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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30 14:09 수정 2019.08.30 14:38
1948년 10월 19일 발생한 여순사건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한국전쟁 발발 후 산내에서 학살된 이들과 유족의 삶을 8주에 걸쳐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1948년 재일대한청년단을 예방한 자리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민간 단체인 대한청년단의 총재를 맡았다. 이후 대한청년단은 민간인 살해와 불법구금을 진두지휘하다 국민방위군 사건에까지 연루된다. ⓒ 대한뉴스

여순사건 70주년 기념 사진전에서 전시된 사진. 1948년 당시 여수시민이 운동장에 있고 기관총을 든 미군이 보인다. ⓒ 심명남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우익 청년단체인 대한청년단이 마을 주민들을 일 년 넘게 불법 감금하는 수용소를 운영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관이 아닌 민간단체가 장기간 수용소를 운영했다는 증언은 한국전쟁 시기까지 통틀어 처음 나온 것이다(관련기사: 빨갱이 삼촌 잡으려 밤마다 보초 선 열세살 조카). 

최기호(82, 당시 12세로 구례군 광의면 거주)씨는 최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여순사건이 있던 1948년 12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동생 2명과 나까지 가족 6명이 대한청년단원과 의용 경찰에 의해 인근 국민학교로 끌려가 감금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대한청년단에 의해 끌려온 사람들은 면내 19개 마을 약 100여 명이었다. 국민학교(1년)와 개인이 운영하던 양조장 집을 부수고 세운 천막(6개월)에서 1년 6개월 동안 갇혀 살았다. 이 중 일부는 불법 살해되거나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다. 대전형무소에 간 사람들은 이후 학살됐다"라고 증언했다.

끌려온 사람들은 전남 구례군 광의면에 사는 마을주민들로 가족 중에 여순사건 연루자가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감금된 곳은 광의면 면소재지에 있는 광의국민학교였다.

증언자들은 마을주민들을 감금하고 살해하라고 지시한 인물로 김영준 광의면 대한청년단장을 지목했다. 또 그의 지시로 청년단원과 의용 경찰이 행동대로 나섰다고 증언했다. 행정권과 사법권이 없는 면 단위 대한청년단장과 단원들이 법적 통제를 받지 않고 무차별 연행은 물론 수용소 운영과 살해까지 했다는 것이다.
 

대한청년단

 
'구례군지편찬위원회'가 펴낸 '조사 증언록'(2004)에도 "광의면 한청단원(대한청년단원)이 주변 동정을 살펴서 김영준 단장에게 보고하면 경찰이 관련자를 연행했다, 광의면 한청은 무장대를 조직해 반군이 출현했다는 정보가 있으면 죽창을 들고 출동했다"라고 기록했다. 이어 "광의면 한청은 좌익 여부를 가려내는 감찰부, 빨치산이 언제 마을에 들어오는지 정부를 파악하는 정보부, 총무부, 훈련부 등으로 구성되었다"라는 증언도 있다.

대한청년단은 1948년 12월 당시 대동청년단과 서북청년회 등 전국에 산재한 우익 청년단체들을 통합해 만들었다. 총재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이승만이 맡았고, 출범 당시 '총재 이승만 박사의 명령을 절대복종한다'라는 선서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대통령 이승만의 비호로 10개 도지부, 17개 지방지부, 180개 시지부, 4230개의 군, 읍 지부를 두었으며 1948년 12월 기준 회원 수만 300만 명에 달했다.

우익 청년단체가 불법 연행과 살해를 했다는 증언은 있었지만, 군인과 경찰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임의로 장기간 불법 수용소를 설치, 운영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알려진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광주 포로수용소는 군에 의한 정식 포로수용소였고, 제주 4·3사건 때 설치된 수용시설은 단기간 임시수용소였다.

감금 이유는 토벌을 피해 지리산으로 입산한 다른 가족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최씨의 가족도 최씨의 삼촌인 최귀근(당시 32세)이 지리산에 입산하자 격리·감금됐다. 최귀근의 아내와 자식들도 불법구금됐다. 

증언자들은 수용소 생활이 매우 처참했다고 입을 모았다. 최씨는 "솥, 그릇, 이불, 옷가지, 식량까지 스스로 구해야 했고 마룻바닥에서 겨울을 나며 추위와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밤마다 빨치산 공격에 대비해 하룻밤에 3교대로 보초를 섰다"고 밝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구례지역 여순 사건을 조사보고서를 통해 사건의 가해 주체로 국군 제3연대와 12연대, 구례경찰서 경찰을 꼽았다. 이에 따라 "최종적인 감독책임은 국방부, 대통령 이승만과 국가에 귀속된다"고 밝혔다. 경찰에 대해서는 "내무부 치안국이 지휘 및 관리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한청년단이 군경의 통제를 받지 않고 마을 주민을 무차별 연행과 살해, 장기간 감금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정부와 진압군, 경찰 등 이중, 삼중의 비호와 연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이 대한청년단 총재 이승만과 정부에 귀속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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