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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10.23 07:11 수정 2020.10.23 07:11
"대학동 고시원은 애초에 사람이 거주할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만든 곳이에요. 주거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몇 안되는 동네지만, 대신 열악한 시설은 감내한다는 일종의 거래가 이뤄지는 셈이죠."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위 사진)에게 대학동 고시촌은 낯선 동네가 아니다. 녹두거리로 불렸던 대학동 고시촌은 그에게는 학창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최 소장은 올해 오랜만에 다시 들렀던 고시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고시생들이 떠나고 저소득 독거 중년들이 유입되면서, 고시촌은 슬럼화가 급속도로 총괄되고 있었다. 쪽방촌보다 열악한 고시원들의 주거 환경은 이런 슬럼화를 부추기고 있었다. 대학동 고시원은 대부분 공동 부엌이 없고 공동 화장실도 부족하다. 열악한 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최 소장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그는 "정부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며 "(서울시 등에서 마련한) 고시원 기준을 소급해서 적용할 방법이 없지 않았지만 정부나 서울시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 뉴욕은 1900년대 초 공공이 직접 나서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해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했고, 영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며 "시설 개선을 위해선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서 강제적인 수단도 동원하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영 소장은 대학동 고시촌 문제를 이렇게 방치할 경우 거대한 슬럼화가 총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밀집하고 방치되면서 극단적인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며 "고시촌 거주민들을 위한 공동 커뮤니티 시설 등 당장 공공이 제공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동 고시원이 쪽방촌보다 열악하다"

- 올해 서울 전역 고시원·원룸의 실태조사를 총괄했다.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대학동 고시촌에서만 두드러지는 점은 무엇인가.
"대학동은 타 자치구 대비 고시원의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크다. 고시원의 원조 격이다. 사법고시가 폐지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에서 (고시원 운영자가) 1000만원~2000만원 버는 건 우습다는 이야기도 나왔을 정도다. 그런데 사시가 폐지되면서 그 성쇠가 '드라마틱'해졌다. 여전히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있지만 고시생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가난한 사람들이 채워나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 고시생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뭔가.
"사회·경제적으로 다양한 여건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구분할 때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곳 고시원에는 위쪽과 아래쪽이 있다. 위쪽에는 가난한 50·60대들이, 아래쪽에는 청년층이 살고 있다. 당연히 위쪽이 더 저렴하고 열악한 곳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다. 이곳은 과연 쪽방촌만큼 열악한가. 그런데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 쪽방촌보다 대학동 고시원이 열악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쪽방촌은 최소한 밥 해먹을 공간이라도 있다. 수도도 달려 있다. 물론 그렇게 방에서 밥을 해 먹다 불이 나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지만, 최소한 밥을 먹는 걸 전제로 하는 공간이지 않나. 그런데 대학동에 있는 노후 고시원들은 태생 자체가 '공부하는 곳'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부엌이 없는 곳이 많다. 그 안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는 개념이 없었다. 남편도 오래전에 공부 때문에 대학동 고시원에 잠깐 있었는데 생활은 다른 데서 하고 고시원 안에선 잠만 잤다고 했다."
- 그렇다면 고시원에 부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들이 고시원을 사실상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밥 해 먹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 하지만 '그 시절' 생겨난 노후 고시원 중에 부엌을 갖춘 곳은 적다. 공부하는 곳이라는 원래 고시원의 쓰임새와 주거 공간이라는 현재의 용도 간에 큰 간극이 있는 셈이다. 대학동 고시원만큼 오래되지 않은, 다른 지역 고시원들은 밥과 김치를 제공하는 곳도 많다."
- 대학동 고시원 거주자들이 부엌이 없기 때문에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대부분 밥을 사 먹을 여유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고시원에 모여 사는데 공용 부엌마저 없으니 한 끼만 먹는 이들이 많다. 대학동 내 무료급식소인 '해피인'에서도 이야기하지 않나. (밥을 지원받는 사람들이) 거기서 한 끼 받아먹는 게 전부라고 하더라. 최소한 거주자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 부엌이라도 외부에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라면이라도 간단하게 끓여 먹을 수 있는 '리빙 라운지'라도 구성하자는 것이다. 공공이 나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부엌 이외에 노후 고시원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또 있을까?
"당연히 이곳의 문제점은 부엌뿐만이 아니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화장실이 부족한 것도 고시생들이 임시로 머무는 공간이지 사람이 사는 곳이라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쪽방촌에도 샤워실은 있다. 심지어 대학동에는 방이 40개인 곳에 화장실이 3개 달린 곳도 있었다."
- 서울시에서도 지난해 3월에 '노후고시원 주거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각 방 면적을 7㎡ 이상으로 하고 방마다 창문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새로 생기는 고시원에만 적용될 뿐 노후 고시원에는 적용되지 않는 대책이었다. 이마저도 권고사항이다.
"정부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고시원 기준을 소급해서 적용할 방법이 전혀 없지 않았다. 지금도 스프링클러는 소급하지 않나. 시설 개선을 위해선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가 돈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고시원 내부를 고칠 방법은 없다. 뉴욕은 1900년대 초 공공이 나서서 열악한 주거를 강제로 바꾸게 하고 창문도 뚫게 했다. 영국도 반은 강제, 반은 지원해 주거 형태를 고쳐나갔다."

"정부 무책임... 정책 실패 인정해야"

-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앞서 말한 '윗동네'에 최근 40~60대 독거 중년층이 몰려들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주거정책 측면에서 상당수 중년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주거복지로드맵이라는 게 있다. 2017년에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임대주택에 대한 로드맵이다. 여기서 정부는 무주택 서민 실수요자를 위해 주택 85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청년 임대주택 19만 호·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 20만 호·고령자 공공임대주택 5만 호·저소득층 일반 가구 41만 호 등이다. 그러니까 청년과 신혼부부, 노인들에게는 임대 주택 물량을 따로 배정했지만 이외 사람들에게는 별도 물량을 배정하지 않고 취약계층과 함께 주택을 받도록 묶어뒀다. 여기서 묶인 사람들이 바로 중장년층이다."
- 중년 주거정책은 왜 사각지대에 놓였을까?
"제가 묻고 싶은 이야기다. 현재 정책에서 신혼부부가 너무 부각돼 있다.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2019년 주거실태조사에서 신혼부부의 약 50%가 자가에서 살고 있었다. 2018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결혼 후 7년 이내인 신혼부부가 첫 집을 사는 데 걸리는 기간은 고작 1.7년이었다. 신혼부부는 우선적인 주거복지대상이 아니다. 정부가 실패를 인정할 때도 됐다. 그런데도 저출생 사회와 주택이 연결되면서 신혼부부에게 과도한 주거복지 자원이 배분된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물량이라는 파이는 크게 늘지 않았는데 절반 정도를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떼어준 셈이 됐다."
- 국토부는 중장년층 물량을 따로 배정하지 않고도, 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 사업(쪽방 등 비주택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이들에 공공임대주택 주거 이전 기회를 주는 사업)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한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지난 3월 국토부가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 2.0을 보면, 쪽방이나 노후고시원 거주자를 위한 우선 지원 공공임대 물량을 연간 8000호씩 확대해 2025년까지 총 4만 가구 늘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고시원만 15만 가구다. 어떻게 커버할 수 있겠나. 게다가 이 사업에 중장년층이 선정되기도 힘들다. 근로 능력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60세 이상 노인들에게 더 유리하다. 하지만 근로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일자리가 있는 게 아니고 특히나 이들에게 특별히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지 멀쩡한 중장년층에 왜 도움을 줘야 하냐'는 사회적 시선이 중장년층의 곤란한 처지와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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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방치하면 거대한 슬럼화 총괄될 것”

- 상황이 열악한 중장년층은 왜 하필 대학동으로 모여드나?
"고시생을 위한 공간이 대규모로 만들어졌다가 그들이 떠나니 빈 곳이 생기지 않았나. 게다가 열악한 시설로 서울의 일반적인 월세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대학동은 한편으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주거를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공공이 지원해 주거 여건을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공임대주택에 못 들어가는 저소득층이 살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지 않나. 그런데도 공공은 이들의 주거 여건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사실 기초생활수급자가 살 수 있는 '적정 주거'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주거비 부담이 적당하고 살 만한 집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주거급여라는 돈을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고 있다. 트레이드오프(trade off, 상충관계)인 것이다. 대부분은 저렴한 주거비를 감수하고 열악한 환경을 견딘다. 그래서 2018년 국일고시원 사고에서도 7명이 돌아가셨는데 그중 4명이 기초생활수급자라는 비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 대안은 무엇인가?
"중년을 공공임대주택 물량 배분 대상에 포함하고 취약 계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크게 늘려야 한다. 공공임대주택 물량이 저소득층이나 주거 환경이 아주 열악한 이들 위주로 짜이지 않았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공공임대주택 배분의 원칙도 사회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현재 우리는 공공임대주택을 100만 호 갖고 있다. 30년 동안 만들어낸 양이다. 다시 100만 호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짐작할 수 없다. 현재는 한 해 10만 호 이상 공급하지 않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을 20만 호씩 공급한다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또 원래 공공임대주택을 소득 하위 40%에게 나눠줬는데 행복주택으로 지원 대상이 7분위에까지 확대됐다. 게다가 정부는 앞으로 중위소득의 130% 수준까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월에 503만원을 버는 3인 가구도 지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고시원에 사는 중장년층들은 계속 소외될 수밖에 없다."
- 중장년층의 주거 사각지대를 방치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역에 거대한 슬럼화가 총괄될 거다.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모여들면 당연히 근처 사람의 주거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점점 가난한 사람들이 밀집할 거다. 안 그래도 열악한 환경이 더 열악해지는 꼴이다. 또 치료가 필요한, 그야말로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방치되니 극단적인 사건도 나타날 수 있다. 고시원에서 화재 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지 않나. 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시한폭탄 같은 곳이다. 우선 공공이 나서 고시원을 고치고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고쳐서 될 게 아닌 고시원들은 털기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이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공공의 컨센서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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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