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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7.05 12:02 수정 2020.07.05 12:0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P/연합뉴스

 
주요 7개국(G7)에 한국과 인도·러시아·호주·브라질을 포함해 주요 11개국(G11) 또는 주요 12개국(G12)으로 확대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의를 제기했다. 한국은 빼고 가자는 것. 유력 국가들의 힘을 빌려 코로나 경제 위기를 탈피하려는 트럼프의 계획에 아베가 제동을 건 것이다.  
 
지난달 28일자 <교도통신> 기사 '일본, 확대된 G7에의 한국 참가 반대, 대중·대북 외교 우려(日本、拡大G7の韓国参加に反対 対中、北朝鮮外交に懸念)'는 "일본 정부 고관이 미 정부에 대해 한국의 참가를 반대한다는 생각을 전달했음이 27일 밝혀졌다"며 "중국이나 북조선에의 외교적 자세가 G7과 다르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골격의 유지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이 끼게 되면 G7이 북한·중국에 대해 일치된 입장을 취하기 힘들다는 우려를 미국에 전달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그런 요구를 한 배경에 관해 <교도통신>은 "일본 측의 대응에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G7에 참가한다는 외교적 우위를 지키려는 생각도 있다"면서 "아베 신조 수상의 의향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G11 혹은 G12 참여는 한국의 국제적 발언권과 위상을 높인다. 그래서 한국에 당연히 이로운 일이다. 그래서 아베 신조의 견제는 한국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권력은 부모·자식 간에도 나누지 않는다고들 한다. 권력을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아도, 지금 당장 자식과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 같은 혈육 간에도 이 정도이므로, 남남 간에 권력을 나누는 일은 한층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미국의 뜻밖의 행동
 
흥미로운 건 매우 이기적인 미국이 지난 47년간 세계 경제 리더십을 남들과 공유해왔다는 점이다. 미국의 리더십 공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확대됐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공급부족·가격폭등)를 계기로 영국·프랑스·서독·일본과 5개국 재무장관회담을 열더니, 1975년 제2차 오일쇼크 뒤에는 이를 G5 정상회의로 격상시켰다.
 
이 기구는 이탈리아·캐나다의 참여로 1976년에는 G7으로 확대됐다. 소련 붕괴로 미·소 양극 체제가 무너진 뒤인 1997년에는 러시아의 참여로 G8로 커졌다. 다만, G8이 등장한 뒤에도 경제 분야에서는 G7이 계속 유지됐다. G8은 주로 정치 분야에 국한됐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이유로 G8은 없어졌다.  
 
한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은 프랑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G20을 출범시켰다. G7에 더해 한국·중국·인도네시아·인도·사우디·터키·남아공·러시아·EU의장국·멕시코·브라질·아르헨티나·호주가 이에 참여했다. 2010년 기준으로, 이 20개국은 세계 인구의 3분의 2,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차지했다.
 
G20을 통한 리더십 공유는 성과를 산출했다. <이데일리> 기자들인 송길호·김춘동·권소현·양미영의 <세계경제권력지도>는 제1차 워싱턴 G20 정상회의 결과를 두고 "이런 공조를 통해서 동시에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면서 얼어붙은 금융시장을 녹였고, 그 결과 시장 심리도 상당히 안정됐다"고 평가한다.
 
제2차 런던 정상회의 결과에 관해서는 "일단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재정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고, 그 기준도 GDP의 2%까지 늘리자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G5·G7·G8·G20이 이처럼 세계 경제의 돌파구 모색에 기여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여타 분야에서는 권력 독점욕을 보이는 미국이 왜 경제 분야에서는 리더십을 나눠 가지려 애쓰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달러와 금

결과적으로 미국은 G 뒤의 숫자를 계속 늘려야 하는, 굳이 표현하자면 'Gn체제'를 계속 확대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만약 1970년대 초반에 달러 가치가 안정적이었거나 미국의 금 보유량이 넉넉했다면, 미국이 G5로, G7으로, G8으로, G20으로 계속해서 리더십을 떼어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Gn 저변에 '달러'와 '금'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경제 부문에서만큼은 세계 1위를 유지했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의 '지갑'이 두둑해졌지만 머지않아 이 지갑은 홀쭉해진다. 대규모 전쟁들이 원인이었다.
 
2002년 화폐가치로 환산할 때,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때 투입한 전비는 1900억 달러로 GDP의 24%였다. 이에 비해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때에는 GDP의 130%인 2억 8960억 달러, 한국전쟁(1950~1953년) 때는 15%인 3350억 달러, 베트남전쟁(1960~1975년) 때는 12%인 494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는 전투에 투입한 비용이므로 그 외의 것까지 합하면 몇 곱절이 될 것이다.
 
최강국으로 등극하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미국이 전쟁터에 돈을 쏟아붓고 이것이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 생긴 결과는, 1944년에 성립한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의 몰락이다.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 세계는 달러를 기축 통화(기본통화)로 인정했다. 달러를 갖고 가면 미국이 금으로 태환해주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안심하고 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종이 조각에 불과한 달러가 이런 대우를 받은 것은 미국의 금 보유량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러가 전쟁터에 마구 뿌려지면서 이를 금으로 바꿔줄 수 있는 미국의 여력이 떨어졌다. 그러자 이를 눈치 챈 프랑스 정부가 달러를 들고 미국에 가서 금을 찾아갔다. 다른 나라들도 이 대열에 가담하면 미국의 금 보유량이 바닥 나고, 그렇게 되면 '달러 제국'의 운명이 그대로 끝날 가능성도 있었다.  
 
이를 막고자 미국 닉슨 대통령이 선택한 방식은 한마디로 '배 째라'였다. 한국 광복절인 1971년 8월 15일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그는 "미국은 일시적으로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발표했다(닉슨 쇼크). 달러를 금으로 태환해줘야 할 책임에서 미국 스스로 '광복'한 것이다.
 
닉슨이 말한 '일시적으로'는 49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닉슨 쇼크로 조성된 달러 불안정은 중동 산유국들을 불안하게 했고, 이는 그들이 값을 올리도록 하는 원인이 됐다. 제1차 오일쇼크는 이로 인해 발생했다.  
 
'달러 제국'의 몰락을 모면하고자 미국이 짜낸 또 다른 아이디어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력이다. 미국은 사우디 유전지대를 적대국가들로부터 더욱 더 안전하게 지켜줌으로써 사우디 왕정체제를 민주주의 시대의 도전으로부터 보호해주기로 했다. 대신, 사우디는 달러로만 석유 거래대금이 결제되도록 하는 시스템의 정착에 협조하기로 했다.  
 
이 합의는 1975년에 결실을 맺었다. 석유대금을 달러로만 결제하기로 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합의가 이 해에 도출됐다. 용도 폐기될 뻔했던 달러가 산유국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1970년대 중반 이후로 미국의 세계 패권은 '달러의 지위 유지'라는 기존 조건에 더욱 더 의존하는 한편, '달러와 석유의 안정적 연계'라는 조건에 새롭게 의지하게 됐다.
 
미국이 1973년부터 Gn을 확장해온 근본 동기는 그런 조건들의 유지에 있다. 자국의 힘만으로는 달러 가치와 경제 패권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세계 경제위기의 공동 극복'이라는 대의명분 하에 경제 선진국들을 협력자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팽창
 
Gn은 또 다른 면으로도 미국에 이익이 됐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자본가 계급에 이익이 됐다. 그것은 '기업 자율성의 극대화와 국가 공공 기능의 극소화'라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팽창을 도왔다.
 
1968년 연초부터 미국이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진 것과 때를 같이해 기존 세계질서에 저항하는 68혁명이 프랑스에서 시작해 유럽과 미국으로 번져갔다. 이는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에도 위협이 됐고, 이에 맞서 신자유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미국의 방어가 1970년대에 본격화됐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했던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1981~1995년)이 임기 초반에 뜻을 꺾음에 따라 1980년대 전반부터는 이 미국식 자본주의가 북반구에서 대세로 자리잡게 됐다.
 
Gn에는 그와 같은 신자유주의 코드가 내포돼 있다. <경제와사회> 2014년 겨울호에 실린 정병기 영남대 교수의 논문 '국제금융질서와 G2: 미국 패권과 G7 집단 헤게모니의 포스트 G7체제'는 "G20의 구조는 미국과 내륙 유럽의 갈등 속에서 미국의 패권과 G7의 집단 헤게모니를 지속시키는 외연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그 활동은 G7 국가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G7과 G20 양쪽 다 미국 등의 국익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G7이든 G20이든 G11이든, 한결같이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음을 뜻한다. 다른 나라들에도 어느 정도 이익을 주기는 하지만 경제 방면에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속화에 기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Gn은 친미 진영의 이익을 위해 세계 경제를 재편하는 데 이용됐다. 그래서 미국의 적대 진영은 참여할 수 없었다. 즉, Gn은 미국의 적대 진영을 고립시키는 데도 활용된 것이다.   
 
또 중국을 빼놓고 세계 경제를 논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한국·인도·호주의 참여를 저울질하는 것은,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는 시선을 더욱 더 짙게 만든다. 중국의 대양 팽창을 막으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인도·호주는 주요 길목을 지키는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을 경제 분야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연합/EPA

 
Gn의 모순
 
사실, 세계 경제에 가장 바람직한 구도는 세계적 합의에 기초한 기구에서 세계 경제를 논의하는 것이다. 정치 문제는 유엔 안보리에서 논의하면서 경제 분야는 미국이 선정한 소수 국가들만 모여 논의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Gn이 경제 분야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결정이 국제적 정당성을 가지려면 참가국의 선정에 민주적 절차가 필요하다.
 
'한국을 빼야 한다'는 일본 측의 요청에 대해 "미국 측은 '트럼프 씨가 최종 판단한다(トランプ氏が最終判断する)'고 응답했다"고 <교도통신>은 보도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국제회의의 참가국을 '트럼프 씨'가 임의로 결정하는 지금 상황은 미국 지배체제와 Gn의 모순을 드러낸다.
 
미국이 한국을 Gn에 참여시키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이 체제가 주로 미국의 이익에 복무해왔으며 미국과 적대국을 갈라놓음으로써 평화를 저해할 뿐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채 미국의 일방적 주도로 운영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참여 문제를 놓고 '트럼프 씨'가 이기건 '아베 씨'가 이기건, 한국이 장기적 안목에서 고민해야 할 것은 이 기구가 특정국이 아닌 전 세계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민주적인 기구가 될 수 있도록 한국의 역할을 찾는 것이다. Gn을 그런 기구로 만드는 길이 세계뿐 아니라 한국경제의 장기적 이익에도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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