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1 14:17최종 업데이트 20.01.2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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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난 지도 오래되었다. 그가 2003년에 다음 카페에서 와인만들기 동호회를 만들어 사람들과 교류하던 시절부터 만났다. 그는 외국 와인을 마시며 즐기는 형태가 아니라, 이 땅에서 나는 포도와 복분자와 사과들로 와인 만들어 마시는 것을 즐겼다. 그의 와인 지혜는 캐나다에서 습득한 것이었다.

그는 1989년 12월 말에 캐나다로 가서 13년 동안 살다가 2002년에 돌아왔다. 캐나다는 현대에 들어 아이스 와인을 꽃피운 곳이다. 독일인들이 1970년대에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로 이주해와 살면서 캐나다의 아이스 와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는 그 영향을 받아 충남 예산에서 달콤한 사과 와인을 아이스 와인 병에 담아 팔고 있다.

그는 정제민이고, 예산사과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와인생산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예산으로 그를 찾아가 와이너리 카페의 따뜻한 난로 가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방문객들에게 사과주 증류 시스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정제민 대표. ⓒ 막걸리학교

 
- 최근에 <사과주학(Ciderology)>이라는 책을 보았는데요, 사과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사과 와인은 맑고 상큼하고 청량한 알코올 음료라는 게 매력입니다. 좋은 와인을 얻으려면 첫째 재료의 신선도 둘째가 당도 셋째가 산미가 좋아야 합니다. 당도는 당연히 필요한데 무엇보다 신맛이 있어야 합니다. 신맛은 효모 이외의 잡균을 제어하는 기능을 하여 안전 발효를 돕고, 청량감이나 깔끔한 맛을 이끌어냅니다. 이 때문에 포도 다음으로 사과가 발효주로 굳건히 자리잡았죠."

- 그렇다면 양조용 사과에는 신맛이 있다는 뜻이네요?
"그럼요, 양조용 사과는 시죠. 스페인의 아스트리아스 지역의 시드라는 지리적 표시를 적용해서 사과 품종 22가지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양조용 사과는 크기가 작고, 생과로 먹기 적합하지 않고, 신맛이 강하죠. 산미가 강한 것으로 술을 담그면 경쾌하고 깔끔한 맛이 납니다."


- 우리에게도 신맛 나는 사과가 양조용으로 쓰이나요?
"홍옥이나 국광은 신맛이 도는데,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품종이 되었지요. 그것이 안타깝죠. 우리는 제수용이나 선물용으로 팔아야 좋은 가격을 받다보니, 사과가 크고 예쁘고 때깔이 좋은 품종 위주로 개량되어 왔습니다."

- 한국은 아직 사과주에 대한 지평이 넓지 못한데요. 과일로 치자면 우리에게는 포도보다는 사과가 훨씬 친숙하고 많이 생산되는데 사과주가 포도주보다 덜 눈에 띄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포도야 즙이 풍부하고 단맛, 신맛, 떫은맛이 있어서 이상적인 와인이 되었지요. 문화적으로 접근하면, 우리에게는 포도, 복분자, 오디, 딸기 등을 으깨서 소주를 붓고 맛과 향기 성분을 추출하여 설탕으로 감미하여 마시는 침출주 관행들이 있습니다. 제가 와인동호회를 하면서 깜짝 놀란 것은 과실주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과일을 어떻게 발효시키는지 궁금해서 찾아오더라구요.

그래서 '과실주 하시는데 발효 안 하세요?'라고 되물었죠. 주정을 사용하여 과실주를 침출하는 문화가 우세하여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사실 포도나 복분자는 쉽게 물러지기 때문에 보관성을 높이려고 소주를 붓다보니 술과 친해졌고, 보관성이 좋은 사과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지요."

- 아하, 포도와 술의 결합은 보관하는 한 방편으로 이뤄졌군요. 사과는 단단하니 그럴 필요가 없었구요. 세계에 다양한 사과주가 있던데 소개 좀 해주시지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시드르(cider)와 이를 증류시킨 칼바도스, 스페인의 시드라(sidra), 독일의 아펠바인(apfelwein) 등이 유명합니다. 특히 스페인의 시드라는 6개월에 걸쳐 완전 발효시켜 단맛도 탄산도 없고 시고 떫고 써서 그냥 마시기에는 거칠어서 그 지방의 해산물이나 느끼한 고기와 함께 마셔야 합니다.

탄산이 없어서 청량감을 주기 위해서 술을 특이하게 따르는데, 한 손으로 술병을 높이 치켜들고 술잔 든 손은 허리 아래로 낮게 내려서 폭포처럼 내리 붓습니다. 서툰 사람은 술을 많이 버리게 되지요. 이런 문화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스페인 아스투리아 오비에도 지방을 많이 찾아갑니다."
 

투명하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과 와인. ⓒ 막걸리학교

 
- 탄산이 풍부한 사과 와인들이 있는데 이는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프랑스 노르망디 시드르는 탄산이 들어있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매력적이지요.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방법의 하나는 발효된 술을 병에 담고 여기에 설탕과 효모를 넣어서 탄산을 가두는 샴페인 방식인데, 이는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병마다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서 쉽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충주에서 프랑스인 레돔이 샴페인 방식으로 스파클링 사과와인을 만들고 있지요. 또 다른 방식은 생성된 탄산을 밀폐된 저온 탱크에 담아, 맥주처럼 주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지막은 이산화탄소를 강제로 집어넣는 방법이지요. 첫 번째는 노동력이 많이 들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듭니다. 하지만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아서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스파클링 와인 시장이 확장될 것으로 봅니다."

- 한국와인생산협회 회장이라서 여쭤보는데요. 와인 시장의 점유율은 아무래도 레드 와인이 큰데, 국산 와인 제품은 로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이 잘 팔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프랑스는 레드와 화이트가 함께 공존하지만, 독일은 화이트 와인이 발달했는데 그것은 기후와 농업의 차이 때문입니다. 레드 와인은 탄닌이나 산미가 있어야 숙성되면서 품질이 좋아지는데 우리는 여름에 비가 많아서 탄닌이나 산미있는 재료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독일의 화이트 와인이 탄닌의 무게감보다는 상큼하고 깔끔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샤르도네나 청수를 재배해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완성도가 높습니다. 로제 와인은 숙성된 맛보다는 과일의 향과 색을 투명하게 잘 반영한다는 점에서 국내 제품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한국 와인의 특징은 포도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과일 와인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 현재 와인 시장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대형마트에 저가 와인이 많이 들어오면서, 상대적으로 와인의 저변도 넓어졌습니다. 또 지역 관광과 연계되어 국내 와인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와인을 요청하면서 특급 호텔의 소믈리에들도 한국 와인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소믈리에 스스로도 한국 와인의 성장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디너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과 와인을 저장하고 있는 오크통과 스테인리스통. ⓒ 막걸리학교

 
- 올해 한국와인생산협회에서 하게 될 일은 어떤 게 있나요?
"올 2월에는 2박3일 일정으로 와이너리 2세들 교육이 있습니다. 와인 분석법과 와인 테이스팅, 서비스에 대한 교육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6월에 코엑스 서울국제주류박람회에 참석하고, 가을에는 대한민국 우리술 축제에 참여하는데 지역별로 흩어지지 않고 한국 와인으로 모여서 함께 홍보하려고 합니다. 11월에는 상해주류박람회에 와이너리 6군데가 함께 참여할 예정입니다."

- 끝으로, 한국와인생산협회는 단합이 잘 되는데 그 동력은 무엇입니까?
"하하, 수입 와인이라는 강력한 외부의 적이 있다보니, 우리끼리 싸우고 나 잘났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후발 주자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뭉쳐 맞서야지요. 또한 와이너리 운영자들은 모두가 농민을 겸하고 있습니다. 한산소곡주 제조인들을 제외하면 전통주를 빚은 이들은 농부가 아니라 대부분 술 빚기에 전념하는 양조인들입니다. 와인 생산자들은 서로 농사 지으면서 정보도 교환하다보니 쉽게 동질감을 느끼며 단합하는 것 같습니다."

- 술과 친해지고 술을 빚은 지도 20년이 되어가는데, 술을 빚으면서 달라진 생각들이 있습니까?
"처음 시작할 때는 해볼 만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내 대에서 안 끝나겠구나 하는 무거운 생각이 듭니다. 누가 이어받지 않으면 지금 하는 일이 거품처럼 사라지겠구나, 아, 긴 호흡으로 가야하는 일이구나를 느끼죠. 그래서 막 달려가려 하지 않고, 다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외국 와이너리처럼 먼 훗날 나를 기억해주는 이가 있었으면 하지요."
 

봄을 기다리는 예산사과와인 농장. ⓒ 막걸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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