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7 07:18최종 업데이트 20.07.0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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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를 찾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총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몇 가지 기록을 남겼다.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을 모정당 소속으로 간주했을 때,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한 180 의석은 역대 선거사상 최다 기록에 해당한다. 기존의 기록은 1960년 5대 총선 당시 민주당이 민의원에서 기록한 175석. 민주화 이후 전국단위 선거에서 한 정당이 처음으로 네 번 연속 승리하는 기록도 남겼다. 투표 마감시간인 15일 오후 6시 기준 잠정 투표율 66.2%는 28년 만의 총선 최고 투표율로도 기록될 것이다. 분명 한국 정치사에 남을 총선임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눈으로 보는 21대 총선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길어진 투표지 '밤샘 수개표' 21대 총선 투표일인 15일 오후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하나누리관에서 개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48.1cm인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분류기에 들어가지 않아 개표사무원들이 수개표를 진행한다. ⓒ 권우성

   
[세계 각국 상황] 선거 무산 위기, 권위주의로 회귀

현재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는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선거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대표자들을 선출한다. 북한,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1당 지배체제국가들마저 선거는 피할 수 없는 절차다. 전제군주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지방의원의 절반은 직접선거로 뽑는다.


그런데 올해는 유례없는 전 지구적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대부분 국가의 선거가 무산될 위기를 맞고 있다. 3월에 예정돼 있던 프랑스 지방선거는 1차까지 치렀음에도 2차 결선투표가 전격 취소됐다. 5월 7일 예정된 영국의 지방선거도 내년으로 연기됐다. 그 외 많은 국가에서 비상상황이라는 이유로 권력구성의 기본 절차로 간주되는 선거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보건위생 차원의 위기 외에 민주주의의 위협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미 포스트 코로나가 예고하는 다양한 모습들 가운데 권위주의로의 회귀 가능성이 자주 언급된다.

벌써부터 동남아시아의 몇 개 나라에서는 법 개정이라는 합법절차를 통해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얼마 전 국가 위기시 국민의 이동, 집회, 발언의 권리를 제한하는 권한을 총리에게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태국에서는 국가 비상시 국민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보도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비상법령이 발동됐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자신에게 긴급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모두 코로나19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3~4월 사이에 신속하게 진행됐다.
 

미국 뉴욕 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자택대피령을 내림에 따라 평소 사람들로 붐비는 뉴욕 타임스스퀘어가 3월 23일(현지시간) 아침 거의 텅 빈 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오래 전부터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서구에서도 앞서 언급한 프랑스와 영국의 경우처럼 기본적 국민의 권리인 선거제도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도 본선을 향한 각 정당의 모든 일정이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홍콩, 싱가포르 등 올해 다양한 선거를 앞두고 있는 나라들 또한 대부분 일정이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선거제도가 역대급 감염병으로 인해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당장 시급한 방역대책 외에도 코로나19가 야기하게 될 전방위적 영향은 이처럼 정치적 차원에서도 어두운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은] 정상국가 운영과 방역의 공존

한국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모범적 사례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의 방역당국이 보여준 발 빠른 대책마련과 대대적 검사, 정밀 격리 등은 시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국경을 최소한의 범위로 통제하는, 요컨대 정상적 국가운영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성공적 방역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보건위생 위기 상황을 국가비상체제로의 전환 없이,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기관만 비상체제로 전환되고 국민은 일상생활을 최대한 영유하도록 하면서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 즉 정상국가 운영이 철저한 방역과 완벽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한국형 방역 모델의 핵심이다. 한국형 코로나 대응 모델을 더 개발하고 지구촌 국가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다듬어 나가야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선명성을 가지고 견지해야 할 역할이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성심여중·여고 체육관에 설치된 원효로제2동 제3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비닐 장갑을 착용하고 있다. ⓒ 유성호

 
이렇게 방역과 정상국가 운영이라는 조화의 가능성은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올해는 많은 나라에서 정상적 선거가 불가능하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실제 상당수 연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4월 15일 예정된 대로 총선을 치르기로 했고, 국제사회의 눈은 또 다시 한반도로 쏠렸다.

개표소 내부의 방역대책, 많은 유권자들의 좁은 장소 집결 문제, 격리대상자들의 투표소 이동방법 등 쉽지 않은 문제들이 있었고, 방역 모범국 한국이 이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관심이 집중됐다. 우리 국민이 선거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그 결과에 주목하고 있을 때, 세계 언론은 우리의 선거와 방역의 조화에 주목했다.

"총선이 바이러스와 함께"

13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이 예정대로 총선을 치름으로써 바이러스 창궐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다시 부각시켰다며, 팬데믹이 한창인 상황에서 4.15 총선을 치르겠다는 한국의 결정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횃불인 한국의 위상을 부각시켜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South Korea polls turn spotlight on democratic erosion in virus crisis'.

역시 13일자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한국은 코로나19가 한창인 가운데 처음으로 선거를 개최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홍콩, 싱가포르 정부는 한국의 총선을 참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South Korea set for election turned upside down by coronavirus'.
 

3월 14일 미국의 CNN은 코로나19 사태도 한국의 선거를 중단시키지 못한다면서 이는 많은 국가들과 다른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 CNN

 
14일 미국의 CNN은 인터넷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도 한국의 선거를 중단시키지 못한다면서 이는 많은 국가들과 다른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South Korea is holding an election during the coronavirus crisis. Other countries are postponing theirs. Either way, democracy may suffer'. CNN에 따르면 이미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 적어도 47개국이 코로나19 사태로 선거를 연기했으며 미국, 뉴질랜드 등 국가들은 예정된 스케줄대로 선거를 치를 지에 대해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CNN은 한국이 정상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이유를 봉쇄를 하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역시 정상적 국가 운영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다.

14일 러시아의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한국에서 15일 완전한 형태로 총선을 치른다는 사실 자체가 전 세계에 놀라움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Выборы в Южной Корее пройдут не так, как раньше'. 특히 이 신문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전자투표가 아니라 투표소에 나와서 선거를 한다면서 이번 총선이 정상적 국가 운영의 일부분임을 강조했다. 이어 투표현장에서 1회용 장갑 착용을 의무화하고, 발열체크를 하며, 사전투표 방식을 통해 최대한 선거 기간을 연장함으로써 군중의 밀집을 최대한 감소시켰다고 설명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팬데믹 상황에서 선거를 한다는 것은 기념할 만한 사건이고 이 사건이야말로 한국인들이 2개월간 코로나19와의 싸움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역시 14일자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자이퉁>(FAZ)은 한국은 몇 주 전만 해도 중국 다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은 나라였는데 지금은 감염 추세를 완화시키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면서, 서구와 달리 확진자 경로 추적과 대규모 검사를 통해 경제, 사회 분야의 경직을 완화시키고 기업과 상점은 정상영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어 한국에서는 "총선이 바이러스와 함께"<Wuchern mit dem Virus> 열리고 있다는 제목을 통해 일상 속의 방역을 소개했다.
 

16일자 프랑스의 시사 주간지 <르 뿌앵>(Le Point). "코로나19 질병을 성공적으로 대처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선거를 통해 그의 정치적 건강을 회복했다." ⓒ 르 뿌앵

 
"사실상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국민투표"

선거는 집권 여당의 유례없는 대승으로 끝났다. 집권 여당의 180석 확보를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여당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코로나19라는 돌발 상황이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초기 예상은 몇 주가 지나면서 정반대로 흘렀다. 문재인 정부의 방역 성과는 분명 칭찬받을 만하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고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따라서 자연스러웠던 일이다.

외신의 평가도 유사하다. 앞서 언급한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선거가 사실상 정부의 코로나 사태 대응에 대한 국민투표(referendum)"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들은 집권 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16일자 프랑스의 시사 주간지 <르 뿌앵>(Le Point)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압승 소식을 전하면서 "코로나19 질병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선거를 통해 그의 정치적 건강을 회복했다"고 전했다. 이 시사지 역시 이번 선거가 문재인 대통령의 코로나19 방역 성과에 대한 국민투표였다고 평가하면서, 여당의 승리는 한국 정부가 전 세계에 코로나19에 대한 모범적 방역을 보여준 결과라고 소개했다. 'Corée du Sud : le parti au pouvoir plébiscité pour sa gestion de l'épidémie'.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이 있다. 혹자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고도 한다. 우리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번 선거의 의미를 찾으며 한쪽은 승리의 환호를, 또 한쪽은 패배의 탄식을 내뱉었지만, 사실은 정부와 함께 방역에 주체적인 대응과 응집력을 보여준 국민 모두가 승리한 것이다.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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