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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9.24 13:48 수정 2020.09.24 13:54
 
그러나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청년들의 분노를 듣습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 같은 불공정의 사례들을 봅니다. 공정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불공정도 있었습니다. '제도 속의 불공정', '관성화된 특혜'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나의 공정이 다른 불공정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해소하는 일이 한편에서는 기회의 문을 닫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공정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공정에 대해 더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제1회 청년의 날 대통령 기념사 일부
 
지난 19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사에서 대통령은 공정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언급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불공정 사례들을 그냥 모른 척 지나면서 공정을 아무리 강조해봐야 의미가 없다"라고 평가절하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조국, 추미애 법무부 장관 이 두 사람 어디에서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을 내세워놓고 공정을 37번이나 이야기한다는 것이 도대체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공정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
 
9월 2일 국민의힘이 제정한 강령에는 '공정'이라는 단어가 14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임을 깊이 인식", "불공정과 부조리 앞에서 누구도 예외 없는 사회", "엄격한 공정의 기준을 마련", "모두에게 공정한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이렇듯 공정을 강조하는 국민의힘의 최근 행태를 보면 대통령에게 '공정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다'고 말할 자격이 있나 의심스럽다.

내로남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당시 피감기관들로부터 수천억 원대 공사를 특혜 수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추미애 장관의 아들에 이어 딸까지 거론하며 공정 프레임으로 여론을 자극하던 국민의힘이 국토교통부 등 피감기관으로부터 관급공사를 수천억 원 특혜 수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탈당한 박덕흠 의원에 대해서는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대하며 별다른 말이 없다. 심지어 박 의원 의혹에 대해 "추미애 장관 물타기다", "의원 가족은 사업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21일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라고 한 게 국민의힘이다.
 
박 의원의 특혜 수주 의혹은 아직 의혹이다. 그렇다 해서 의혹 제기를 여당발 물타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거니와 조국 전 장관, 추미애 장관 논란에서 국민의힘이 보인 태도와 비교해 보더라도 이율배반적이다. 박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 상임위원 시절 가족 명의의 건설사가 피감기관으로부터 수 천 억 원대의 공사를 수주했다는 사실에서 피감기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권력이 작용했으리라고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덕흠 의원이 19·20·21대 국회에서 5년여의 기간 국토교통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소속 당의 묵인·방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이해충돌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전직 건설사 대표이고, 그 일가가 건설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5년여 기간 국토교통위에 배정한 정당이 문제가 불거지자 당과는 무관한 본인의 문제인 것처럼 넘어가려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민주당은 지난 18일 총선에서 10억 원이 넘는 아파트 분양권을 누락하고 4주택을 3주택으로 축소 신고한 비례대표 4번 김홍걸 의원을 제명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당 명부에서 이름만 빼고 계속 같은 편인 게 무슨 징계냐"(배현진 원내대변인)라며 "의혹 확산을 막기 위한 꼬리 자르기일 뿐"(윤희석 대변인)이라고 했다.
 
박덕흠 의원의 탈당 역시 의혹의 꼬리 자르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은 김홍걸 의원의 경우와 똑같다. 제명한 김홍걸 의원이 이름만 뺀 같은 민주당 편인 것처럼 탈당한 박덕흠 의원도 여전히 국민의힘 편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민주당이 김홍걸 의원을 제명할 때까지 국민의힘은 총선 당시 11억 원을 허위로 신고한 조수진 의원에 대해 아무 조치가 없었다. 또 삼성물산 사외이사로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관여한 의혹이 있는 윤창현 의원의 이해충돌 논란에 대해서도 별말이 없다. 이러니 민주당처럼 꼬리 자르기라도 해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탈당이나 제명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추미애 장관 아들 휴가 의혹에 대해 불공정한 특혜로 청년들의 박탈감을 키웠다며 문재인 정부는 공정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 5년여 기간 국토위 상임위원으로 있으면서 수천억 원의 관급공사를 수주한 박덕흠 의원 의혹을 바라보는 국민의 박탈감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민주당에서 제명된 김홍걸 의원만큼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의 의혹도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준 건 마찬가지다. 여론의 눈치나 보면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건설사들이 줄도산하고 국민 경제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당의 불공정 행위는 감싸면서 대통령이 청년의 날 기념사에서 공정을 37번 언급했다고 '감히'라고 몰아세운다. 주호영 원내대표 말대로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럴 수는 없다.
 
공정은 정부 고위 관료나 여당만 지켜야 할 도덕 규범이 아니다. 여당이 재산 축소신고 의혹이 있는 의원을 제명한 것이 꼬리 자르기라면, 그렇게 주장하는 야당은 같은 의혹의 자당 의원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고 정치가 염치를 지키는 일이다.

이제 국민은 여야를 떠나 문제 있는 의원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처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김홍걸 의원의 제명에 박수치지 않고 박덕흠 의원 탈당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지 않는다. 국민의 요구는 자격 없는 국회의원을 국회에서 내치라는 것이지 당 밖으로 내보내라는 게 아니다.

정당이 국회의원직을 박탈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서로 의원직 박탈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정치 공방일 뿐이다. 여야가 합의해서 이들 의원을 윤리특위에 회부하고 국회 본회의에서 제명 절차를 밟는 것이 공정의 의지를 국민들에게 확인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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