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5 19:12최종 업데이트 23.12.2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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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슬라우스 홀라르, <로열 익스체인지>, 1644 ⓒ Wenceslaus Hollar

 
이곳은 17세기 중엽의 런던 왕립거래소(Royal Exchange)다. 왕립거래소는 오늘날 런던 증권거래소의 전신으로 무역상인들이 모여 주식을 사고 팔던 공간이다. 이때는 런던이 세계 해상무역의 주요 거점으로 발돋움하며 국가 경제의 엔진 역할을 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대륙의 주요 국가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과 자메이카 등 영국 식민지령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무역 상인들은 하루 두 번 이곳에 모여 직접 거래를 진행하였다. 보헤미아 왕국 출신으로 17세기 런던에서 활동한 판화가 윈슬라우스 홀라르(Wenceslaus Hollar, 1607-1677)는 아우성 소리가 가득한, 분주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거래장의 모습을 정교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윈슬라우스 홀라르, <로열 익스체인지>의 일부. 노란색 도형 안에는 작품 속 유일한 여성이 그려져 있다. ⓒ Wenceslaus Hollar

   
거래 중인 상인들로 북적이는 화면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좌측 하단부에 등장하는 그는 그 누구와도 교류하고 있지 않고 홀로 동떨어져 있다. 치마를 입은 모습으로 그려져 여성으로 추정되는 이 인물은 고깔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길게 늘어진 종이 한장을, 다른쪽 손에는 종이 뭉치 보따리를 들고 있다. 바로 '발라드 셀러(ballad seller)'다.
 

<로열 익스체인지>의 유일한 여성의 모습. 17세기 중엽 영국 왕립거래소의 여성 발라드 셀러로 추정된다. ⓒ Wenceslaus Hollar

발라드 셀러는 일종의 행상인이다. TV, 라디오, 신문 등 대중 매체가 발달하기 이전, 이들은 정치선전물, 선언문, 재난·재해, 범죄 등 각종 사건 사고 소식을 실은 낱장의 인쇄물을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판매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계란이 왔어요. 싱싱하고 맛 좋은 계란이 왔어요" 또는 "찹쌀~ 떠억, 메밀~ 무욱"과 같은 외침처럼, 발라드 셀러들은 최신 뉴스에 가락을 얹어 노래를 부르듯 큰 목소리로 외치며 판매해 '발라드 싱어'라고도 불린다.

홀라르가 그린 발라드 셀러는 거래장에서 뉴스를 판매하고 있으니 19세기 말 뉴욕의 '뉴스 보이' 또는 소위 '증권가 찌라시'라 불리는 증권가 사설정보지를 판매하는 유통업자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

마르셀루스 라룬(Marcel Laroon)의 1688년 판화 연작. 과일이나 생선을 머리에 이고 팔러다니는 여자 행상을 그렸다. ⓒ Marcellus Laroon II

  
발라드 셀러처럼 런던 거리를 무대 삼아 노래를 부르며 물건을 판매하는 봇짐장수들은 약 16세기경부터 '런던의 외침(Cries of London 또는 London Cry)'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이것은 예술이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던 시절, 드물게 민중의 초상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세 런던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으로 마르셀루스 라룬(Marcel Laroon)이 남긴 판화 연작을 보면, 여성 행상인들은 주로 과일이나 생선 등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작자 미상의 '런던의 외침'은 개성 넘치는 행상인의 모습으로 당시 런던시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해 영국 판화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소재였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흔하게 소비되었던 만큼 '런던의 외침'은 오랜 시간 예술작품으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조악한 완성도 때문이었다. 게다가 영국이 17세기 중반부터 상업과 무역의 발전에 따른 소비자 혁명(consumer revolution)을 겪게되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는데, 최근에서야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이들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작자미상의 17세기 런던 커피하우스 내부를 보여주는 그림(1695) ⓒ 작자미상

 
한편 17세기 런던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으로 커피하우스를 들 수 있다. 당시 커피하우스는 왕립거래소의 위성시설로 거래시간 이외의 시간에 무역상인들은 이곳에 모여 커피를 음미하며 서로의 정보를 공유했다. 오늘날 우리가 커피전문점을 이용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술을 파는 선술집과 다르게 '맨정신'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커피하우스는 토론의 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무역상인들 뿐만 아니라 엘리트 계층의 젠틀맨들은 이곳에 모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으로 기능한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여성과 노동자를 배제한 부르주아 남성에게만 제한된 공간이었다고 그 한계점을 짚은 바 있다.
 

커피하우스의 유일한 여성이었던 커피 여인. 대부분 남편과 사별한 여성이었다. ⓒ 작자미상

 
그런데 뜻밖에도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키오스크 안에서 커피잔을 건네는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왕립거래소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성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미술 전시장으로서도 활용되었던 커피하우스 벽면에 걸린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커피하우스에서 여성은 암묵적으로 출입이 금지되어었던 반면, 이를 운영하는 사람은 주로 남편과 사별한 여성이었다. 이들을 일컬어 '커피-여인(coffee-woman)'이라고 했다. 런던에 최초로 커피하우스가 들어선 지 20여년 지난 1674년, 런던에서는 커피하우스의 출입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윈슬라우스 홀라르, 사계 중 겨울, 1643 ⓒ Wenceslaus Hollar

 
일반적으로 도심 풍경을 담은 그림 속에서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 읽히거나 사치품 소비 공간에 등장한다. 왜 여성은 주로 생산의 주체보다 소비의 주체로 그려질까. 앞서 왕립거래소의 거래장에서 여성 발라드 셀러를 그려넣은 홀라르도 <사계절>을 주제로 한 판화 연작에서 이러한 시선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번에는 왕립거래소를 배경으로 여성 한 명이 단독으로 서 있다. 이 여성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모피로 뒤덮고 있는데, 화면 하단부에는 '밤을 매끄러운 피부로 보내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덧붙여있다. 다른 계절들은 귀부인으로 의인화한 반면 도심을 배경으로 한 여인은 매춘부의 문맥에 놓고 있는 것이다.

위의 예시들처럼 17세기 런던의 일상을 담은 그림 속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모습은 드물게 찾아지면서도 보이지 않는 여자들로 그려진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공간 속에서 여성은 앞으로 어떤 매체를 통해 어떤 이미지로 그려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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