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09 07:56최종 업데이트 19.07.09 07:56
 

세탁기 ⓒ pixabay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니 때가 묻어나왔다.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써 봐도, 하얀 수건에 묻어 나오는 찌꺼기를 제거할 수 없었다. 큰 마음 먹고 세탁기 분해 청소업체를 찾았다. 가장 먼저 물은 건 가격. 무려 8만 원이었다. 최저임금 노동자인 나의 하루일당보다 많았다.

좀 더 싼 업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그게 또 너무 큰 노동이자 스트레스라, 원래 연락했던 업체에 맡겼다. 아침 9시에 집에 도착한 청소업체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가족 기업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세탁기를 완전 분해하고, 스팀 청소를 하는데 무려 3시간이 걸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손님의 시간이고, 두 부자가 장비를 챙기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우리 집을 위해 적어도 4시간은 보낸 셈이다.


두 사람이 8만원을 나눠가지면 시간당 1만원. 기름값과 장비 유지비까지 생각하면, 시간당 1만원도 안 된다. 8만원을 아까워한 내가 부끄러웠다. 더러운 빨래가 깨끗하게 세탁되어 나온 것까지 확인한 후 헤어졌다. 서비스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너무 싼 값'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 나라에서 사람의 값어치는 왜 이렇게 저렴할까

대한민국에는 이렇게 직접 노동을 하는 사장님들이 많다. 자영업자수는 약 500만 명 정도로, 이중 150만 명 정도만 고용원이 있는 사장님이고 나머지 350만 명은 고용원이 없는 사장님들이다. 이들 영세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장시간노동과 저소득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최근 실제로는 노동을 하지만 신분은 사장님인 특수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오토바이 배달은 1건당 3000원, 택배는 1000원 정도다. 아슬아슬한 도로 위와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값이 너무 저렴하다.
 

혹자는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서, 기업들이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쓰고 버릴 수 있는 특고노동자들이 늘어났다고 지적한다. 특히 배달대행시장이 커지면서 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 KFC 등이 직접 고용한 라이더들을 해고하고, 부릉, 바로고 등 배달 플랫폼업체 라이더들로 대체하고 있다.

실제로 최저임금이 6470원 정도 하던 시절에는 매장에서 배달대행을 부르는걸 극도로 꺼렸다. 저렴한 직고용 노동자가 1시간당 3개~4개는 배달을 처리해주는데, 비싼 배달대행을 왜 부르냐는 거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이번에는 그동안 싼값으로 일해 준 라이더들을 자르고, '사장님 신분'의 라이더들에게 배달을 맡겼다.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하지만 소속과 신분은 달라졌다. 나 역시 주말 오전에는 맥도날드의 근로자 신분으로 햄버거를 배달하고, 퇴근 후 밤 6시부터 11시까지는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으로 맥도날드 햄버거를 배달한다.

전자는 시간당 8350원에 배달 한 건당 400원을 받으니 1시간에 3개를 하면, 9550원을 번다. 후자는 1건당 3200원이니 1시간에 3개를 하면 9600원이다. 전자에는 주휴수당과 퇴직금 연차가 있고 오토바이와 보험, 기름값, 수리비도 회사가 낸다. 후자는 모든 걸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하니 최저임금 노동자보다 손해다. 좀 더 빨리 달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대한민국은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가 너무 낮아서,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보다 싸게 인력을 공급해주는 회사를 찾으면 되고, 반대로 최저임금이 낮으면 근로자로 직접고용해서 쓰고, 인력공급업체와의 계약을 파기하면 되는 완벽한 나라인 것이다.

일본의 미용실 커트 비용이 5만 원인 이유
 

머리를 '커트'하는 모습 ⓒ pxhere

  
실제로 몇몇 배송업체들은 야간근로수당을 지급하기 싫어서, 10시까지만 직접고용된 노동자를 사용하고 10시 이후에는 쿠팡플렉스나 배달대행처럼 개인사업자 신분의 노동력을 플랫폼기술을 통해 활용하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근로기준법이 낡아서 노동자유계약제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미 기업들은 겉으로는 '최저임금이 올라서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최저임금 제도를 피해가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서비스가격의 전반적인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2년 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새로운 가게에 들어갈 때면 직업병처럼, 일하는 모습과 알바모집공고를 살펴봤다. 일본어는 못하지만, 한자는 더듬더듬 읽을 수 있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시급은 보통 1000엔. 식사도 제공한다. 특이한 것은 지하철 민영화로 지하철요금이 너무 비싸 교통비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일을 하는 시간에 대한 대가뿐만 아니라, 일하기 위한 조건까지 신경 쓰는 문화가 부러웠다.

이보다 놀라운 것은 미용실의 가격이었다. 거리에 있는 동네 미용실의 커트 비용이 무려 5000엔(약 5만 원). 우리 동네 미용실이 보통 1만원인데, 엄청난 가격 차이다. 물가가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했는데, 공산품가격은 또 한국과 비슷했다. 특히나 편의점 도시락은 '가성비 갑'으로 중독될 것 같았다. 일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사람의 노동이 많이 들어가는 서비스 가격은 무척 비싸다는 것이다.

흔히 임금과 서비스가격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쥐고 있는 돈이 너무 없기 때문에 물가가 높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재 물가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경기 부진으로 인해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물가는 임금이 아니라 매출과 경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려야 할 물가가 있다면 그건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가격이 아니다.

불합리한 '국내 경제 구조'에도 맞서야

최저임금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고용이 사라지고 영세자영업자가 어려워진다는 논란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차라리 잘됐다. 그동안 사람가격이 너무 저렴했고, 전통적인 의미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장님들에 대한 보호조치도 함께 논의할 기회다. 고용으로만 이 문제를 풀지 말고 사회 안전망을 어떻게 만들지도 함께 논의하자.

최근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불합리한 경제제재에 함께 연대해서 맞서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합리한 국내의 경제구조에 맞서 함께 연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동안 화가 난 나의 목소리를 받아주는 콜센터 상담원의 부드러운 목소리,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급식 노동자의 주름진 손,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주는 집배원 노동자의 다급한 발걸음을 너무 당연하게 보고 듣고 누렸는지 모른다.

이들에게 왜 이리 많이 받아가냐고 물을 게 아니라, 이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우리사회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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