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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7.03 08:29 수정 2020.08.29 15:14
 

아베 일본 총리 ⓒ 연합/EPA

 
최근 '포스트아베'가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도 아베 신조 총리가 3선 연임까지 총재직 수행이 가능한 자민당 당규를 개정해 한 번 더 총리직을 수행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입헌민주당 등 야당 세력이 절대적으로 약한 현 정치구조상 자민당 총재가 항상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된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트아베'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베 총리로는 무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후임 총리대신을 논할 때 반드시 나오는 이름이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성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이다.

포스트아베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 연합/EPA

 
일본 언론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시바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시다의 지지율은 4~5%에 불과하다. 하지만 후임 총리는 결국 이시바 대 기시다의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시다가 자민당 중견 파벌이자 실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고치카이(宏池会)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후 자민당의 파벌은 대외적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지만 그 명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012년 자민당의 재집권 이후 아베 신조 총리와 정반대 성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노다 세이코가 내각의 주요 포스트 중 하나인 총무성 대신(아베 제3차 개조내각)을 역임한 것도 그러한 파벌 배려가 일정부분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참고로 대신(장관)은 일본 정치인에게 있어 출세의 상징이다. 젊은 초선 재선 의원들의 파티 등에 참가하면 후원자들이 "우리 선생님도 장래에 대신 한번 하셔야죠"라는 덕담을 종종 건넨다. 한국으로 치면 장관인데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지만, 의원내각제의 특성상 총리대신 바로 밑이 대신이다.

언론들은 편의상 관방 장관을 정권의 2인자로 부르지만 사실 내각해산권과 각료임명권이라는 유이한 권한을 가진 총리대신을 제외하면 대신들은 법적으로는 똑같은 처우를 받는다. 그래서 종종 총리대신은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임명권을 통해 자신의 세도 불리고, 견제도 한다. 특명대신은 내각부 소속으로 필요에 따라 내각총리대신이 자리를 만들어 임명한다.

현재 내각부 법제상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 담당대신'과 '금융담당대신'은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 그 외 장관들, 이를테면 기타무라 세이고(北村誠吾) 대신은 '지방창생, 규제개혁, 도시/사람/일 창생담당'이라는 기다란 직함을 수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또 유튜브 플랫폼의 대중화로 일본에서도 국회질의응답을 매일같이 볼 수 있다. 이 응답에서 시청자의 실소를 자아내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했는데, 그 중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임팩트가 컸던 현역 각료를 꼽으라면 모리 마사코 법무상과 바로 이 기타무라 대신을 들 수 있다. 발언 하나하나가 가히 스캔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각의 치부를 드러낸다. 그들이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답할 때 뒷줄에서 듣고 있는 아베 총리, 아소 다로 재무상 등의 표정이 침통해지는 장면은 이미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왜 저런 자격미달인 사람들이 일본을 이끌어가는 중추적 역할인 대신 직을 수행하는지 궁금해 한다. 여기에는 서두에서 언급한 파벌 배려와 함께 당내 연공서열과 당선횟수, 그리고 지역 고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반드시 여성 대신을 한두 명 넣는 것도 관례가 되었다. 이 전통은 다나카 가쿠에이의 장녀인 다나카 마키코 전 외무대신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성 장관 ⓒ 연합/EPA

 
자격미달 대신들, 두 인물의 부각

다나카는 1993년 첫 당선(니가타 제3구) 이듬해인 1994년 무라야마 내각에서 갑자기 과학기술청 장관으로 임명돼 세간을 놀라게 했다. 아무리 '성'보다 낮은 '청'이라지만 그래도 내각부 직할의 핵심 조직 책임자로 초선 의원이 임명된다는 것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이후 다나카는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외무대신 직을 수행했고, 이 이후부터 내각 인사 시 당선횟수는 좀 부족하더라도 여성 정치인을 한두 명 넣는 관례가 정착됐다.

지금 일본을 이끌고 있는 '제4차 아베 제2차 개조 내각'(2019년 10월 발족)의 각료진을 살펴보면 여성 대신이 두 명 들어가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과 위에서 언급한 모리 마사코 법무상이다. 다카이치 의원은 당선횟수 8회, 의원경력 28년의 초베테랑인 반면 모리 법무상은 불과 3선 의원에 변호사 등록을 하긴 했지만 사실상 금융청 관료 출신으로 지금까지 맡은 직책들을 봐도 법무상을 할 만한 이유가 거의 없다. 그랬던 그가 내각의 5대 요직 중 하나인 법무상에 전격 발탁된 것은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이 코너를 통해 언젠가는 등장할 구로가와 히로무 전 도쿄고검장과 아베 신조에 얽힌 스캔들과 일정한 연관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무튼 앞서 말한 기타무라 대신이 바로 이러한 파벌 배려(기시다 파), 지역 고려(나가사키 현), 당선 횟수(7선)에 딱 들어맞는 인선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오사카 출신에 중의원 8선 의원 다케모토 나오카즈(79) '글로벌재팬, 지적재산전략, 과학기술정책, 우주 정책, 정보통신기술정책 특명담당대신'이다. 그는 일본의 인장(도장)제도 및 문화를 지키는 의원연맹 회장이라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화제의 중심이 됐다. 일본의 IT정책 핵심 사업 중 하나가 '전자결재'의 시급한 도입인데 그러한 사업을 총괄하는 수장이 도장 문화의 전통을 지키자는 연맹의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보통의 상식이라면 이해되지 않지만 이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특명담당대신은 총리대신이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다. 현실 정치인의 현실적인 가장 큰 출세는 대신이다. 총리는 정치인의 이 욕구를 이용해 세를 불리거나 라이벌을 견제한다. 최종적으로 파벌, 지역, 당선, 성별 등을 고려해 임명한다. 모리 마사코, 기타무라 세이고, 다케모토 나오카즈 바로 이런 연유로 임명됐다.

혹자는 라이벌 견제라는 부분에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대신이 되는 건데 왜 견제인가라는 것인데, 대표적인 케이스로 포스트아베의 유력주자인 이시바 시게루를 들 수 있다. 원래 이시바는 2007년 후쿠다 내각에서 방위성 대신, 2008년 아소 내각에서 농림수산성 대신을 역임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무려 11선으로 아베 신조 총리, 스가 관방장관, 고노 다로 등등 유수의 정치인들보다 당선횟수가 더 많다. 2009년에 당으로 복귀해 당3역 중 하나인 정무조사회장을 맡았고, 2012년에는 당의 넘버투 간사장도 수행했다. 즉 총리대신만 빼고 다 해 본 사람이다.

이러한 유력인사를, 아베 총리는 2014년 제2차 아베 내각 당시 '지방창생, 국가전략특별구역 특명담당대신'에 임명했다. 보통의 조직이라면 좌천도 이런 좌천이 없을 정도로 수모를 줬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견제'로서의 각료임명권이다. 이시바는 이후 확연한 반아베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2018년 9월에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해 아베 총재와 전투를 벌여 패배했고 그렇게 사라지나 싶었다.
 

모리토모 학원에 관한 결재문서 날조에 관한 조사보고서 ⓒ .

 
그런데 요즘 이시바 시게루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그것도 유력한 차기총리대신 후보로 말이다. 그 이유는 먼저 2016년 모리토모 학원 이후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는 아베 총리의 스캔들, 또 하나는 코로나19를 둘러싼 현 내각의 무능한 대처 때문일 것이다.

'도쿄스캔들'은 앞으로 이 두 가지 이유를 차근차근 정리해 볼 생각이다. 어차피 지금의 아베 정권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이 왜 물러나야만 했는지에 관한 정리된 기록, 그리고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야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인지 예측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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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본업은 인테리어업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