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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5.12 18:43 수정 2020.07.03 12:45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녹음이 짙은 계절, 때마침 찾아온 황금연휴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획기적인 감소세에 취해 있던 5월 초, 외신들이 주목한 한국 소식들 가운데 두 개의 이슈가 묘한 대조를 이뤘다.

10일로 집권 3년차를 맞이한 문재인 대통령은 한 달 전 소속 여당의 총선 압승과 집권 3년차 71% 지지율이라는 유례없는 성적으로 행복한 후반기 임기를 앞두고 있었다. 외신들은 일제히 문재인 대통령의 탄탄한 집권 후반기를 예측하면서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이하는 특별연설 내용에 주목했다. 자신감에 넘쳐 있고(일본 요미우리) 대북정책에도 의욕을 보이며(미국 AP)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한국이 이끌겠다는(홍콩 신보) 야심찬 대통령의 구상이 자세히 보도됐다.

그에 앞서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몇몇 유흥가에서는 방역과 거리두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말이 날리는 좁은 공간에서 수백 명이 모여 황금연휴를 만끽하고 있었다. 우려했던 집단 감염의 새로운 근원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전 세계의 찬사와 주목을 받던 한국의 방역은 또다시 위기를 맞이하게 됐고, 외신들은 관련 내용을 앞 다퉈 전했다. 11일 저녁 6시 기준 전국의 이태원 클럽 관련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94명으로 집계됐다. 서울지역에서만 59명이 나왔고, 경기 21명, 인천 7명, 충북 5명 그리고 부산과 제주에서 각각 1명씩 관련 확진자가 나왔다.
  
성(聖)과 속(俗) 그리고 바이러스
 

11일 오전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해 클럽과 식당 등이 문을 닫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 한 클럽 입구에 서울시의 '집합금지 명령' 안내문이 붙어 있다. ⓒ 권우성

 
바이러스는 성역과 유흥가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2월 18일 신천지 대구교회 신자 가운데 31번 확진자가 확인되면서 이들의 신앙생활과 종교 활동 방식이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됐고, 실제 그 후 우리가 경험했듯 처절한 방역전쟁이 이어졌다. 3개월간의 사투 끝에 신규 확진자 한자리 수를 만들어 놓은 한국 국민과 방역당국은 이번에는 세속의 유혹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는 국민 보건의식을 보면서 사실상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맹목적 신앙 앞에서 이성을 내친 중세는 무지로 멸망했고, 끝없는 물욕 앞에 이성의 눈을 가린 근대는 20세기 양대 전쟁과 함께 탐욕으로 무너졌다. 성스러움이나 상스러움이나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을 가만 두고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원죄를 사하여주기 위한 구세주 역할이 신에서 돈으로 바뀌었을 뿐, 인간의 원죄인 욕망을 구제하고 복권시키겠다는 자본주의 정신은 코로나 시대에 와서도 여전히 충만한 힘을 발휘한다. 경기활성화 혹은 경기침체 억제의 구실이라면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도 사람들이 밀집하는 유흥가의 화려한 조명을 밤새도록 밝히게 해준다. 마치 구원의 목적이라면 전염병도 이겨낸다는 신통한 통성을 밀집된 공간에서 외치도록 하듯이.

2월과 5월의 차이

좀 더 주시해야겠지만 아직은 이태원의 상황이 신천지 상황과는 다른 듯하다. 2월 18일 31번 확진자가 나온 후 일주일 동안의 상황을 보면 확진자 발생 추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튿날인 19일 신규 확진자 수가 7명에서 하루만에 58명으로 늘었고, 다시 24시간 후 100명, 그리고 다음날 4일 만에 신규 확진자는 229명까지 늘었다.
 

2월 18일~23일 신규확진자 추이 ⓒ coronaboard.kr

 
5월 7일 용인 66번 확진자가 연휴기간 이태원 클럽을 다녀온 것이 확인된 다음날 8일 신규 확진자 수는 12명, 사흘째 되는 9일에는 18명으로, 다시 나흘째 되는 10일에는 34명으로 늘었고, 그 후로도 11일 35명, 12일 27명으로 확인됐다.
 

5월 7일~12일 신규확진자 추이 ⓒ coronaboard.kr

 
물론 이는 드러나 보이는 결과만으로 판단한 것이지 과학적 역학관계로 내린 추론은 아니다. 여전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이태원 관련 확진자의 감염경로가 하나가 아닐 가능성을 이야기했고, 용인66번의 피감염 경로도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한국의 선두적이고 선진적인 방역 실적은 전 세계 방역당국의 기준이 된 지 오래다. 먼저 위기를 경험했고, 먼저 극복을 했다는 차원에서 선두적 기준이고,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방역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선진적이다. 그런 두 가지 이유로 한국의 스텝이 꼬이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5월 들어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점진적 격리해제와 정상을 향한 조심스런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스페인의 모든 지역에서는 11일부터 유흥업소의 야외 영업과 10인 이하의 모임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덴마크는 상점의 영업이 재개됐고, 노르웨이에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됐다. 프랑스는 전 국민적 이동제한 조치를 해제한다.(12일 현재 정부의 특별한 설명 없이 이동제한 해제 조치가 미뤄지고 있다.) 여전히 신규 확진자 하향곡선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영국도 시민들의 시간제한 없는 운동이 허용된다. 역시 상황이 엄중한 이탈리아도 이동제한 해제 조치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총리가 발표했다.

하지만 이 모든 조치가 한국의 돌발 상황으로 인해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1일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유럽 일부가 이동제한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을 내딛는 가운데 새로운 코로나19 확산은 각국 정부들이 다시 제한을 강화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코로나19의 새로운 확산, 세계 경제활동 재개 노력에 차질, New virus outbreaks hamper efforts to reopen global economy)
  
민주주의는 원래 이렇게 어려운 것
 

이태원 한 클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가 확진자 증가하자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근 대형병원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선 대기자들 사이에서 의료진이 검사 안내를 하고 있다. ⓒ 이희훈

 
한국의 방역모델이 세계 표준 반열까지 언급되는 것은 무엇보다 민주적 절차와 방역의 조화 덕분이었다. 한국이 코로나 정국에서 전 세계에 독보적이었던 이유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방역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작은 힘들이 모여 큰 산을 움직이는 것이 민주주의다. 중간에 소수의 일탈과 역행이 발생할 경우 전체 대열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산재한 것 또한 민주주의다. 중도 포기하고픈 유혹이 도처에 놓여있다. 집권세력은 전체주의로의 회귀로 소수의 일탈과 역행을 진압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벌써 우리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전체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국가들을 쉽게 목도하고 있다. 한편 대중들은 소수자들의 일탈과 역행을 그들의 정체성과 소속, 출신 속으로 동일화해 집단격리(ghetto)시키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이태원의 경우가 그렇다. 

민주주의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집권세력은 시민을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이 있어야 가능하다. 시민은 소수의 역행과 일탈을 스스로 감시하고 상호 소통하는 연대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결코 지도자의 역량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의 순응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강하지만,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험하다. 스피노자는 그의 평생 역작 <에티카>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고 있다.

"모든 귀한 것들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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