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6 05:56최종 업데이트 22.03.1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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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당선에 대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탄핵으로 쫓겨났던 보수 세력의 복귀다. 탄핵과 대선 패배 후, 보수야당은 수차례 이름과 색을 바꾸며 흩어졌다 모이기를 거듭한 뒤, 정치 경험이 전무한 법조인을 앞세워 권력 탈환에 성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도중 해고된 까닭은 '비선'에 의존한 탈법적이고 비민주적 의사결정과 권력남용이었다. 그리고 이 지도자의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인 행태에는 짙은 '주술'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흥미롭게도, 윤석열 당선자 역시 몇 차례 권위주의적 행태로 비판 받았고, '주술'과 관련한 일화들로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7월 14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새누리당 최고대표위원을 선출하는 제 3차 전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으로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유권자들은 5,6년 전 광장을 밝힌 무수한 촛불과 외침을 잊은 것일까? 그럴 리 없다. '냉동인간'이라는 조롱이 나올 만큼 사회와 동떨어진 윤석열 당선자의 인식과, 배우자와 장모를 향한 의혹에도 유권자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변화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절박했다고 봐야 한다. 윤 당선자는 유세 과정에서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무지와 몰이해를 드러냈지만, 이런 불확실성을 무릅쓰고라도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한국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모든 유권자들이 합리적 판단과 숙고를 통해 표를 행사한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 일부는 늘 뽑던 관성에 따라, 일부는 더 챙기고 싶은 탐욕에서, 일부는 분노의 대상을 잘못 겨냥한 빗나간 증오심에서 표를 던졌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여성과 외국인을 겨냥한 혐오가 대선 전략으로 활용됐다. 정치의 존재 의미를 회의하게 만드는 이 비'휴머니스트'적 행태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대본부 해단식에서 이준석 대표에게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하지만 나는 이번 대선 승패를 가른 가장 중요한 요인이 혐오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뒤에서도 다루겠지만, 이준석 대표 일행이 여성에 대한 그릇된 반감을 정치 수단화함으로써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명백하다. 이 대표가 즐겨 쓰는 '복어' 비유를 들자면, 제 입에 맞는 복어 살 한 점을 얻자고 온 국민이 마시는 샘물에 독을 풀어놓은 셈이다.

하지만 대선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이 대표가 기획하고 윤 당선자가 실행한 '혐오의 정치'는 참담히 실패했다.

실패한 혐오의 정치

남녀 갈등의 주 대상으로 지목된 20대에서 이재명은 남녀 유권자를 통틀어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이번 대선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방송 3사 출구조사를 보면, 20대 이하 유권자의 47.8%가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준 반면, 윤석열 후보에게 간 표는 45.5%였다. 30대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비율이 더 높았지만, 그 비율은 48.1%대 46.3%로 차이는 1.8퍼센트 포인트에 지나지 않았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인해 여성들의 삶이 더 크게 위협 받으리라는 우려가 커졌고, 그로 인해 젊은 여성 유권자들의 표가 결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윤석열 당선자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해체'를 공언하고, 그의 '브레인' 격인 이준석 대표는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진다"거나 "20대 여성은 어젠다 형성에 뒤처지고 추상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특정 대상을 뭉뚱그려 단순화하는 행위야 말로 차별과 혐오의 전형적 사례다. 인종주의자들이 '동양인들은 감정적'이라는 말로 '이성적'인 자신들의 우월성을 주장하듯 말이다. 이미 2017년 대선에서 여성 투표율이 77.3%로 남성 76.2%를 앞질렀고, 이 변화를 이끈 것이 20대 여성 유권자들이었다. 20대 대선을 앞둔 2월 말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여성 유권자의 비율이 90%로 남성 87%보다 높았다.

이유가 무지 때문이었든, 성적 고정관념 때문이었든, 여성 유권자를 무시하고 배제한 결과는 이재명 후보의 민주당 최다 득표 기록과 대선 사상 최소 격차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마친 뒤 손에 기표 도장을 찍고 기념사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민주당의 패인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최대 지지층인 40대 유권자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그 원인은 이 열정적 지지자들의 등을 돌리게 만든 민주당과 정부의 행적에 있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77.1%를 기록했지만, 출구조사에 나타난 40대의 투표율 추정치는 70.4%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19대 대선 당시 40대 투표율 74.9%와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치다.

40대는 50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유권자가 포진한 연령대로, 출구조사에 따르면 남녀 모두 60% 이상이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한국의 40대는 민주화 이전과 이후 모두를 경험한 세대로, 매우 뚜렷한 정치성향을 지닌 집단이다. 민주당에 크게 실망했으면서도, 권위주의 시대의 지도자를 떠올리게 하는 윤석열 후보만큼은 도저히 찍을 수 없어 기권한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40대가 전체 투표율에 해당하는 77%의 비율로 투표하고 그중 60%가 이재명을 지지했다면, 35만 표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50%대에 머문 50대 유권자의 득표율을 조금만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면 선거 결과는 뒤바뀌었을 것이다.
 

서울 명동 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하려는 시민들. 2021.10.25 ⓒ 연합뉴스


한국에서 40대는 가정을 꾸리거나 생애 첫 주택을 마련하는 시기이다. 당연히 안정적 소득과 집 장만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혼란스런 주택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였을 뿐 아니라, 희생은 요구하면서도 보상에는 인색했던 방역 정책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이다. 이들 40대는 자영업자 전체의 30%를 차지하며, 또 다른 지지층인 50대를 더하면 그 비율이 60%를 넘어선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것이 이상한 일일까?

민주당 집권의 명과 암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주택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집 없는 사람은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집 있는 사람은 더 오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부와 민주당이 어느 계층을 배려해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일찌감치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통해 다주택자에게 막대한 세제 혜택을 베푸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기보다 세금회피 수단으로 사 모으기 시작했고, 이는 오르는 집값에 기름을 뿌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물론, 집값이 오른 것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코로나 이후 낮아진 금리로 대거 풀려난 돈이 주택시장에 몰렸기 때문이다. 앞의 세제혜택 역시 임대주택을 늘려 서민들의 주택 마련을 돕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을 내놓기에 앞서 그 부작용을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섣부른 정책을 내놓은 뒤 땜질 처방을 하는 실수를 반복했고, 투기꾼들은 더 이상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섞여 있는 서울 강북지역 주택가. ⓒ 권우성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청와대 핵심인사들의 위선적 언행이었다. 정부 초반인 2018년 9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집값이 폭등하는 와중에 라디오에 나와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는 없다"며,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후반에 들어선 2021년 3월에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신의 강남 소유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14% 이상 올려 받은 것이 드러나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그 시기가 임대료 인상폭을 5%로 제한하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이었다. 정부 관계자들의 이런 행태는 부동산 정책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비난 받아야 할 일만 한 것은 아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과로 임기 동안 소득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개선됐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70위까지 추락했던 언론자유지수를 42위, 아시아 1위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표현의 자유 확대는 현 정부에서 한국의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비록 대외적 상황으로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남북화해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것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국우선주의로 수렴하는 세계 속에서 외교적 균형을 비교적 잘 지켜낸 것 역시 호평 받을 만하다.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등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다양성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나름의 실천을 한 것 역시 평가 받아야 한다.

방역은 어떨까?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확진자 수가 폭등하자 야당과 보수언론은 '총체적 실패'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객관적 평가와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 지난 일주일간 하루 평균 30만 명 넘는 환자가 발생했고, 사망자 역시 늘어 하루 평균 205명에 달한다. 수치로 보면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려워 보이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의 상황은 결코 나쁘지 않다. 예컨대 미국은 확진자가 하루 평균 3만 5천명 수준이지만, 사망자는 무려 1292명에 달한다.

이는 인구비율 사망자 수를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은 100만 명당 297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한국은 203명으로, 미국의 15분의 1 수준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현 정부의 방역 정책을 '비과학적'이고 '불필요하다'고 비난해 왔으나, 철저한 추적을 통해 확산을 막고 백신 접종률을 비약적으로 높여 시간을 번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성과였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 한국에서 수배에서 수십 배의 사망자가 나오고 있을 것이다.
 

수도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가운데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식당가가 한산하다. 2020.12.9 ⓒ 연합뉴스


방역 정책의 문제는 따로 있다. 일선의 보건 노동자들과 자영업자에게 희생을 요구하고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가 방역을 위해 고객 수와 영업시간을 제한한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피해를 보상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 유럽, 일본이 자영업자에 수천 만 원에서 억대의 피해보상을 할 때, 한국은 고작 수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 적은 액수조차 기획재정부의 비협조를 변명하며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 자영업자들은 절망에서 죽음의 길을 걸었다. 이것을 무능 아니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정권은 교체됐다, 그 다음엔?

현재 한국사회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부의 집중으로 인한 불평등 심화, 직업 불안정, 비수도권 황폐화, 낮은 출생률, 노인빈곤, 약자와 소수자 혐오 확산, 기술기업(테크기업)의 독과점과 지배 강화로 위협받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 복잡한 문제들이 한데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대외적 요인과도 연결돼 있다.

실타래처럼 뒤얽힌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뇌수술에 요구되는 섬세한 판단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 한국 유권자들은 검찰 출신의 '정치 신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는 '뇌수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최근까지 당선자가 보인 태도는 깊은 우려를 낳게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받았음에도, 사과와 반성을 모르는 태도가 그렇다. 그는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남녀갈등에 대해 "젠더,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대본부 해단식에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당선자가 트럼프가 그랬듯 '전임자 정반대로 하기'에 몰두하는 태도 역시 우려스럽다. 비록 핵심적 영역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다수의 유권자는 문재인 정부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 정부의 성공한 정책을 계승하며 과오를 바로잡기보다 '문재인 지우기'에 골몰한다면, 역시 트럼프가 그랬듯 실패를 재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향후 5년은 윤석열 정부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앞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탄핵으로 쫓겨났던 보수세력의 복귀'라고 말했다. 어렵게 얻은 이 기회를 날려 버린다면, 앞으로 다시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시민들은 5년 동안 잠자코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은 들끓는 촛불에 밀려 탄핵에 앞장섰던 장제원 비서실장 내정자와,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윤석열 당선자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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