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문듣기 등록 2020.06.30 14:01 수정 2020.07.01 13:31
"굳이 양조장까지 여행할 일이 뭐가 있소, 그냥 가까운 편의점에 들르거나, 주점에 앉아 술을 마시면 될 것을? 도대체 당신은 왜 양조장을 찾아다니는 것이오, 비싼 비용을 써가면서까지 그곳에 가면 특별한 무엇이 있단 말인가요?"

당신이 양조장을 기꺼이 찾는 사람이라면, 혹시 등산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요? 등산하는 이들이 전국 지도를 펴놓고 이번 주는 백두대간의 어느 봉우리를 오르겠다고 점을 찍고서 도시락은 어디에서 먹고, 내려오던 길에 가까운 양조장 하나에 들러서 술 한 병 사오는 것을 낙으로 삼기도 하지요.
 
지방 출장을 자주 가는 이들 중에 그 동네 슈퍼에서 막걸리를 수집하는 이들이 있는데, 좀 더 나가면 동네 양조장을 찾아가서 술을 챙겨오지요. 주점이나 음식점을 차리려고 준비하면서 양조장을 찾아다니는 이들은 확실한 목표 의식이 있지요. 이들은 양조장 대표를 만나서, 당신의 술이 어떤 매력이 있으며, 어떻게 주문하면 되냐고 곧장 묻지요. 가장 집요하게 양조장을 들여다보는 이들은 아마도 양조장 창업을 하려는 이들일 테구요.

요사이는 술자리를 풍성히 하기 위해 술을 학습하고, 셀카봉에 핸드폰을 얹고 양조장을 맛집 찾아다니듯이 돌아다니는 이들이 있지요. 일주일에 술을 한두 번씩은 마시고, 한번 마시는데 서너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면, 그 시간을 헐어 양조장을 찾아갈 만하지요. 아마 이들은 술친구를 더 탄탄하게 조직하려는 음험한 의도도 있을 테구요.

그 재미에 빠진 분들에게 찾아갈 만한, 찾아가도 크게 낭패를 보지 않을 몇 군데 양조장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양조장들은 비밀들이 많아서 누가 찾아와 보자고 하면 환대하지 않지요. 그러니 환대받을 수 있는,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양조장들을 미리 알고 가시라고 추천해봅니다.

시골 정취 그윽하거나, 관광 명소와 가깝거나

관광지라면 첫인상이 중요하지요. 처음 보았을 때 감동을 주어야 하지요. 그 광경이 압도적일수록 기억은 오래 남을 테구요. 그래서 관광지의 전경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하기도 하지요. 다만 맛 기행은 예외라서, 식당이나 빵집의 외관이 허술하더라도 그 앞에 줄을 서지요. 그곳에 맛있는 음식이 있고, 맛을 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요. 술도 음식이니 그 줄을 설 만합니다.

첫눈에 반할 만큼 멋진 양조장을 찾으려 하지는 마세요. 세월의 더께가 앉은 오래된 양조장이라면 그 앞을 서성거릴 만하지요. 그 양조장들은 면사무소 가까이에 위치해서 있고, 한때는 마을 술꾼들이 막걸리 내기 화투를 치며 목청을 높였던 사랑방이기도 하지요.
 

논산 양촌양조장의 마당에 나와 있는 오래된 술독들. ⓒ 막걸리학교

 
면 소재지에 하나씩 있었던 양조장들이 허물어지거나 새 건물로 변신했지만, 그래도 세월을 견뎌낸 목조 건축물로 논산 양촌양조장, 양평 지평양조장, 진천 덕산양조장, 영양 탁주합동, 괴산 목도양조장, 나주 남평주조장 등이 있지요.

마당과 정원과 나무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해남 해창주조장에 잠시 들러도 좋지요. 해창주조장은 백파거사 신헌구(1823~1902)가 소요원을 열었던 해창촌사 터이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집을 지어 살던 곳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꽃나무들이 있어서 사철 꽃이 피어있지요. 예전 집주인이 별채에 양조 공간을 마련하여 양조장이 되었는데, 지금은 귀촌한 오사장네가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기며 술을 빚고 있지요.

마을과 양조장이 잘 어우러진 시골 동네의 풍경을 보고 싶다면, 경북 상주 은척양조장 마을을 조용히 들어가보세요. 울타리도 없는 양조장 옆에는 벨트가 멈춘 지 오래된 방앗간, 뾰족지붕 교회, 키 낮은 초등학교 건물이 있지요. 양조장 주인이 땅과 건축비를 대서 교회를 지었고, 학교 운동장 잔디도 깔아주었답니다.

그 풍경을 보면서 은자골 탁배기를 한 잔 하는 여유가 있으면 더욱 좋지요. 양조장 부근 어딘가에 병든 이를 낫게 해준 은으로 된 잣대가 숨겨져 있다는 신비로운 전설이 전해오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양조장이 관광명소와 어깨동무하고 있는 곳들도 있습니다. 마을이 오래되고, 양조장도 오래되다 보니 서로 응원군이 되어 있지요. 충남 한산모시관 바로 옆에 한산소곡주 양조장이 있고, 호남 제일의 정자로 꼽히는 피향정에서 술 향기를 맡고 찾아갈 수 있는 거리에 태인합동주조장이 있고, 화약을 만들어 왜구를 물리쳤던 최무선(1325~1395)을 기리는 최무선과학관과 마당을 함께 쓰고 있는 한국 와인이 있고, 조선시대 성리학자 정여창 고택이 있는 함양 개평마을에는 솔송주 시음판매장이 있지요.

부산 사람들이 즐겨 오르는 금정산성 길 안에 금정산성토산주 양조장이 있고, 제주 성읍마을과 이웃한 곳에 제주고소리술익는집이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하더라도, 눈치 볼 것 없이 "어, 여기에 이런 곳도 있었나?" 하면서 들어갈 수 있지요.

양조장 반경 10㎞ 안에 관광명소가 있는 곳들을 소개해보면, 초정약수터에서 1㎞ 떨어진 풍정사계 화양 제2양조장, 울진 망양정에서 1.6㎞ 떨어진 울진술도가, 문경새재 공원에서 2.4㎞ 떨어진 문경 오미나라, 포천 운악산 등산로 입구에서 3.1㎞가 떨어진 배상면주가의 산사원갤러리, 지리산 바래봉 등산로 입구에서 3.4㎞ 떨어진 운봉주조, 단양팔경 사인암에서 4.1㎞가 떨어진 대강양조장, 담양 죽녹원에서 4.2㎞가 떨어진 추성고을, 하회마을에서 9.7㎞ 떨어진 명인 안동소주가 있으니, 내비게이션에 경유지로 추가할 만합니다.

양조장 안에서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체험 숙박이 가능한 곳으로는 홍천 예술과 예산사과와인이 있으니, 회사 워크숍 장소를 그곳으로 잡아도 괜찮습니다.
 

속초 크래프트 루트 브루펍의 모습. ⓒ 막걸리학교

 
양조장의 입장에서 관광객을 맞으려면, 펍이나 바나 주점이 있으면 가장 좋지요. 외국의 맥주 제조장들은 브루펍이라 하여 이를 잘 구현하고 있지요. 우리도 대도시와 관광지를 중심으로 브루펍 문화가 확산되어 제주도의 제주 맥주와 맥파이 제조장, 강원도 속초의 크래프트 루트와 몽트비어, 고성의 문베어 브루잉, 강릉의 버드나무 브루어리, 충북 음성의 코리아크래프트 브루어리, 울산 울주군의 트레비어, 부산 송정 바닷가의 와일드웨이브 브루잉 등이 생겨났지요.

이들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의 느낌을 브루펍 안에 구현해 놓았지요. 그곳에서 잠깐 머물며 술 향기 속에 술 한잔하면 최고가는 맛기행이 되지요. 특별한 공연이나 행사가 이뤄진 날이라면 여행의 재미가 더해질 테구요.

양조장에서 가져야 할 마음

양조장에 딸린 주점이 없다면 시음판매장이라도 있어야 하지요. 시음판매장마저 없다면 환대할 것은 양조장 주인의 미소밖에 없으니, 양조장 주인이 무척 바빠지겠지요.
 

찾아가는 양조장 지도, 모두 42개의 양조장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 막걸리학교

 
지역 양조장을 관광 자원화하는데 농림부의 노력이 한몫했습니다. 농림부에서 2013년부터 해마다 '찾아가는 양조장'을 지정하여 8년 차인 올해로 42개를 모았습니다.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양조장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수입 맥아를 쓰는 맥주 제조장들은 포함되지 않았고, 과수원을 하면서 술을 빚는 농가형 와이너리들이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막걸리나 맥주 제조장은 사계절 술을 빚지만, 와이너리들은 가을 수확기에만 술을 빚습니다. 가을이 지나면 보여줄 게 발효 탱크밖에 없어서, 와이너리들은 방문객들을 위해 시음장을 대부분 갖추고 있지요.

이 시음장에서 이뤄지는 판매량과 홍보량이 와이너리를 유지시켜 주는 동력이구요. 그래도 와이너리들은 주변에 과수원이 있고 경관이 편안하여 쉬어갈 만합니다. 도시 생활이 싫다면, 와이너리 주인들한테 시골 생활과 양조의 묘미를 들어보시구요.
 

2020년에 농림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된 김천 수도산와이너리 시음장의 모습. ⓒ 막걸리학교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와이너리만 해도, 파주 산머루농원, 안산 그린영농조합, 예산 사과와인, 영동 도란원, 영동 여포와인농장, 영동 불휘농장, 문경 제이엘, 의성 한국애플리즈, 영천 한국와인, 영천 고도리와이너리, 김천 수도산와이너리 해서 11곳이나 됩니다.

양조장을 찾아갔을 때, 가장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사람이지요.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눈빛과 말과 미소가 술맛을 지배하지요. 양조장 주인들은 저마다 자기 술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자기가 만든 물건을 두고 자부심이 가장 강한 업종 종사자들을 찾으라면 아마도 양조업자들일 것입니다.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술 속에 밝히지 않은 비법을 한두 가지쯤은 넣어두었으니 그러겠지요. 게다가 공짜로 내놓은 시음 술을 받아먹는 여행자의 처지에서는, 그 자부심들은 인정해줘야지요.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술을 좋아한다면, 술을 찾아 떠나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양조장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관광명소가 아니니, 코로나19시대에 찾아갈 만한 호젓한 여행지입니다. 양조장 문을 들어서면서 도대체 내가 왜 술에 친해진 것이지? 질문을 던진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행도 될 것입니다.
댓글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