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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17 10:03 수정 2019.07.17 14:58
 

오랜 시간 방치된 채 폐허로 변한 '난징 천녕사' ⓒ 필로소픽


  

난징 천녕사이곳 난징 천녕사에서 김원봉 장군과 조선혁명간부학교 학생들은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훈련을 했다. 아무런 흔적도 없다. ⓒ 김종훈

 
중국 난징 중심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천녕사라는 도교 사원이 있다. 1930년대 초중반 약산 김원봉이 항일 독립투사를 길러내기 위해 설립한 조선혁명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받던 장소다. 지금은 다 쓰러져가는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독립기념관이 소개한 내용도 다르지 않다.
 
"천녕사는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아 폐허지로 변하였다. 그러나 정문 주춧돌과 두 그루의 오동나무는 옛날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건축물의 흔적이 주변에 남아 있고, 현판에는 '천녕사'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폐허로 전락한 이곳에서 조선 청년 44명이 모여 군사훈련을 받고 독립투사가 됐다. 지금은 자취조차 찾을 수 없는 1기와 2기 훈련지에서 교육받았던 인원을 합치면 총 125명의 조선 청년들이 난징까지 와서 훈련을 받고 군인이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내 손으로 완전한 조국독립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립투사 이육사와 정율성이 탄생한 곳
 
그중 한 명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인 이육사다. 이육사, 흔히들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으로만 알지만, 육사의 직업은 독립운동가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부터 애국지사 박열과 함께 아나키스트 단체인 흑우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기자 생활도 했다. 중국으로 건너온 뒤에는 기자 시절 친분을 쌓은 석정 윤세주를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고 조선혁명간부학교 1기생으로 입교했다. 그를 난징으로 이끈 것이 영화 <밀정>에서 영화배우 공유가 연기했던 의열단원 김시현 선생이다.
 
육사는 이듬해인 1933년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7월에 국내로 잠입한다. 하지만 34년 3월 이 학교 출신임이 드러나 구속된다. 육사는 독립운동가로 살아가는 내내 17번 투옥됐고, 마지막 투옥에서 건강이 악화돼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감옥이었던 동창후통 1호에서 순국했다. 해방을 1년 앞둔 44년 1월 16일 새벽의 일이다.
  

독립운동가 이육사 ⓒ Wikimedia Commons


 
육사가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1기 때 함께 훈련을 받은 석정 윤세주는 2기 교관이 됐다. 2기엔 조선이 낳은 천재 작곡가, 중국의 애국가인 '중국인민해방군가'를 만든 정율성도 있었다. 당시 정율성의 이름은 정부은. 조선혁명간부학교 교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뜻으로 '율성(律成)'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러나 육사와 율성이 독립투사가 됐던 조선혁명간부학교 1기와 2기 훈련장소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 일제의 공습 및 도시 개발 등으로 모두 사라졌다. 조선혁명간부학교와 관련해 유일하게 남은 곳이 3기 생도들이 훈련받았던 난징 외곽에 있는 천녕사다.
 
혼자서는 찾아가기 힘든 장소, 천녕사

  

천녕사 초입에 세워진 가림막조선혁명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받은 천녕사에 오르기 위해선 폐건물 사이에 세워진 가림막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김원봉 장군과 관련된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 김종훈


난징 외곽 황룡산 기슭에 위치한 천녕사, 임정로드 탐방지 중 가장 찾아가기 어려운 장소다. 지금까지 수차례 천녕사를 찾을 때마다 최대한 지하철과 버스 등을 이용해 가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아예 대중교통이 없다고 보면 된다. 택시를 이용해 물어 물어서 찾아가야만 하는데, 이 또한 황룡산 입구 근처에 있는 스다오옌(四道堰水库) 저수지로 방향을 잡고 이동한 뒤, 그곳에서 내려 입구도 없는 산기슭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문제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위치한 유일한 출구인 소로를 발견하지 못하면 힘들게 가놓고도 아예 오르는 길을 못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여 분 정도 황룡산에 오르면 오동나무 두 그루 뒤쪽에 자리한 천녕사를 발견한다. 천녕사를 보는 순간 한숨부터 나온다. 잔뜩 기대하고 올라갔건만 눈에 들어오는 천녕사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다. 바라보고 있으면 '과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훈련받았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인다. 이마저도 3기생들이 훈련받았던 장소에 주춧돌만 남기고 1980년대에 다시 올린 건물이다. 조선청년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훈련받던 현장을, 우리가 얼마나 몰랐고 외면했는지 그대로 증명하는 장소다.
 

조선혁명간부학교 3기 훈련지 터 천녕사 ⓒ 김종훈


그런데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기자가 지난해 여름 방문했을 때와 지난 6월에 방문했을 때를 비교해 보니 그 차이가 더욱 분명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천녕사를 방문했다는 인증 사진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및 의열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여러 시민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알려진 까닭이다. 이 중에는 오마이뉴스도 있다. 탐방단을 꾸려 현장으로 시민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지난 6월에 1기 임정로드 탐방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찾은 한 선생님의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선혁명간부학교 출신들은 보통 3개 국어를 한다고 들었다. 육사만 해도 우리말과 일본어, 중국어에 능통했다. 이 말은 조선땅에서 자신의 뜻만 어느 정도 굽히고 일제에 부역하면 호의호식하며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인데, 그들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수만리 떨어진 이곳까지 와서 훈련 받았다. 말 그대로 일제의 개가 되느니 고난을 택한 거다. 이 얼마나 죄송하고 미안한 일이냐. 늦게라도 술 한 잔 올리고 싶었다."
  

조선혁명간부학교 3기 훈련지 터 천녕사, 마음을 담아 술 한 잔 올렸다. ⓒ 김종훈

 
여름에 천녕사에 가면 산모기가 기승을 부린다. 모기뿐 아니라 중국의 3대 화로라 불리는 난징답게, 습하고 뜨거운 날씨가 끔찍할 정도다. 잠시만 서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하지만 이곳에서 훈련받은 청년들은 인내했고, 이겨냈다. 그리곤 학교의 설립목표인 '한국의 절대독립'을 위해 국내와 만주로 파견돼 일제의 요인들을 암살하고, 특무활동을 위한 물자 획득에 매진했다. 민중들의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도 활동했다.
 
이후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조선의용대 대원이 되고 광복군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김원봉이 만든 조선혁명간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리 역사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임정로드'에 선다는 것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및 의열단 창립 100주년, '임정로드'에 선다는 것 ⓒ 김혜주

 
오마이뉴스는 대한민국 탄생 100주년을 맞아 두 가지 형태의 역사탐방을 진행 중이다.
 
첫 번째는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기획한 '상하이부터 난징까지,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이다. 8월부터 12월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6회가 예정돼 있다. 교직원과 청소년, 간호사가 모집대상이지만 단체로 신청할 경우 학교와 기관 단위로 신청 가능하다. (링크)
 
두 번째는 오마이뉴스가 자체 기획한 '임정로드탐방'이다. 로드다큐 <임정>을 제작하고 <임정로드 4000km>를 쓴 필자가 직접 인솔한다.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임정로드 4000km 대장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걷는 코스다. 6월에 1차 탐방을 떠났고, 8월 3일부터 7박 8일 동안 2차 탐방을 준비 중이다. 현재 2차 탐방단을 모집 중이다. (링크)
 
두 코스 모두 이육사와 정율성 등 조선 청년들이 목숨 바쳐 훈련했던 조선혁명간부학교 터 난징 천녕사를 방문한다. '투어'라는 이름을 달고 가는 여정에서, 천녕사를 직접 방문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상하이와 난징 등 중국 동부 지역에서 20여 년을 가이드한 진반용씨도 "천녕사는 가이드 생활 중 딱 한 번 있었다"면서 "일반 시민들과 함께 가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탄생한 곳 상하이 서금이로(당시 김신부로) ⓒ 임정로드 탐방단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이 의거 직전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한 곳, 원창리 13호 ⓒ 임정로드 탐방단

 

난징 리지샹 위안소,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으로 만들어졌다. ⓒ 김종훈

 
대한민국 100주년을 맞이해 특별 기획으로 준비된 임정로드 탐방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이 탄생한 상하이 서금이로에서 시작한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정치체제, 헌법이 만들어진 장소다. 이후엔 임시정부의 기틀을 마련한 예관 신규식 선생의 거주지, 통합 정부의 기틀을 마련한 임시정부 두 번째 청사 터도 직접 방문한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의거를 일으킨 날 아침 김구 선생과 마지막 식사를 한 원창리 13호도 일정에 포함했다. 1922년 3월 의열단원 김익상과 오성륜, 이종암이 의거를 일으킨, 중국 최고의 야경을 자랑하는 상하이 와이탄에도 간다.
 
이튿날에는 윤봉길 의사 의거 후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이 피신했던 자싱과 하이엔 피난처로 향한다. 같은 시기 항저우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켰던 김철과 송병조, 차리석 선생도 만나러 떠난다. 이후엔 난징에서 김구 선생이 고물상 행세를 하며 버텼던 회청교도로 간다. 장제스 총통을 만나기 위해 머물렀던 중앙반점에서 그날의 애국지사들처럼 하룻밤을 보낸다.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니가 증언해 2015년 만들어진 난징 최중심부에 위치한 리지샹위안소도 방문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및 의열단 창립 100주년, 임정로드 탐방은 1919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애국지사들의 걸음과 2019년 지사들의 걸음을 직접 확인하려는 시민들의 걸음이 연결되는 현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정로드 1기가 천녕사에서 찍은 단체 사진. ⓒ 김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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