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 07:49최종 업데이트 20.06.0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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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역 7번 출구로 나선다. 역시 강남이다. 자칫 무단횡단이라도 했다가는 이 세상과 작별할 것만 같은 왕복 6차선 도로가 보인다. 그 위에 다양한 국적을 가진 차량들이 가득하다. 벤츠와 아우디, BMW의 나라인 독일의 수도 베를린보다 독일 신형 세단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강남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작품이다. 현대산업개발 건물에 설치돼 있다.


베를린은 그에게 나치의 전쟁범죄를 반성하고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유대인 박물관'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뉴욕은 그에게 9.11 테러 참사로 파괴된 세계무역센터와 9.11 기념관을 만드는 마스터플랜을 요청했다. 서울은 그에게 강남의 어느 기업 사옥의 파사드(Facade, 건물의 입면)를 허락했다. 이것이 세계적인 건축가를 활용하는 서울스타일, '강남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잘못된 만남
 

세계적인 건축가 리베스킨트의 작품 앞에 조형물 '강남스타일'이 보인다 ⓒ 권은비

 
케이팝 신화와 공공미술의 잘못된 만남을 꼽으라면 강남 코엑스 동쪽 광장의 '강남스타일' 브론즈 조형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조형물은 4억 원의 예산과 작가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의아하다. 국가적,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도 아니고 공공 예산이 이미 확보된 조형물인데 작가가 '재능기부'를 했다.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정의에 따르면 '재능기부'란 남녀노소, 사회지도층과 일반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재능을 자원봉사로 연결시켜 우리 사회의 자원봉사 문화정착을 위해 시작된 새로운 기부 형태를 말한다. 이미 세계적으로 케이팝 '산업'의 성공 모델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 '강남스타일'을 위해 '재능기부'가 왜 필요했을까?

2012년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강타했을 때만 해도 종종 한국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물었다. "Do you know Gangnam Style?(강남스타일 알아요?)" 우리는 왜 한국에 대해 말할 때 '강남스타일'을 이야기해야만 했을까? 정작 우리는 '강남스타일'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를 열광시킨 케이팝 스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베를린 시민들이 알렉산더 광장에서 말춤을 추고 있을 때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어느 독일 여학생이 유창한 한국어로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중략)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중략)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라는 가사를 읊조리며 말춤을 출 때, 나의 낯도 뜨거워졌다. 그것이 "감각적인 여자"라니. 그때 어느 독일인이 다가와 "Do you know Gangnam Style?"이라고 물으며 한국 사람이냐고 했을 때 나는 중국인이라고 말해 버렸다.

몇 년 뒤, 말춤의 포인트가 연상되는 '손목'은 5미터 높이의 대형 조형물로 강남 한복판에 설치되었다. 이 조형물을 보고 영화 <타짜>의 대사가 떠오른다. 강남구는 강남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이 "손모가지"를 걸었다. 과연 그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다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한국에서 도시의 랜드마크를 만드는 일에 필요한 것은 창의적이고 훌륭한 예술가가 아니라, 유연하고 합리적인 공무원이라는 것을. 강남스타일을 뒤로하고 강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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