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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7.26 19:57 수정 2020.07.31 09:10
지난 연재 글에서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와인은 품질에 따라 '지역 단위→마을 단위→프리미에 크뤼→그랑 크뤼' 순으로 등급이 나뉘며, 대체로 지역 단위 와인이 제일 저렴하고 그랑 크뤼 와인이 가장 비싸다고 했다. 프리미에 크뤼와 그랑 크뤼 등급은 품질이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포도밭'에 부여한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참고로,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등급 체계는 또 다르다).

[관련 기사 : 백화점 와인 매니저와 와인 초짜의 이불킥할 대화]

이제 부르고뉴 와인 등급을 알았으니 만사 오케이?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부르고뉴 와인을 선택할 때 등급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바로 생산자다.
 
생산자가 부르고뉴 와인의 가격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자. 부르고뉴의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 마을에는 그랑 크뤼 등급을 받은 두 개의 밭이 있으니, 뮈지니(Musigny)와 본 마르(Bonnes-Mares)다. 둘 중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뮈지니 밭에서 생산된 와인을 와인 서쳐(Wine-Searcher) 앱으로 검색했다.

부르고뉴 와인 가격, 생산자에 달렸다

다양한 와인 목록이 나온다. 10헥타르 면적의 뮈지니 밭을 여러 생산자가 구획을 나눠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중 네 와인을 골라 2020년 7월 19일 기준으로 병당 해외 평균 거래가(세금 제외)를 비교했다.
 
도멘 르루아 뮈지니 그랑 크뤼 (19,554,470원)
Domaine Leroy Musigny Grand Cru
 
도멘 죠르주 & 크리스토프 루미에 뮈지니 그랑 크뤼 (15,830.960원)
Domaine Georges & Christophe Roumier Musigny Grand Cru
 
도멘 콩트 죠르주 드 보귀에 뮈지니 그랑 크뤼 뀌베 비에이 비뉴 (1,035,317원)
Domaine Comte Georges de Vogüé Musigny Grand Cru Cuveé Vieilles Vignes
 
도멘 드루앙 라로즈 르 뮈지니 그랑 크뤼 (756,811원)
Domaine Drouhin-Laroze Le Musigny Grand Cru

 
※ 도멘 르루아, 도멘 죠르주 & 크리스토프 루미에, 도멘 콩트 죠르주 드 보귀에, 도멘 드루앙 라로즈는 생산자 이름이다. 
 
그랑 크뤼 포도밭 중에서도 명성 높은 뮈지니답게 죄다 미친 가격이지만, 같은 밭에서 생산된 와인인데도 70만 원대부터 2천만 원까지 편차가 크다. 그 이유는 생산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랄루 비즈 르루아 한때 로마네 꽁띠의 공동소유주였으며 현재 부르고뉴의 최고 생산자로 꼽힌다. ⓒ Maison Leroy S.A.

 
한때 로마네 꽁띠의 공동소유주였으며 현재 부르고뉴의 최고 생산자로 꼽히는 랄루 비즈 르루아(Lalou Bize-Leroy)가 이끄는 도멘 르루아가 역시 제일 비싸다. 그에 비하면 도멘 드루앙 라로즈 가격은 채 4%, 그러니까 25분의 1도 안 된다.

참고로 네 와인 명칭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도멘(Domaine)'은 와인 생산자가 해당 포도밭을 소유하고 재배부터 양조 과정까지 책임진다는 의미다. 이와 달리 남이 재배한 포도나 와인 원액을 구입해 와인을 만들어 팔면 '네고시앙(Négociant)'이라고 부른다.
 
네고시앙 중에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기 소유의 포도밭도 있는 기업형이 있는데, 이러한 거대 네고시앙을 따로 메종(Maison)이라고 부른다. 메종 J. 페블리(Maison J. Faiveley), 메종 조셉 드루앙(Maison Joseph Drouhin), 메종 루이 자도(Maison Louis Jadot), 메종 루이 라투르(Maison Louis Latour), 메종 르루아(Maison Leroy) 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남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서, 동시에 자기 밭 포도로도 와인을 만든다. 메종들도 자기 밭 포도로만 만든 와인에는 따로 '도멘(Domaine)'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애호가들이 도멘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도멘(Domaine) : 포도밭을 소유하고 재배부터 양조 과정까지 책임진다
▶네고시앙(Négociant) : 남이 재배한 포도나 와인 원액을 구입해 와인을 만든다
▶메종(Maison) : 네고시앙 중에 자기 소유의 포도밭도 있는 기업형 생산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생산자별 가격 차이는 그랑 크뤼 등급뿐만 아니라. 프리미에 크뤼, 마을 단위, 지역 단위에서도 동일한 현상이다. 쥬브레 샹베르탱의 마을 단위 와인의 가격을 생산자별로 비교해보자.
 
메종 르루아 쥬브레 샹베르탱 (611,503원)
Maison Leroy Gevrey-Chambertin

 
올리비에 번스타인 쥬브레 샹베르탱 '빌라주' (161,957원)
Olivier Bernstein Gevrey-Chambertin 'Villages'
 
조셉 드루앙 쥬브레 샹베르탱 (74,167원)
Joseph Drouhin Gevrey-Chambertin
 
같은 쥬브레 샹베르탱의 마을 단위 와인이지만 르루아 여사의 메종 르루아 가격은 조셉 드루앙의 8배가 넘는다. 이 정도면 웬만한 그랑 크뤼 등급 와인보다도 비싸다.
 
부르고뉴 지역이 유독 이렇게 생산자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심한 첫 번째 이유는, 같은 밭이더라도 재배 방식과 양조 방법에 따라 와인의 품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르고뉴 지역의 주품종인 피노 누아는 워낙 섬세하고 예민한 포도라 기후(天), 토양(地), 인간(人)의 손길에 민감하다.
 
최고의 생산자로 꼽히는 도멘 르루아는 유기 농법보다 훨씬 까다로운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 농법을 적용해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심지어 태양, 달, 행성 같은 천체의 움직임까지 고려할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포도를 재배한다.

혹여나 포도밭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싶어 트랙터처럼 무거운 농기계나 말 같은 가축도 사용하지 않는다.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선별해서 수확한 포도를 모아놓고 재차 골라내어 최고 품질의 포도만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단위 면적당 와인 생산량은 매우 적고 품질은 월등해 가격이 크게 오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같은 그랑 크뤼 밭에서 만든 와인의 가격이 25배 넘게 차이나는 상황을 품질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 이유는, 와인 공급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가 끊임없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부르고뉴에서는 프리미에 크뤼, 그랑 크뤼 등급을 포도밭에 부여한다. 해당 밭의 면적이 여의봉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지 않으니 와인 생산량은 매년 대동소이하다.

예컨대 뮈지니 밭은 전체 10헥타르 정도인데 그중 도멘 르루아가 소유한 구획은 고작 0.27헥타르다. 거기서 만들면 얼마나 만들겠는가. 경제가 성장하면서 고급 와인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높아지는데 부르고뉴 고급 와인의 생산량은 그대로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거기에 도멘 르루아의 명성이 더해지고 투기 수요까지 붙으니 와인 한 병이 자동차 한 대 값에 달하는 지경이 되었다.
 
때는 2017년 1월 1일, 한 해를 시작하는 특별한 날이라 근사한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고 싶었다. 부자 동네 견학하는 심정으로 방문했던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충동구매한 부르고뉴 와인 하나를 셀러에서 꺼냈다.
 
도멘 프리에르 로크 본 로마네 프리미에 크뤼 레 슈쇼 2011
Domaine Prieuré Roch Vosne-Romanée Premier Cru Les Suchots 2011

 
이 암호문 같은 와인 명칭을 의미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생산자인 도멘 프리에르 로크(Domaine Prieuré Roch)가 본 로마네(Vosne-Romanée) 마을의 프리미에 크뤼(Premier Cru) 등급 밭인 레 슈쇼(Les Suchots)에서 2011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의미다.

외조카의 와인도 이렇게 맛있는데
 

도멘 프리에르 로크 본 로마네 프리미에 크뤼 레 슈쇼 2011 ⓒ 고정미

 

도멘 프리에르 로크 본 로마네 프리미에 크뤼 레 슈쇼 2011 좌측은 전면 라벨, 우측은 후면 라벨이다. 여타 부르고뉴 와인과 다르게 후면 라벨에 자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 임승수

   
개털 사회과학 작가 주제에 30만 원대 중반의 거금을 주고 구입한 놈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맛있어야 했다. 로또 뽑는 심정으로 눈 질끈 감고 한 모금 마셨는데, 간만에 혓바닥에서 잭팟이 터졌다. 지금도 그 와인의 이미지가 생생하다.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별빛 비추는 한밤, 외딴 섬 해변에 앉아 주기적인 파도 소리에 취해 무작정 바다를 바라보는 그 아득함 말이다. 놀라운 집중도와 깊이를 가진 대단한 와인이었다. 삼십여만 원이 은혜로운 가격이라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도멘 프리에르 로크는 어떤 생산자이기에 이런 와인을 만들 수 있을까? 찾아보니 설립자 앙리 프레데릭 로크(Henry Frédéric Roch)는 르루아 여사의 외조카이며, 무엇보다도 로마네 꽁띠의 공동소유주인 것 아닌가. 어쩐지! 다들 로마네 꽁띠와 연결이 되는구나.

3년이 지난 지금, 해당 와인의 가격은 두 배 이상 뛰어 백만 원에 근접하고 있다. 2018년에 설립자인 앙리 프레데릭 로크가 50대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겠다. 예술가의 사망이 작품 가격에 영향을 주듯 말이다.
 
외조카의 와인도 이렇게 맛있는데, 르루아 여사의 와인은 얼마나 대단할까? 수십억 원대의 로또 돈벼락을 맞지 않는 이상 내 혓바닥이 2천만 원에 육박하는 도멘 르루아 뮈지니 그랑 크뤼와 인연을 맺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너무나 궁금하다. 어차피 내 인생의 8할은 호기심이 이끌어 오지 않았나. 눈 딱 감고 120개월 할부라도 돌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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