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4 07:07최종 업데이트 20.07.0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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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관련 청와대 비상경제회의에 입장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2020.3.30 ⓒ 연합뉴스

 

총선 후 당정 간에 평행선을 긋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데다가 지체될 경우 자칫 실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청와대를 움직인 듯하다.


기재부의 '하위 70% 지급'과 더불어민주당의 '전 국민 지급' 사이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원을 확충한다'는 절충안이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총리의 회동 이후 공개됐다. 자발적 기부는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재난지원금을 자발적으로 수령하지 않고 차후 세액공제 혜택을 받거나 지원금을 받은 후 기부금을 통해 기여를 하는 방식이다.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로서는 총리가 책임을 떠안으면서 곳간 문을 열 명분을 얻게 됐고, 당정이 합의를 한 이상 이제 공은 야당으로 넘어간 셈이다. 총선 이후의 행보를 놓고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진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 미래통합당이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 앞서 "당정이 합의하면 테이블에 나설 수 있다"고 한 미래통합당은 22일 당정합의 소식이 전해진 후 "당정이 합의했다면 (정부는) 하루빨리 수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라"고 밝혔다. 

사실상 20대 국회의 마지막 회기인 이번 임시국회는 다음달 15일까지다. 만약 그때까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다면 청와대는 헌법상 대통령 권한인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 나온 긴급(재정경제)명령권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 문제는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3월 야권에서 먼저 군불을 떼기도 했다. 대구경북지역의 피해가 날로 커가는 무렵이던 만큼 지역기반을 감안한 미래통합당의 상황 인식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정부의 무능을 부각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보다 (그 와중에 실제 그런 꼼수까지 생각했다면) 차후 대통령의 고유 권한 남용을 트집 잡아 탄핵의 꼬투리를 잡겠다는 계산도 있었을 수 있다. 대통령은 중대한 국가위기 상황에서 국회의 합의 절차를 넘어 법률효력을 갖는 즉각 명령을 할 수 있으나 그에 대해 차후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 

당시 국회가 멀쩡히 가동 중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그러한 위험부담을 안을 이유는 없었다. 긴급명령을 발동할 만큼 방역능력이 붕괴되지도 않았었다. 당연히 야당의 요구가 국민에게는 정쟁으로 비쳤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긴급재정경제명령과 긴급명령 사이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않은 채 대통령에게 '긴급명령'을 요구한 후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그렇게 수면 아래로 들어간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이 4월 말 들어 다시, 그것도 청와대발 새로운 이슈가 되고 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을까? 그렇다면 무슨 이유 때문일까? 

3월 초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요구한 것은 급속하게 증가하는 대구 확진자 수에 맞는 충분한 병상을 확보해달라는 이유에서였다. 미래통합당과 대한의사협회도 같은 시기 "병리시설 확보와 의료인력, 장비 집중 투입을 위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발휘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23일 청와대에서 흘러나오는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 가능성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여야의 합의가 불발될 경우를 가정하는 것이다. 분명 차이가 있다. 

3월 대구·경북지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당시 분명 국민들은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국민 건강과 안위를 국가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할 정부는 당연히 온 힘을 다해 사태를 진정시켜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가방역능력을 벗어난 상황은 아니었고, 필요한 재정을 결정할 국회의 기능도 살아 있었다. 반면 현재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 가능성은 여야의 합의가 불발돼 20대 국회에서 더 이상 코로나19 대응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법률적 근거를 확보하기 어려워질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대국민연설 통해 코로나19 대책 밝히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오후 9시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국민연설을 통해 코로나19 대책을 밝히고 있다. 2020.3.11 ⓒ 연합뉴스/AP

 
긴급재정경제명령권 카드는 당연히 국회를 향한 청와대의 정치적 압박이다. 그만큼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까지 가지 않고 국회에서 합의가 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과 관련해서 또 하나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경제는 예산보다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지금 국제사회는 인명피해 줄이기 못지않게 경제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 경제 위기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현 상황을 전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실감을 못하는 것 같다. 미국은 지난 3월 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대미문의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 법안을 만들었다. 

케어스법(CARES: Coronavirus Aid, Relief, and Economic Security Act, 코로나19 지원 및 구호, 경제안정에 관한 법)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세부 법안들을 묶은 패키지법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3월 25일 상원을 통과한 후 이틀 만에 하원을 통과하고 그로부터 두 시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까지,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미국의 개인, 기업, 주정부, 지방정부를 총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로 인해 무려 2조 달러(2090조 원)라는 전례 없는 연방정부의 예산이 꾸려졌다. 그 중 1조5000억 달러는 지출과 세금감면에, 5000억 달러는 기업대출을 위해 사용된다. 

미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예산을 편성한 예는 멀리 1947년 전후 유럽 복구를 위해 만든 마셜 플랜부터 가깝게는 2009년 금융위기 직후 경제회복을 위한 경기부양법까지 몇 번의 예가 있다. 하지만 예산 규모에서 케어스법에 비교할 수 있는 예는 전무하다. 당시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에 지원된 총 액수는 130억 달러(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300억 달러)였고, 2009년 경기부양법(ARRA: 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 미국경제회복과 재투자를 위한 법)의 경우 배당 예산이 8310억 달러였다. 

전례 없는 케어스법에서 주목할 점은 예산 규모만이 아니다. 마셜 플랜의 경우 양대 세계대전 후 붕괴된 유럽 16개 국가의 재건을 위해 쓰인 전후(戰後) 예산 편성이었지만 케어스법은 전시(戰時) 계획이다. 영어에서 전쟁을 의미하는 형용사 martial이 우연히 마셜 플랜을 제창한 당시의 국무장관 조지 마셜( Marshall)과 발음이 같아 케어스법을 또 다른 마셜 플랜이라고 부르는 언어유희도 있지만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의원은 '미국에 대한 전시 수준의 투자'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집행한 ARRA는 말 그대로 경기부양법이었다.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회복하고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목표로 만든 법이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케어스법은 부양법이 아니고 구제법에 해당한다. 건실한 회복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장의 피해에 대한 대응을 목적으로 한다는 뜻이다. ARRA와 같은 부양법이 영양제에 해당한다면 케어스법은 치료제, 항생제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리해보자. 현재 미국에서 파악하고 있는 경제 위기 현실은 전전(戰前) 또는 전후(戰後)가 아니라 전시(戰時) 상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경제 정책은 재정건전성, 경제활동의 건실성을 걱정하는 부양책을 쓸 때가 아니라 당장 위기에 빠진 개인과 기업, 지방정부, 주정부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오는 구제책을 쓸 때라는 것이고 그것이 케어스법의 본질이다. 

흔히 이러한 대규모 예산을 요하는 법안과 관련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비판이 부채 증가다. '빚잔치'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현재 미국 정부가 인식하는 상황은 '빚'은 맞지만 '잔치'는 아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가 최근 게재한 한 논문이 정확한 지적을 하고 있다.

"경제는 예산보다 중요하다."(The economy is more important than the budget)
-  케어스법 훑어보기, 주의인가 부주의인가 Careful or careless? Perspectives on the CARES Act (http://bitly.kr/ux2SqY4ps)

지금까지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국제사회에 성공적 방역 모델을 제공했다. 모범적 선거를 통해 팬데믹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이번 총선은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전 세계 최초의 전국 규모 선거였다.

그런데 지난 4.15총선 이후 정부와 국회는 하지 않아도 될, 아니 하지 않아야 될 일로 일주일의 시간을 낭비했다. 성공적 방역과 민주주의 수호에 취해 있었던 걸까?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느끼고 있는 심각성을 경제 관료들만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청와대가 긴급재정경제명령권 이야기를 꺼낸 의미를 정부 관료는 되새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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