중국인들 시선들이 따라왔다. 그러나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나 또한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임시정부의 시작이, 1919년 4월 11일 탄생한 임시정부는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 속에 있었던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임시정부의 시작점이 지금 이렇게 어딘지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누군가는 챙겨서 뭔가를 하고 있겠지 생각하며 나처럼 무관심하고 있지 않을까? 만약 이곳에 위치는 정확하진 않지만, 표지석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임정로드4000k>의 저자 김종훈 기자는 표지석의 의미를 이야기 했다. '걷지 않은 길은 사라진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에도 서금이로에 서서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힘을 주어 이야기를 반복했다.
 
표지석, 이 부분은 국내에서도 절차상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하물며 남의 나라에서 우리나라 역사 관련 표지석이라니. 만약 종로1가 어딘가에 중국 역사 관련 표지석을 세우려면 어떤 절차부터 밟아야 할까?
 

최근 확인되 상하이 두번째 청사 터, 현재는 새로운 건물에 H&M매장이 들어서 있다. ⓒ 이근주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 두 번째 청사 자리가 확인됐다. 현재는 터만 확인되고, 건물은 다른 모양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H&M의류 쇼핑몰이 들어서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더위도 식힐 겸 내부에 들어갔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장소 이동을 위해 길게 뻗어 있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커다란 가로수에서 느껴지듯이 그 길의 오랜 역사를 말하는 것 같았다. 문득 이 길을 우리의 독립운동가 분들도 걸었던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실연을 당한 것도 아니고, 백주대낮에 낯선 길을 걷다가 뜬금 왈칵 눈물이 흐르는 상황이라니, 원래도 눈물이 많은 편이라 이번 여행 중 눈물이 날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벌써부터 그것도 갑자기 길을 걷다가라니...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서금이로에서 예관 신규식 선생 거주지로 가는 길 어딘가. ⓒ 이근주

  
건물들은 이미 외형이 바뀌고, 또는 터만 남고,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은데, 이 길만은 옛 것의 모양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록 늘상 있는 흔한 길이지만, 그럼으로 그분들도 이 길을 지나서, 이 길 위를 걸었을 것이기에, 이 길에서 더 많은 생각이 들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낯선 이국 땅에서 여기저기 옮겨가며 지켰던 임시정부, 그 독립운동가의 설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식민지가 된 나라를 걱정했을 그분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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