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0 09:38최종 업데이트 19.10.08 15:38
조만간 출범할 국가 물관리위원회는 오는 9월~10월경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오마이뉴스>는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금강과 낙동강 현장을 환경단체들과 동행취재하면서 4대강 보의 문제점 등을 탐사보도한다. '삽질 10년, 산 강과 죽은 강' 특별기획 보도는 9월 말까지 이어진다. 10월에는 <오마이뉴스>가 제작한 4대강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영화투자배급사 <엣나인필름>)을 영화관에서 개봉한다.[편집자말]
'자전거 탄 금강' 행사 공동 주최 :
금강유역 환경회의, 대전환경운동연합, 대전충남녹색연합, 세종환경운동연합, 서천생태문화학교, 이상돈 국회의원실, 충남연구원(기술 후원)

동행취재 :
김종술 이철재 권우성 김병기 기자

 


한 남자가 땡볕에 금강 모래톱에서 풀을 뽑고 있다. 검게 그을린 팔뚝은 벌레에 물리고 풀에 벤 상처투성이다.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일이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에서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 고된 노동의 대가를 누가 지불해주는 것도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거의 매일 금강에 나가 4대강사업으로 죽어가는 강의 모습을 취재해 기사로 올렸던 그는 요즘 취재수첩과 카메라뿐만 아니라 낫과 삽을 들고 공주의 국가 명승지인 곰나루로 출근한다.

'금강의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풀을 뽑는 모습을 보고 더러 지인들이 연락 해온다고 했다. 대부분 "너무 고생한다"면서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로 위로를 한단다. 실제로 삽을 들고 와서 함께 풀을 뽑는 지인도 있다. 하지만 더러는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도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뜨악했다.

"아침부터 풀을 뽑기 시작해서 오후에 뒤를 돌아보면 거짓말처럼 풀들이 이만큼 자라있더라고요. 다음날 또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풀과의 전쟁] 그가 삽을 들고 금강에 가는 까닭
 

김종술 기자가 풀뽑기 작업을 하고 있는 금강 곰나루 모래톱은 국가 명승지이다. ⓒ 김종술


"예쁘지 않잖아요."

그가 곰나루 모래톱에서 '풀과의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금강 공주보의 수문개방 이후 드러난 모래톱이 풀로 뒤덮여 있어서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3~4개월 전만 해도 곰나루 모래톱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풀이 키보다 높이 자라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래톱에 풀이 나기 시작한 건 4대강사업 후유증이다. 원래 강변에 쌓인 모래톱에는 풀이 많이 자라지 않는다. 배수가 잘되는 모래 속에는 풀이 자라는 데 필요한 물이 없다. 곰나루 모래톱 역시 4대강사업 이전에는 금은모래가 펼쳐진 곳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쌓고 강수욕을 하면서 멱을 감았다. 이곳은 '소풍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4대강사업 때 수심 6m를 유지하려고 모래를 다 파냈다. 하류에 공주보를 세워서 이곳을 수몰시켰다. 매년 여름만 되면 모래 대신 녹조가 창궐했다. 수심이 깊기에 곳곳에 '접근금지' 안내판이 나붙었다. 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펄이 쌓인 강바닥에서는 최악의 수질 4급수 지표종인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득시글했다.

아래 두 개의 사진을 비교하면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 전 곰나루에서 본 상류의 모습 ⓒ 오마이뉴스

 

4대강 사업 후 곰나루에서 본 상류의 모습 ⓒ 오마이뉴스


그가 두려워하는 것

이곳에 모래톱이 다시 쌓이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다. 상류의 세종보와 하류쪽의 공주보 수문을 열자 강바닥의 펄이 쓸려갔고, 상류에서 흘러온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최근에 4대강사업 때 금강에 세운 3개 보 중 유일하게 닫혀 있었던 백제보마저 열린 뒤에는 강바닥이 더 드러났다.

겉보기에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10년 전의 모래톱은 아니다. 아직도 강변에선 시큼한 냄새가 가시지 않고 있다. 풀도 자라고 있다. 4대강사업 이후에 쌓인 펄들이 완전히 씻겨 내려가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풀들이 모래 속에 남은 펄에 뿌리를 박고, 그곳에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다.

"공주보의 수문이 지금은 열려있지만, 구조물이 그대로 서 있는 한 언제 다시 닫힐지 모릅니다. 그게 두렵습니다. 곰나루의 모래톱이 예전과 같아야만 사람들이 자주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공주보 수문이 또 닫힐지도 모르죠. 그래서 오늘도 나는 풀을 뽑고 있는 겁니다."

4대강사업의 흔적인 펄이 완전히 씻기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흘러야할지는 그도 모른다. 금강의 보 수문이 계속 열려있거나 해체된다면, 곰나루는 저절로 과거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날이 저절로 오리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계속 이곳으로 소풍을 와야만, 그날이 좀 더 빨리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삽과 낫 한 자루 들고 다시 흐르기 시작한 금강을 지키고 있다. 풀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마침내 다시 쌓이기 시작한 모래톱을 사수하고 있다. 곰나루 모래톱에서 풀을 뽑으면서 시민들에게 '이곳으로 소풍을 오라'고 외치고 있다.

[삽질과의 10년 전쟁] 뱀에 물리고 정신과 약을 먹으며...

그가 금강에서 풀만 뽑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10여년 전만해도 이 지역에서 잘나갔던 지역 언론사인 백제신문사의 대표 기자였다. 기자와 직원을 거느린 사장이었다. 하지만 4대강사업을 취재하면서부터 자치단체와 기업-업체 광고주들은 4대강사업 비판 기사를 중단하지 않으면 모든 광고를 끊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재정이 열악한 대부분의 지역 언론사들은 여기에 굴복했지만, 그는 달랐다. 신문사의 광고부서를 없앴다. 더 이상 기사를 대가로 부당한 광고를 받지 않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그리고 몇 개월간 통장에 남아있던 돈을 기자들의 월급과 취재비로 써버리고 신문사 문을 닫았다. 그 뒤부터 <오마이뉴스>의 4대강 취재 전문 시민기자로 나서서 '삽질과의 전쟁'을 벌였다.

10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그의 취재활동은 '나홀로 삽질'처럼 무모하리만치 처절했다. 2009년, 비밀군사작전을 벌이는 것도 아닌데 4대강 공사장 인부들은 카메라를 든 그를 내쫓았다. 망치를 내던지고 삽을 휘두르면서 그를 협박했다. "밤길 조심하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고 "4대강 공사를 취재할 때는 태어나서 듣지 못한 쌍욕을 다 들었다"고 했다.

물고기가 금강에서 떼죽음을 당했을 때 그는 매일 새벽 강에 나갔다. 썩은내가 진동하고 구더기가 들끓는 물고기 사체를 마대 자루에 담았다. 이명박 정부가 물고기 떼죽음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인 오전 9시 이전에 죽은 사체의 정확한 숫자를 취재해서 기사에 담았다.

물고기의 사체가 꿈속에서도 떠올라 정신과 약을 입에 털어 넣기도 했다. 풀숲에 들어가 취재하다가 벌에 쏘이고 뱀에 물렸다.
 

서울 동대문에서 청바지를 팔던 잘 나가던 사장 김종술은 4대강 사업으로 빈털터리가 됐다. ⓒ 김종술


시궁창 펄을 맨손으로 뒤지면서 죽은 강 고발

2014년에 그는 금강에 창궐한 큰빗이끼벌레를 특종 보도했다. 첫 보도 때에는 강에서 볼 수 없었던 괴생물체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큰빗이끼벌레를 입에 집어넣기도 했다. 기사를 송고한 뒤 그는 혼자 풀밭에서 배를 잡고 뒹굴어야 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구토가 밀려왔다.

그 뒤에도 그는 공산성 붕괴 특종을 했다. 공사장 인부들이 취재를 가로막아 사비를 털어 비행기를 띄워서 취재한 기사였다. 또 4급수 지표종인 붉은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강바닥에 창궐한 것을 기사로 써서 4대강사업 이후 죽어가는 금강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펄을 한 삽 퍼서 맨손으로 뒤지면서 찾아낸 특종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쓴 4대강 관련 기사는 총 1700여 개에 달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틀에 거의 한 번꼴로 기사를 쓴 셈이다. 그의 이런 기사와 특종은 혹독한 노동의 대가였지만, 그는 4대강 기사를 쓰면서 한 번도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 <오마이뉴스>의 원고료와 간간이 들어오는 강의료 등이 수입의 전부였다. 차의 기름값을 충당하기에도 모자란 돈이다.

간혹 그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물으면 이렇게 말하는 때가 있었다.

"목포에서 타일 붙이고 있어요."
"공주에서 밤 따고 있습니다."
"노가다 뜁니다."


'삽질과의 전쟁'으로 많은 빚을 진 그는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취재비를 마련하고 있다. 최근 '풀과의 전쟁'을 시작한 뒤에는 이마저도 못하고 있다.
 

'금강 요정'으로 불리는 김종술 시민기자가 취재비를 마련하려고 타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 ⓒ 안정호


[동행 취재] 삽질 10년, 산 강과 죽은 강

이런 그와 함께 21일부터 금강과 낙동강 탐사 취재를 떠난다. 23일까지 2박 3일간 '자전거 탄 금강' 행사의 동행 취재다. 금강유역 환경회의, 대전환경운동연합, 대전충남녹색연합, 세종환경운동연합, 서천생태문화학교, 이상돈 국회의원실이 공동주최하는 행사다. 충남연구원은 기술후원을 한다.

금강은 4대강사업의 흔적을 지우면서 산 강으로 거듭나고 있다. 1년 넘게 수문이 개방된 세종보 하류에서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 생물 1급 물고기인 흰수마자 31마리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맑은 물에 사는 재첩도 돌아왔다. 금강에 세운 3개보를 개방한 뒤에 드러난 모래톱에서도 꼬마물떼새 등 4대강사업 이후 사라졌던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은 지난 2월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세종보 해체', '공주보 부분해체', '백제보 수문 상시 개방' 방안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하면서 '4대강사업으로 4대강이 살아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래 도표 하나로도 자유한국당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충남연구원이 제시한 녹조 발령 상황 ⓒ 충남연구원


지난 10년간 금강의 수환경을 모니터링해왔던 충남연구원이 확인한 녹조 발생 '관심 이상' 발령 기간이다. 수문이 닫혔던 2017년에는 무려 8개월 동안 119일에 걸쳐 녹조경보를 발령했다. 2018년 세종보의 수문이 열리자 절반 수준인 59일로 떨어졌다. 그 뒤 공주보 수문을 전면 개방하고, 최근 백제보의 수문까지 열린 2019년의 녹조 발령 횟수와 기간은 '0'이다.

금강 하굿둑에 갇힌 하구 지역은 여전히 수질이 나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예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오마이뉴스>는 환경단체들과 함께 금강을 동행취재하면서 4대강 보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탐사보도한다. '산 강의 귀환'을 생생하게 전할 예정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거의 수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낙동강 지역은 올 여름에도 여전히 녹조밭이다. 8월 28일부터 31일까지 3박4일 동안 낙동강 살리기 네트워크와 생명그물, 마창진환경운동연합, 대구환경운동연합 등과 함께 동행 취재하면서 '이명박근혜 정권'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죽은 강' 낙동강도 탐사보도한다.

특히,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거나 해체하면 농업용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고, 일부 관변단체와 농민들도 가세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달간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공주지역의 경우, 공주보 해체 시 농업용수가 부족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이 모두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이번에 낙동강 지역을 취재하면서 농업용수 부족의 진실도 파헤칠 예정이다.

마지막 날인 31일에는 1조 1000억 원을 들여 지어놓고도 녹조 등의 폐해 때문에 담수도 하지 못하는 영주댐의 내성천에서 열리는 '영주댐 해체 문화제'도 취재해 보도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 10여 일간의 탐사보도
 

2016년 8월 23일 오후 충남 부여 금강 백제보 상류 2km 지점에서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가 강바닥의 토양을 채취해 살펴보고 있다. ⓒ 이희훈


다시 김종술 기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내 화단과 밭의 잡초를 뽑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의 땅에 난 잡초를 뽑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당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김 기자는 자기의 땅도, 남의 땅도 아닌 금강 곰나루의 모래밭에서 풀을 뽑고 있다. 그곳을 자기 땅인 양 가꾸고 있다. 왜일까?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근 풀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에게 처음 그 이유를 물으면서 나는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이 떠올랐다. 작가는 1.5m 길이의 쇠막대기를 들고 다니던 양치기 엘레아르 부피에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가 가려고 한 곳에 이르자 그는 땅에 쇠막대기를 박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구멍을 파고는 그 안에 도토리를 심고 다시 덮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나는 그곳이 그의 땅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누구의 땅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중략) 그는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를 심었다."

엘레아르 부피에는 혼자 도토리를 심어 화전민들이 휩쓸고 가서 황무지가 됐던 숲을 30~40년 동안 일궈 많은 사람들의 삶터로 만들었다. 김 기자 또한 지금 풀을 뽑고 있지만, 앞으로 수천 년간 미래세대가 향유해야할 우리의 강을 다시 회복시키는 일을 지난 10여 년 동안 해온 셈이다.

지오노는 본문에 앞서 서문격인 짧은 글에 이렇게 적었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으로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잊을 수 없는 인격'과 함께 10여 일 동안 탐사보도를 떠난다. 아니 '삽과 낫을 든 바보 기자'와 함께 한 달여 동안 현장 취재 기사와 기획 기사를 이어간다. 이번 기획기사에 독자들이 보내주시는 좋은 기사 원고료의 일부는 나홀로 강을 지켜온 '금강의 부피에'에게 전달된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후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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