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1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문듣기 등록 2020.01.02 08:12 수정 2020.01.20 15:53

미 토크쇼 진행자 트레이버 노아와 사진찍은 다음날 그의 쑈에서 대통령을 탄핵한 "South Korea"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반가왔다. ⓒ 최현정


"앗, 트레이버 노아(Trevor Noah)다."

한국에서 온 친구에게 학교 구경을 시켜주는데 갑자기 복도 끝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그곳엔 미국에서 가장 젊고 인기 많은 토크쇼 진행자 중 한 명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신청자가 너무 많아 진작 포기했던 오늘 저녁 특별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총장을 비롯한 높은 학교 관계자들이 이 셀럽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우린 용감히 '사진 한 장'을 요청했다. 흔쾌히 승낙. 신이 난 친구가 자신은 코리아에서 왔다며 악수를 청한다.

"코리아? 노스 코리아?"

특유의 진지한 얼굴로 던지는 트레이버 노아의 반문에 총장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린다. 솔직히 좀 진부한 반응이었지만 우리도 웃으며 여유 있게 그에게 대답했다.

"사우스 코리아. 우리 얼마 전에 대통령도 탄핵한 나라야!"

인지상정이라고 기분 좋게 찍은 사진 덕에 나는 그의 TV쇼 채널을 찾아보게 됐다. 그런데 우연처럼 바로 다음 날, 한국 관련 내용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한국 국민들이 권력을 남용한 대통령을 탄핵했다는 뉴스 클립들을 죽 보여주고는 그가 말한다.

"와우...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시켰다고? 우리 눈 감고 한 번 상상해 보자... 으음~" (☞영상보기)

힘겨운 탄핵, 탄탄한 대선가도
 

18일(미국 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의사봉을 들고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 AFP=연합뉴스


트레이버 노아가 그의 <The Daily Show>에서 눈 감고 상상하던 때로부터 2년 반이 지난 12월 18일, 미국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했다. 한국 국민들이 전직 대통령을 탄핵할 때 적용됐던 권력남용, 그리고 의회 방해 두 가지 혐의다. 표결 결과는 230:197과 229:198. 거의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했고 공화당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반대했다.

이번 일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 조 바이든(Joe Biden) 아들에 관한 수사를 종용했던 사실이 도화선이 됐다. 하원의 탄핵 승인 결정까지 많은 외교 관료들의 청문회가 있었고 TV는 하루 종일 이를 생방송했다. 기존 미국 대통령의 공식을 무시하고 국정을 운영해 가던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큰 제동이 걸리는 순간이었다.

19세기 앤드류 존슨, 지난 세기 빌 클린턴에 이어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통과된 탄핵안이었다. 그 순간 민주당 의원들이 환호했지만 검은 옷을 입고 단상을 지킨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들을 제지했다. 그녀는 "오늘은 미 역사상 부끄럽고 어두운 날"이라고 말했다. 40년 동안 정치를 해온 그녀 말대로 하원 통과 이후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을 2/3 이상으로 통과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트럼프에게 이완되던 공화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그 예상처럼 '마녀 사냥' 운운하며 탄핵 이후 더욱 가열차게 대선 자금을 모으고 있는 트럼프는 팰로시 의장에게 "하루 빨리 탄핵소추안을 상원으로 보내라" 재촉하고 있다. 공화당이 과반수인 상원에선 탄핵이 트럼프에겐 훈풍으로 작용돼, '트럼프의 시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한 번도 성공 못한 대통령 탄핵은 민주당에게 오히려 역풍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의 딸이자 수석 보좌관인 이반카 트럼프는 TV에 직접 나와 아버지는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며 하원 탄핵이 그를 위축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대통령 선거 1년을 앞두고 펼쳐지는 지금의 지형이 결코 민주당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얘기인 것이다.

우후죽순 민주당과 꽃놀이패 쥔 트럼프
 

美미시건에서 유세하는 트럼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미시건 주 배틀크리크의 켈로그 아레나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유세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트럼프 재선에 또 하나의 청신호는 민주당의 후보 난립 상황이다. 민주당은 지난 12월 19일 여섯 번째 대선 후보 토론회를 펼쳤다. 이날은 조 바이든, 엘리자베스 워렌을 비롯해 모두 7명이 토론 자격을 충족해 참가했다. 하지만 아직 후보군에 남아 있는 이들이 15명이나 된다. LA에서 열린 2019년 마지막 토론회 승자는 버니 샌더스라는 평이 있지만 그 전엔 엘리자베스 워렌이었다. 가장 집중도가 높았던 첫 번째 토론회의 승자였던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12월 초 후보직을 조용히 물러난 상태다.

한마디로 지지하고 싶어도 누가 트럼프의 상대가 될지 아직도 안갯속인 것이다. 여기에 아직 한 번도 토론회장에 오르지 않은 초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TV 광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 중이다.

2016년 11월 9일,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확정된 아침이 생각난다. 전날 못 끝낸 도자기 작업 마무리를 위해 난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 공기는 매우 달랐다. 평소 과도하게 활기차던 아침 방송 앵커부터, 길에서,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 얼이 빠진 느낌이었다. 어제 저녁 수업 시간 내내 개표 현황을 전해주며 환호하던 젊은 교수 애슐리도 부스스한 얼굴로 느지막이 교실에 나타났다.

조심스레 안부를 물으니 울듯 말듯한 푸석한 얼굴이다. 선거 후 휑하니 구멍 뚫린 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기에 나는 주저리주저리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우리 한국도 그랬다며 독재 정권 얘기, 촛불 얘기, 탄핵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한참 마무리를 하던 벽걸이 작품의 원그림이 오윤이란 한국의 목판화가 그림이었는데 스케치를 보여주며 하던 설명을 곁들였다. 그때 멍한 얼굴로 내 얘기를 듣던 애슐리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위로해줘서 고마워. 너넨 탄핵을 했다고? 우린 글쎄... 하지만 이건 확실해. 4년 후 재선은 안돼, 절대 안 돼."

당시엔 전날 막 끝난 선거를 놓고 탄핵이나 재선이란 말 자체가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건 생각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었다. 선거 1년을 남기고 미국 하원은 참 어렵게 대통령을 탄핵했고, 그것과 상관없이 트럼프의 재선은 이렇게 눈앞에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애슐리처럼 재선은 안된다고 주문처럼 외쳤던 이들의 바람이 지금까진 회의적으로 보인다. 임기 내내 외친 탄핵이 가시화된 2019년 말까지도 오히려 트럼프 세력의 결집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그 주문은 더욱 위태롭다.

2020년 미국 대선은 다시 트럼프일까? 아니면 아직 사분오열된 민주당의 누구일까? 애슐리의 바람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도 마음 졸이며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2000년부터 시민 기자. OhmyNews 북미 통신원, The Jersey Books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