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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6.11 12:23 수정 2020.06.13 10:54

미국 필라델피아 한 도로 위에 시민들이 '이제 인종차별 끝장내자'는 구호와 함께 에밋 틸ㆍ조지 플로이드 등 인종차별 희생자들의 이름을 적고 그 앞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고있다. ⓒ AP/연합뉴스

 
차에 시동을 걸 때까지만 해도 고민이 많았다. 과연 2m 거리가 지켜질까? 조심해도 비말은 튀겠지? 뉴스에서 보던 경찰 최루탄이나 곤봉이라도 등장하면 어쩌지?
 
멀찌감치에 차를 주차하곤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다. 한국에서 받은 귀한 KF-94 마스크를 개봉해 꼼꼼히 눌러썼다. 이게 미국 제품보다 나를 더 잘 지켜줄 것 같아서.
 
코로나19란 강력한 감염병이 유행하는 이 시기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위 현장에서 어떤 과격한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난 주말, 내가 사는 미국 뉴저지주 저지시티에서 열린 '흑인 인권 시위' 현장으로 가는 동안 머릿속은 복잡했다. 
 
8분 46초, 학교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긴 시간

토요일 이른 아침인데 사람들이 꽤 많다. 어린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지팡이를 든 어느 노인 또한 완전 무장을 하고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갓 스무 살을 넘겼을까 싶은 청년의 목에선 쇳소리가 났다. 일주일 넘게 매일 시위에 참가하고 있단다.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각자 만든 팻말을 들고 자리를 채운다. 학교를 포함해 미용실, 식당 같은 업소들이 문을 닫은 지 석 달째. 주 정부의 'Stay at home'(자택 대기) 명령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은 오랜만이라 너무 낯설다. 

요 며칠 뉴욕 맨해튼, 워싱턴 D.C. 등 미국 전역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이날 내가 참가한 행사는 지역 내 학교에서 열린 집회. 하루 전 공고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교직원, 근처 주민 100여 명이 모였다. 흑인뿐 아니라 백인, 히스패닉도 꽤 됐다. 원체 아시아 사람들이 없는 동네라 인도 친구들과 내가 그 자리를 메꾼다.  
  

집회에서 만난 참가자들. 저마다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 최현정

 

매일 시위에 참가한 까닭에 목이 쉬어 버렸다고. ⓒ 최현정

 
두 아이와 함께 가장 먼저 도착해 있던 숀이 마이크를 잡는다. 그는 '당신이 아는 흑인 친구의 이름을 말해달라' 한다. 내 앞으로 온 마이크에 나는 내 첫 영어 선생 젤라니를 말했다. 숀은 '내일 뉴스에 그 친구가 죽었다고 나오면 당신 마음은 어떻겠냐'고 묻는다. 흑인인 자신은 벌써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했다면서. 
 
남편과 함께 참석한 조디는 비무장 상태로 경찰 폭력에 희생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보며 흑인 인권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을 각성했다고 했다. 학교에서 정책을 만드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더 적극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타미라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를 걱정했다. 400년 동안 인종 차별을 당해 온 흑인들의 역사를 배우며 조카가 절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거라 했다.  
 
다들 유창하진 않지만 솔직하고 감동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건 미국이란 나라에 사는 걸 고민하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다 함께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고 8분 46초 동안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렸던 그 시간은 100년 된 학교의 메인 건물을 한 바퀴 돌고도 남을 긴 시간이었다.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끝났다. 시작 전부터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경찰은 거리 행진이 시작되자 경광등을 켜고 도로 한편을 내준다. 길가에서 마주친 이들은 같이 구호를 외쳐주고 지나던 차가 경적을 울려 주었다. 이날 동네 집회는 TV에서 보던 약탈도, 최루탄도, 경찰봉도 없었다. 비장했지만 주말 아침답게 매우 평화로웠다. 코로나와 목이 졸리는 영상과 약탈과 공권력에 상처받은 나도, 그들도 영혼을 위로받은 집회였다. 
 
혼란은 집회를 마치고 집에 와서 시작됐다
 

6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 사건 추모 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혼란은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시작됐다.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시위에 다녀왔다고 하니 인터넷 너머의 몇몇 사람들이 수고했다는 말 대신 하나둘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한국 사람이 거기를 왜 가나' '너무 단순한 거 아니냐' '경찰이 더 안 됐다'. 그 밖에도 '플로이드 가족들이 이미 수백억 원을 모금해 나눠 가졌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뉴스나 TV에 나온 약탈 장면을 거론하며 그들의 '본성'이 어떻다는 불편한 말까지 한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였다. 
 
① 플로이드는 전과자다. 영웅화하지 마라. 
② 총기 소지한 범죄자들에게 죽는 미국 경찰은? 
③ 흑인들의 아시안 차별은 더 심각한데 네가 왜 흑인의 권리를 말하나.

 
그들은, 현충일에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플로이드 추모 행진도 매우 못마땅해했다. '자기들이 백인인 줄 안다'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나 신경 써라' '우리 현충일에 왜 미국 흑인을 추도하냐' 등. 불만의 방향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았다. '한국인이 왜?'

한국인이 거기 왜? 라는 질문에 대하여
 

지난 6월 9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 시위 ⓒ EPA/연합뉴스


나는 조지 플로이드의 삶이 영웅적이어서 추모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삶의 여적과는 별개로 그의 죽음이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인구의 12%에 불과하지만 교도소 수감자의 33%가 흑인이라는 통계처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의 삶이 바로 미국이란 나라의 어두운 현실이기에 나는 분노에 동참했다. 1960년대 인권운동 이후 다시 쌓이기만 하던 인종 차별 문제가 그의 죽음으로 분출되는 현장에 함께할 뿐이다. 

플로이드의 죽음을 계기로 경찰의 인종 차별적 조치와 과도한 공권력 행사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서,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경찰 개혁'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세계 180여 개 다인종·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 사회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미국의 경찰 조직. 그 중요성만큼이나 견제와 균형의 필요성 역시 오랫동안 요구돼 왔다. 과도한 공권력 행사와 상대적으로 방만한 조직 운영은 과잉 방어와 비리의 온상으로 비난받아 왔기에, 이 기회에 견제되고 조정돼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5~2016년 약 10개월 동안 미 법무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348명이 경찰에 의해 사망했다. 한 달 135명, 하루 평균 4명 꼴이다. 일반 시민이 경찰을 해할 때 받는 처벌은 최고 수준인 데 비해, 경찰이 시민을 해할 때는 그만큼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국 곳곳에서 하루 네 명 꼴로 경찰에 희생되는 또 다른 '조지 플로이드'가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경찰개혁 요구로 모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지금 4년 전 한국이다  
 

의사당서 8분46초 무릎꿇은 미국 민주당 의원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가운데)를 포함한 미국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8일(현지시간) 의사당의 이맨시페이션(노예해방) 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묵념을 올리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와 인종차별적 조치를 제한하기 위해 경찰개혁 입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UPI/연합뉴스


마지막으로 한국인인 내가 흑인 인권 시위에 같이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세금을 내고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이웃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내가 속한 이 땅의 시스템이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만을 위해 복무하길 원치 않는다. 아시아인인 나도, 흑인인 그들도 억울하지 않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참여하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침묵과 냉소는 기득권자들이 원하는 구도일 뿐이라는 것을.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사는 건 어쩌면 쉬울 수 있다. 목이 조여 거품을 입에 물고 죽어간 이의 죽음을 외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호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추모하는 집회에 같이 분노해주고 격려하고 경적을 울려준 맨해튼과 에디슨, 플러싱의 평범한 미국 시민들처럼, 나도 지금 같이 분노하는 거다. 그들과 함께 추모하고 같이 행진하는 이유이다.
 
식구 중 기저질환자가 있어 어렵게 집회에 참가했다는 친구가 그랬다. 
 
"요즘 특히나 미국이란 나라에 절망만 하고 있었는데, 오늘 집회에 나가서 위안을 얻었어. 끔찍한 대통령과 유례없는 감염병까지, 지금 우린 최악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같은 고민을 안고 싸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희망을."
 
4년 전 그 추운 겨울, 주말마다 촛불을 들던 한국인들의 심정을 지금 미국인들이 뒤늦게 경험하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라는 어느 보통의 흑인이 그 변화의 도화선이 되었다.
 

미국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모교인 텍사스 주 휴스턴의 잭 예이츠 고교 풋볼장에서 졸업생과 주민들이 8일(현지시간) 그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를 벌이고 있다. 플로이드는 고교 시절 풋볼팀 선수로 활약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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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시민 기자. OhmyNews 북미 통신원, The Jersey Books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