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1 08:15최종 업데이트 20.03.3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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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야말로 혁명이다. 개학은 연기됐고, 재택근무가 일상화됐다. 마스크 구입을 위해 약국 앞에 긴 줄이 늘어선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스페인에서는 민간병원을 국유화하고 의료물품 생산에 대한 보고를 의무화했다. 미국에서도 현금 직접지원을 고려하고 있으며, 한국처럼 국민건강보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3개월간 해고를 금지했다. 전 세계적인 경제공황에 대한 공포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고 돈을 찍어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 되고 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조차 40조원의 국채를 찍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도 이것을 사회주의라거나 빨갱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수많은 군중들의 환호와 환희 속에서 벌어지는 상상 속 혁명과 달리, 코로나19가 벌인 바이러스 혁명의 거리는 한산하다. 사람들은 불안감과 공포 속에서 조용한 혁명을 지켜보고 있다. 좌파가 수십 년 동안 주장해도 이루지 못한 일들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걸쳐 해내고 있다. 오히려 좌파들의 주장은 소박해 보인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개학이 연기되니 교육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를 단번에 알 수 있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어 사회와 나누었던 일을, 홀로 감당하게 되면 개인의 삶도 멈춘다. 기업 역시 육아를 사회가 책임져준다는 전제 하에 부모의 노동력을 사용해왔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부모를 출근시키는 것 자체가 과제다. 교육에 공동체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자선행위나 선의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 필요한 필수적인 행위인 것이다.


게다가 표준화된 최소한의 공공서비스가 없으면, 계층 간 격차는 더 벌어진다. 직장 눈치가 보여 휴가를 쓸 수 없는 부모들, 생계를 위해 집에 있는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없는 부모들, 필요한 교육을 제공해줄 문화적 자본이 없는 부모들은 지금의 개학 연기가 불평등의 시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당연히도 사회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킬 수 있는 개인들은 학교가 문을 열지 않아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공공의 서비스가 무너지면 저소득층이 먼저 위기다. 입시경쟁에서 사설학원과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공교육이 문제라는 말이 많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학교'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고 건강하게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공교육의 존재가치는 분명하다.

한편, 대학 강의를 비롯한 교육서비스도 동영상으로 제작되고 있는데, 유튜브로 올라오는 강의들은 해당대학의 학생이 아니더라도 시청할 수 있다. 등록금과 학력이라는 울타리가 쳐진 지식이 세상 밖으로 평등하게 공유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인류의 지적재산은 공유되어야 하며 향유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낭만적인 주장 뒤에 현실적인 고민도 이어져야 한다. 온라인 대학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등록금이 아깝다고 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의 팍팍한 세태를 지적할 게 아니라면 대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물을 필요가 있다. 비싼 졸업장을 사고 좋은 기업으로 취직하기 위한 관문으로서 기능하던 대학의 본질을 온라인강의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등록금이 아깝다면 이번 기회에 주요한 사립대학을 국공립화하고, 학벌철폐를 위한 국공립대 통폐합 이후에 등록금 자체를 낮추는 개혁을 단행해보는 건 어떨까?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까?
 

26일 오후 신용등급 4~10등급 대상 '코로나19' 경영애로자금 직접대출을 하는 서울 중구 소상공인재기지원센터 서울중부센터에서 상담이 진행중이다. ⓒ 권우성

 
코로나19로 생산이 멈추면서, 지구의 하늘이 맑아졌다고 한다. 정치지도자와 경제학자들은 책 제목으로만 존재했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현실에서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끊임없는 생산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고, 소비를 통해 다시 생산의 동력을 얻는 경제성장 신화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만성적인 실업과 지구가 감당하기 힘든 환경파괴는 인류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이는 담론 제시나 부분적인 처방에 그쳤고, 실질적인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레타 툰베리는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 뿐'이라고 일갈하지 않았던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야기만 하지 말고 실질적인 행동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최근 재난소득지원을 넘어서 전면적인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생산이 멈춰도 공동체가 구성원들에게 생존을 위한 돈을 지급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삽질과 환경 파괴 없이 경제공황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뉴딜실험이 시행되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정의와 사회 복지시스템도 흔든다. 우리는 이미 기업에 자금을 투입해보았자 고용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성장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했다.

고용은 정상으로 보고 실업은 일시적이고 예외적이라는 전제로, 복잡한 선별 절차를 거쳐 지급했던 실업급여 역시 너무 느리고 현실에 맞지 않다. 4대 보험에 가입된 노동자든, 영세자영업자든, 프리랜서이든,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영세자영업자들이 긴급대출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공황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당연히도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도 필요하다. 의료와 주거, 교육 교통 등 사람들의 삶에 필수적인 서비스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며 당연히 국가 재정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한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됐다면 국가의 통제도 필요하다. 인류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가 공동체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국가통제가 일으키는 문제도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한국 방역시스템은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는 한국사회의 씁쓸한 이면 속에서 이루어진 성공이다. 한국은 노동권이 약한 나라이기 때문에 과로와 헌신을 강요받아도 저항할 수단이 없다. 저임금과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 던져져도 묵묵히 견디고 일할 수밖에 없는 의료 노동자들을 비롯한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이 완벽한 방역을 가능하게 한 비결인 것이다.

두 번째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민감하지 않은 현실도 한몫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은 지나치게 상세하게 공개됐다. 이 때문에 사생활 노출을 꺼린 이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망설이는 요인으로 작용 할 수도 있다. 국가의 사회경제시스템에 대한 개입이 커지고 통제에 대한 필요도 공감대를 얻고 있지만, 이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논란거리다. 특히나 빅데이터 시대의 정보인권은 우리의 중요한 과제다.

사회적 연대의 원칙 속에서 코로나19 이후를 상상해야
 

코로나19로 관광객 끊긴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피사 EPA=연합뉴스) 이탈리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광 명소인 피사의 사탑을 찾는 발길이 완전히 끊긴 가운데 한 방역 요원이 17일 (현지시간) 사탑 주변 광장에서 소독제를 살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잠재해있던 정치경제사회시스템의 모순이 전 세계적으로 튀어나오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을 본다면 코로나19로 멈춘 세상 덕분에 우리는 추상적으로만 생각해왔던 '사회'와 '공동체'의 효용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각자도생보다는 공동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공공성 강화, 보편복지의 확대, 생태주의적 전환 등 사회경제시스템의 개혁도 가능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사회변화에 따른 희생은 사회적 취약계층이 지게 된다. 대구의 도로 위에서는 생계위협에 시달린 한 시민이 몸에 불을 지피려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만류로 목숨을 건졌다. 삼성에 맞서 철탑에 오른 김용희의 고공농성은 300일이 지났다. 현재의 바이러스 위기와 공포가 누군가의 침묵과 희생을 바탕으로 극복된다면, 코로나19가 인간에게 던진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이 된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하지만 사회적 연대의 거리는 더 가까워져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박정훈 기자는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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