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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10.16 07:11 수정 2020.10.16 07:11

“인간 말종들이 사는 동네예요.”

서울 대학동 식당 골목에서 30년 넘게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하(가명)씨는 가게의 주 고객층인 윗동네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말에 눈살부터 찌푸렸다. 김씨는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을 바닥부터 싹 까 보면 3명 중 2명은 나쁜 놈들일 것"이라며 '이방인'을 향한 불안과 혐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학동 고시촌은 크게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뉜다. 가파른 언덕길 위에 있고 오래된 고시촌이 밀집한 지역을 윗동네, 원룸 등 비교적 신식 건물이 들어서 있고, 교통 접근성도 좋은 곳을 아랫동네로 칭한다.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나뉘는 길목 일대에는 식당 20여 곳이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 사법고시가 한창이던 시절부터 고시촌의 역사를 함께 한 식당들이다. 식당 주인들도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람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아랫마을은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소위 '잘 사는 동네'다. 가게 주인들은 "1만원대 이상의 음식을 파는 가게들과 이를 사 먹는 청년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윗동네는 정반대다. 한 식당주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한 끼에 3000원 내기도 부담스러워하는 비렁뱅이들이 모인 곳"이다. 밥을 먹은 뒤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심지어 식당에 들어와 누군가 남기고 간 잔반을 훔쳐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윗동네 사람들

이 일대 식당들의 가격은 매우 저렴했다. 된장국이나 미역국, 북엇국 등 일반적인 메뉴 하나당 가격이 3500원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10장에 3만원 하는 '식권'을 판매해 이를 이용하면 3500원짜리 메뉴를 3000원에 먹을 수 있다. 주요 고객층이 대부분 윗동네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가격을 받으면 손님이 끊길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음식점 주인 김영하씨는 "(저렴한 가격 때문에) 주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40~50대 남성들"이라고 설명했다. 윗동네 중장년층 남성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사법고시 폐지 전까지 대학동에서 고시 생활을 하다 합격하지 못해 이곳에 눌러앉게 된 경우와,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 이쪽으로 옮겨온 경우다. 김씨는 "동네 물가가 워낙 저렴하니 (외지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고 있다"며 "다른 지역에서는 1만원 갖고 한 끼밖에 먹지 못하지만 여기에선 3끼를 먹어도 1000원이 남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식당 주인들의 시선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고시촌 거주민이라고 하면 '고시생'이라며 존중해줬지만, 지금은 경멸과 멸시를 감추지 않는다. 식당에 오는 손님이지만 식당주인들은 '무전취식'을 의심하며 경계한다. 불미스러운 일도 종종 일어난다. 실제로 김씨는 술에 취한 취객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꼬박 1년 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 후로 풍까지 앓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밖에 작은 사고들도 잇따랐다. "누군가 식당에서 먹고 남긴 음식을 식당 주인이 안 보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먹고 가기도 해요. 또 우리 가게는 튀김을 3개에 1000원에 파는데 3개 먹었으면서 2개 먹었다고 거짓말 하기도 하고요. 그런 또라이들 많아요. 그래서 부엌일을 볼 때도 항상 신경의 30%는 손님한테 가 있어요. (손님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손님에 대한 신뢰가 없는 탓에 대부분 식당들이 '선불'을 받고 있었다. 이곳에 위치한 ㅂ식당 주인은 "혼자 일하고 있다 보면 계산도 하지 않고 음식을 먹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아 선불을 받고 있다"며 "(손님들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말했다.

"따질 거면 나가라"

고시원 주인들도 임차인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긴 마찬가지였다. 지난 5~6월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실제 대학동에서 살아보기 위해 임대 가능한 고시원을 물색했다. 간판 없는 낡은 고시원 한 곳을 찾았을 때 일이었다. 취재 기자가 에어컨과 식사 등 여러 거주 여건에 대해 질문하자, 50대 주인은 "개념을 좀 가져라"며 "그런 거 따질 거면 나가라, 안 받는다"고 거칠게 쏘아붙였다. 그는 "임대료 17만원을 받는데 이런 거 저런 거 하면 남는 거 없다"며 "조건을 따질 거면 여기 말고 더 비싼 곳을 알아보면 될 것"이라고 역정을 냈다. 또 다른 한 고시원에서 만난 주인도 화장실 등 주거 여건을 묻자 "왜 그렇게 꼬치꼬치 묻느냐"면서 귀찮다는 듯이 돌아섰다. 모두 월세 10만원대인 고시원에서 겪은 일이었다. 모든 고시원 주인이라고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나, 취재진이 만난 고시원 주인들은 한결같이 빳빳한 자세를 취했다. 10만원대 고시원에 머무르려는 사람들에게는 주거 환경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윗동네 거주민들에 대한 동정의 시선도 있었다. 백반집 운영자 이정선(가명)씨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10%는 학생이고 나머지 90%는 별천지"라며 "이혼한 아저씨, 장가 못 간 총각, 기초생활수급자, 알코올 중독자 같은 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위험하지는 않냐'는 질문에는 "다 사람 사는 동네인데 그런 건 없다"고 답했다. "마음 다친 사람들이지 뭐." 이씨는 그들을 그저 안타까워했다.

증오 혹은 동정... 다른 시선, 같은 뿌리

식당 주인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지만, 그 기저에는 '거주민들은 불우한 사람'이라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고시촌 거주민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고시촌에 거주하는 이희석(62, 가명)씨는 "우리는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한다"며 "변변한 옷이 없어서 대학동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한다"라고 위축된 심리를 드러냈다. 대학동 고시촌 일대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진행했던 송인주 서울시 복지재단 연구팀장은 "대학동 물가가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다"며 "그러면서 주민들이 고시촌 주민을 바라보는 시각도 존경에서 경멸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송 팀장은 "가뜩이나 홀로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거주민들을 '사회적인 낙오자 혹은 잉여인간'으로 여기는 주민들의 시선은 이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며 "타인의 시선을 피해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면서 고독사 등 또 다른 사회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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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