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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19.12.24 14:09 수정 2020.01.06 18:19

임시정부 100년 역사탐방단은 지난 5일 오전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며 사진을 찍었다. ⓒ 조정훈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 앞에서 남경대 강하나 학생이 탐방단에게 위안소 시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 조정훈

  
"강제로 끌려가 인생을 망쳐버린 흔적을 보면서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주도해 '소녀상을 철거하고 수요집회를 중단하라'는 집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분개했습니다..."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에 참여한 참가자들과 학생들은 임신한 위안부 동상이 있는 난징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 앞에서 착잡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건물 외벽에 70여 명의 위안부 할머니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아 흙이 젖어 있는데 멀리 서울에서 날벼락 같은 소식이 탐방단에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역사탐방 마지막 회차인 6회 탐방단은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3박4일 동안 임시정부가 탄생했고 활동했던 상하이(상해)와 자싱(가흥), 항저우(항주), 난징(남경) 등을 돌아보며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중국 난징(남경)에 있는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 벽면에 있는 70명의 위안부 할머니 사진. 사진 밑에는 항상 마르지 않는 흙이 있어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을 상징하고 있다. ⓒ 조정훈

    
가장 마음이 아팠던 곳은 탐방 마지막 날인 5일 오전 난징에 있는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을 방문했을 때였다. 전날 서울에서 들려온 '소녀상 철거하라', '수요집회 중단하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인 이우연씨가 주도하고 국사교과서연구소, 한국근현대사연구소, 반일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 위안부와 노무동원 노동자 동상 설치를 반대하는 모임 등 단체 10여 명이 일본군 위안부 수요집회를 방해하는 집회를 하다니...
 
이곳은 평안도 출신 고 박영심 할머니가 지난 2003년 현장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와 생활했다고 증언을 한 곳이다. 박 할머니는 두 번째 건물 19번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며 "내가 있던 곳이 바로 여기"라고 증언했다.
 
박 할머니의 증언과 한·중·일 3국 양심적인 학자들의 노력이 이어지면서 중국정부가 유적진열관 건립을 진행해 2015년 12월 정식 개관했다. 한쪽 벽면에 70명의 위안부 피해자 얼굴 사진이 걸려 있고 광장에는 고 박영심 할머니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탐방단은 박영심 할머니의 동상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차마 "미안합니다"라는 말조차 어느 누구도 꺼내지 못했다. 침묵으로 머리를 숙인 탐방단의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죄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이우연씨 등은 "위안부 동상은 강제로 끌려간 소녀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만든다. 실제 위안부는 10대 초의 소녀가 아니라 평균적으로 20대 중반의 성인이었다. 그들을 위안부로 만든 주역들은 일본 관헌이 아니라 친인척이나 혹은 가까운 조선인 지인들이었다"고 왜곡했다.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 안에 있는 '마르지 않는 눈물' 흉상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 조정훈

  
하지만 이곳 리지상 위안소에는 일본인들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다. 일본군 소장 출신인 야수지 오카무라는 1949년 2월 "내가 위안부 창시자다. 위안부는 군대를 따라다녔고 소분대가 됐다"고 증언한 기록도 있다.
 
오카무라는 1932년 일본 군인들이 점령한 중국 지역에서 현지 부녀자들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의 223개 보고서를 접수하고 군 최고 지휘관에게 '위안 시설'을 만드는 제안을 한 인물이다. 그는 군대 안에 위안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로 일본 군인들이 민간인을 성폭행하는 횟수가 줄어야 점령지에서의 반일 감정을 낮출 수 있고 성병이나 다른 질병들로부터 군인을 보호해야 전투 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두 가지 근거를 들었다.
 
탐방단은 전시관 안에 있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라는 제목이 붙은 할머니의 조각상 얼굴을 하얀 손수건으로 닦아줬지만 흐르는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라는 탄식과 함께 다시는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없기를 다짐할 뿐이었다.
 

지난 4일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유적지인 '천녕사'를 찾은 역사탐방단은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절을 올렸다. ⓒ 조정훈

  

역사탐방단은 지난 3일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묻혀있던 송경령능원(상하이 만국공묘)를 찾아 김태연 선생 묘비 앞에서 제를 올렸다. ⓒ 조정훈

  
앞서 홍소연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건립위원회 자문위원은 지난 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 역사강의에서 김구 선생의 호에 대해 "백범(白凡)은 백정과 범부를 뜻하는 것으로 당시 우리 국민 90%가 백범이었다"고 말했다.
 
탐방을 마치는 마지막 날 중학교 2학년 이준혁 학생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 적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이 존경스럽다.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뜻을 잊지 않겠다"며 "나도 백범이 될 수 있다"고 웃었다.
 
정지호, 지원 남매는 "김구 선생의 피난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구 선생의 당시 처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거나 "역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왜 역사공부가 필요한지,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리지샹 위안부 유적 진열관이 가장 가슴 아팠다는 역사교사 유병서씨는 "우리나라에 과제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오늘 이 경험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백범 유병서'라고 쓰기도 했는데 '각성'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담고 간다"고 말했다.
 
장인수 선생은 "위안소를 돌아보면서 '아미꼬'라는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이 자기 국민마저도 위안부를 만든 것 자체가 어이없었다"면서 "일본은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왔다고 헛소리를 하는데 학생들에게 잘전달해 이런 역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가르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역사탐방에 도움을 준 The-K교원공제회 신지원 과장은 "천녕사에서 제를 올리고 위안소에서 눈물을 닦아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며 "제가 효창공원 인근에 사는데 1월 1일이 되면 다시 생각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지원 과장은 과장은 "이번 임시정부 탐방사업은 단기사업이라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직접 와서 보고 느끼니까 굉장히 의미있는 사업이라는 생각"이라며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임시정부 100년 역사탐방단은 지난 4일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 중국 장제스의 지원으로 독립운동 군사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난징 교외 선사묘에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유적지인 '천녕사'를 찾았다. ⓒ 조정훈

  

김구선생의 피난처였던 하이옌(해염)에 있는 재청별장에 있는 백범 흉상. ⓒ 조정훈

  
역사탐방을 마친 탐방자들은 스스로가 백범이 되었다. 상하이의 임시정부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곳을 돌아보고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진 홍커우공원과 김구 선생이 피난처였던 재청별장,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유적지인 천녕사, 김구 선생이 장제스(장개석)와의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묵었던 호텔인 '중앙반점'에서 당시 독립투사들을 느끼며 모두는 '백범'이 되었다.
 
여기 임시정부 100년을 맞아 다시 일어서는 백범이 있다.
 
고재호, 곽정헌, 권신영, 김동욱, 김보미, 김승국, 김은경, 김혜영, 박다빈, 서재호, 송인수, 신지원, 안효정, 양진서, 유병서, 이석환, 이은경, 이은미, 이재만, 유우종, 이준혁, 이충효, 이해규, 장인수, 장지현, 정지원 정지호, 이재영, 정현선, 정영찬, 채영현, 최경미, 최문학, 최병일, 홍성길, 홍춘경, 그리고 홍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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