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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9.21 09:57수정 2018.09.21 09:57
이전 줄거리 : 어느 늦은 저녁, 주점 1001 M.U.N의 주인장 앞에 꿈인지 환상인지, <신곡>의 저자, 단테가 나타나 고향인 토스카나의 와인, 끼안티 클라시코를 마시며 자신의 명작과 일생 그리고 피렌체의 상징이자 끼안티 클라시코의 상징인 검은 수탉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자신의 고향 후배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딸랑' 하는 풍경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1001 M.U.N에 들어섰다. 단테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그는 온통 검은 색의 복색에 몸은 깡말랐고, 두 뺨은 움푹 들어간 채로, 검은 색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몹시 날카로워서 마치 내 마음 속 소리까지도 다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
 
시인 단테가 일어나 새로 온 남자를 반갑게 맞았다.
 
"여~ 니콜로, 어서 오게! 이쪽이 이 타베르나(taverna, 영어의 태번 tavern 에 해당하는, 작고 소박한 주점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의 주인장일세. 그 친구가 소개해준 대로 내 작품을 대단히 좋아해서 줄줄 외울 정도더군. 주인장, 이 친구가 내가 기다리던 고향 후배요. 아마 들어봤을 거요. 그의 이름은 니콜로…."
 
나는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멍해졌다. 단테가 기다린 고향 후배가 다름 아닌 니콜로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라니! 정치철학의 영원한 고전 <군주론>
의 저자이자 르네상스를 대표했던 지식인인 그가 내 가게에 나타나다니! <신곡>만큼이나 오래 전 탐독했던 바로 그 책의 저자가 자신의 초상화에서 그대로 걸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내 앞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시뇨르 마키아벨리. 제 작은 타베르나(작은 주점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어서 이쪽으로 앉으세요."
 
나는 황급히 단테의 옆 자리로 그를 안내했다. 그는 단테와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 두 명의 위대한 르네상스인들을 경애와 존경의 마음을 가득 담아 바라보았다.

단테가 정치적 망명으로 반생을 보낸 데 비해서 유쾌하고 낭만주의적인 기질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면,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엘리트로서 전문 관료와 외교관으로 오랜 세월을 일 한 사람답게 좀처럼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마키아벨리가 내 마음을 꿰뚫어볼 듯한 눈매로 나와 주점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신곡>을 비롯해 이런저런 역사책과 철학 서적들이 꽂혀있는 서가에 눈길이 머무르자 비로소 옅은 웃음을 지었다.
 
"과연 '그 사람'이 얘기하던 대로군요. 꽤나 책을 좋아하는 주인장인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단테 선배께선 요즘 어찌 지내고 계시나요?"
"나야 자네와는 달리 고향인 피렌체에도 못 돌아가는 형편 아닌가(마키아벨리는 1527년 피렌체에서 죽음을 맞아 고향에 묻힌 반면, 단테는 망명지인 라벤나에서 숨을 거두었고, 유골도 아직 라벤나에 있다). 그냥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있네."
"고향에서 주님 품에 안겼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비록 망명 생활을 하셨지만 살아 생전 이미 <신곡>이 높은 명성을 누린 선배와는 달리, 전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미움 받았고, 귀족들과 정치가들은 제 책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덮어놓고 절 음모론자로 폄하하기 일쑤인 걸요."

 
나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이해가 갈 듯했다. 사람들은 흔히 "목적이 수단을 좌우한다"는 한 마디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정의해버리지만, 그의 정치 사상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군주론>을 제대로 읽어봤다면 그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스페인이나 프랑스 같은 당시 유럽 신흥 강대국들의 종교와 정치 분쟁에 이리저리 채이고 고통 받고 있었던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가 <군주론>을 집필할 때 그 모델로 선택했던 사람이 하필 음모의 대가였던 체사레 보르자(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정치가이자 교황군 총사령관)이다 보니 마키아벨리까지 마치 음모를 추앙하고 정당화시키는 것처럼 오해되고 있을 뿐임을 알고 있었다.
 

군주론(Il Principe)의 저자이자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초상화. 피렌체의 엘리트 관료이자 외교관이었던 마키아벨리는 스페인이 피렌체를 간접적으로 지배하면서 공직에서 추방되어 불운한 말년을 맞았다. ⓒ 산티 디 티토

 
"이런, 이런. 오랜만에 자네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잠시 술 권하는 것도 잊고 있었네그려. 주인장. 여기 니콜로에게도 와인 한 잔 따라 주시오. 니콜로, 마셔보게나. 자네나 내가 살았던 시대의 술은 아니지만 우리의 고향 토스카나의 술일세. 자네도 아는 그 끼안티 마을에서는 이제는 비노 비앙코(화이트와인)가 아니라 이런 비노 로쏘(레드와인)를 만들고 있다는구먼."
"그렇군요. 저도 피렌체 교외에 빌라를 하나 갖고 있어서 그 곳에서 적은 수량이긴 해도 비노를 빚어 마시곤 했지요. 전 그래도 비노 비앙코를 마시고 싶습니다. 비노 로쏘를 마시면 왠지 소화가 잘 안되고 배가 아파서요. 주인장, 혹시 비노 비앙코도 있소?"
"화이트 와인 말씀이시군요. 그럼요. 마침 단테 선생과도 인연이 있고 시뇨르(마키아벨리)께서도 좋아하실 만한 이탈리아의 화이트 와인이 있습니다."

 
나는 새로운 와인을 들고 와 두 대가 앞에 조심스레 한 잔씩 따라주고 내 잔에도 한 잔을 따랐다. 약간 서늘한 온도 탓인지 잔의 표면에 물방울이 맺혔다. 우리는 가볍게 건배를 하고 와인을 마셔 보았다. 맛을 본 단테가 빙그레 웃었다.
 
"이건 혹시 베로나(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베네치아 인근의 도시)의 와인 아니오? 내 짐작이 맞다면 이 와인은 아마 베로나의 소아베(Soave)일 거요."
"맞습니다. 바로 아시는군요."
"어찌 모르겠소. 이 와인의 이름인 소아베는 바로 내가 지은 것이라오."
"예, 알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어의 '소아베(soave)'는 부드럽다는 뜻인데, 단테 선생께서 피렌체를 떠나 베네토 지방에 머무실 때 이 와인을 드셔보시고 그 상큼한 맛에 반해 소아베라고 이름 지어주셨다지요."
"하하, 맞소. 니콜로, 자네 입맛에는 어떤가?"

 
마키아벨리가 신중하게 자신의 와인잔을 들어 불빛에 비춰보더니 향을 맡아 보았다.
 
"상큼한 푸른 사과향 뒤로 은은하게 배꽃의 향기가 숨어 있군요. 아카시아꽃과 같은 향기도 납니다. 투명한 색이 참 일품이군요."
 
그는 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맛을 음미했다.
 
"적당한 신맛이 은은한 단맛과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네요. 혀에 닿는 느낌은 매끄럽고 풍성하지만 아주 살짝 바닷바람에 섞여있는 것 같은 짭쪼름한 맛도 느껴집니다.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고, 기품 있지만 어렵지 않네요. 아주 멋진 와인입니다. 베로나의 와인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베네치아 사람들은 타고난 장사꾼이긴 하지만 와인 하나는 정말 잘 만들더군. 내 아들들도 베네토 지방을 참 좋아했더랬지."

 
베네치아라는 단어를 듣자 마키아벨리의 얼굴이 순간 굳어져 보였다. 묵묵히 와인 한 모금을 더 마신 그는 가볍게 한숨을 토했다. 

"베네치아, 베네치아! 선배의 말처럼 정말 장사꾼 기질이 철저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전 가끔 베네치아 공화국이 진심 부러웠습니다. 우리 피렌체가 공화국에서 메디치(Medici) 가문이 다스리는 공국이 됐다가 사보나롤라라는 떠돌이 수도승의 광신적인 정교 일치 국가로 탈바꿈했다가, 다시 스페인의 카를로스가 내세운 꼭두각시 정부에 의해 갈팡질팡하고 있는 동안에도 베네치아 사람들은 투르크와 프랑스와 스페인 같은 대국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막강한 나라였으니까요. 그것도 군주제가 아닌 진정한 공화국 체제로 말입니다.
 
비록 우리 피렌체가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고, 그래서 선배나 저 말고도 수없이 많은 천재들을 배출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해서 그 천재들을 제대로 포용해주지 못하고 다 다른 나라로 흩어지게 했습니다. 베네치아에는 그런 천재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거의 천 년 가까운 세월을 동지중해의 패권 국가로 보냈으니 그런 뛰어난 정치 체제야말로 제가 추구했던 바였지요.
 
사람들은 그저 제가 체사레 보르자 같은 음모가를 찬양한 줄로만 생각하는데, 적어도 제가 봤던 젊은 시절의 체사레는 그 이름처럼(체사레 Cesare 는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가이자 로마의 기틀을 확립한 카이사르, 즉 시저를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한 이름이다) 다시 한 번 이탈리아에 영광을 가져다 줄 인물로 보였습니다. 나중에서야 그가 지나치게 자기 도취에 빠지고 이탈리아의 통일보다는 일신과 가문의 영광에 더 집착하는 인물이라는 걸 알게 돼서 실망감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그 긴 세월을 피렌체와 라이벌로 지낸 베네치아의 정치 체제를 대놓고 찬양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옛 로마제국의 역사에 제 철학을 비춰보기로 했던 겁니다. 그렇게 쓴 책이 피렌체의 공화주의자들에게 헌정했던 <로마사 논고(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였구요. 그러니 누군가 제대로 제 사상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면 <군주론>보다는 차라리 <로마사 논고>를 읽어야 마땅할 겁니다."


<로마사 논고>라니! 난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 역시 마키아벨리의 대표 저서를 <군주론>으로만 알고 있었고, 나름 로마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책을 읽었다고 자부했지만 그의 <로마사 논고>는 아직 읽어보지 못한 터였다.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내 표정을 읽었는지, 단테가 부드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니콜로, 이 친구야. 그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자네는 여전히 너무 진지하고 너무 심각하군. 하긴 그게 자네의 장점이긴 하지만. 하하하. 주인장, 참으로 좋은 와인을 골라줬소. 주인장은 이 와인의 맛이 어떻소?"
"아까 시뇨르 마키아벨리가 너무나 완벽하게 표현해주셔서 저는 감히 뭐라 더 덧붙일 말도 없군요. 참으로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와인입니다. 다만 지금 사람들은 베네치아나 베로나라는 이름을 들으면 두 분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베로나의 화이트 와인인 소아베(Soave). 단테가 이 와인에 빠져 '부드럽다(soave)'는 뜻의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상큼하고 가볍지만 특유의 미네랄 풍미가 있어 해산물 요리나 한식과도 잘 어울린다. 소아베 뒤로 마키아벨리의 옛 저택터에서 생산되는 키안티 클라시코와 단테의 명저 '신곡(Divina Comedia)'도 보인다. ⓒ 이건수

 
"다른 이미지?"
 
두 거장이 궁금증에 몸을 앞으로 내밀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자못 자랑스러웠다.
 
"예, 대략 1595년 경에 영국의 작가인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희곡을 발표했는데, 그 이야기의 배경이 바로 베로나입니다. 베로나의 두 귀족 집안인 몬태규 가문과 캐플릿 가문은 서로 철천지 원수인데요, 몬태규 가문의 로미오라는 청년이 캐플릿 가문의 줄리엣이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집안 간의 싸움 때문에 결국은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두 사람 다 죽는 비극적인 이야기지요."
"그건 옛날부터 베로나 지방에 전해오던 전설 같은 이야기인데!"

 
단테가 외쳤다.
 
"그런데 가문 이름은 아마 작가의 창작일거요. 내가 알기로 베로나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귀족 집안은 없었거든. 하지만 우리 피렌체처럼 베로나도 교황을 지지하는 일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지지하는 일파가 있어서 늘 대립하고 싸웠던 것은 분명하오. 그러다 보면 그런 일도 분명 벌어졌을 거고. 몹쓸 놈의 정치 같으니!"
 
본인도 정쟁의 희생양이었던 위대한 시인이 분한 표정으로 거칠게 내뱉었다. 그런 단테의 모습을 보면서 마키아벨리가 빙긋 웃었다.
 
"위대한 단테 알리기에리. 마에스트로시여, 진정하십시오. 적어도 선배는 끝까지 본인의 정치적인 신념으로부터 배신당하지는 않으셨잖습니까? 저를 보세요. 전 평생 내각의 각료이자 외교가로 그저 피렌체 정부의 지시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스페인이 피렌체를 집어 삼키고 메디치 가문의 서자를 꼭두각시로 내세웠을 때 전 정부에 충성했다는 이유 때문에 공직에서 쫓겨나고 얼토당토 않은 음모에 연루됐다고 체포돼 고문까지 당했습니다. 비록 끝까지 버티자 혐의가 없다고 풀어주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더 황당한 게 뭔지 아세요? 나중에 메디치 가문이 다시 쫓겨나고 공화정부가 들어섰을 때 이번에는 제가 메디치 정부에 봉사했다고 꼬리표를 달아 범죄자 취급을 하더군요. 평생을 바쳐 제가 사랑했던 바로 그 피렌체에 충성했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그 어느 쪽에서도 친구로 대접받지 못했단 말입니다!"
 
이번에는 단테가 마키아벨리를 달래야 했다.
 
"니콜로, 니콜로여. 진정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네처럼 보이는군. 우리 정치 얘기는 그만하세. 저길 보게. 우리가 이리 심각하니 주인장이 곁에 있질 못하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영겁의 시간이 있으니 딱딱한 논의는 우리끼리 있을 때 하세. 이보시오, 주인장, 그런데 이렇게 좋은 와인에 뭔가 같이 먹을 것은 없는 거요? 파스타라도 좋으니 내오시구려."
 
나는 두 사람이 심각한 얘기에 빠져있는 동안 준비한 안주들을 내왔다.
 
"마침 이 소아베는 한국 음식에도 잘 어울릴 듯해서 몇 가지 드실 만한 걸 준비해왔습니다. 여기 이 생선은 조기라고 한국의 서해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입니다. 살짝 말린 걸 구웠는데 맛이 담백해서 드실 만할 겁니다. 이건 녹두전이라는 겁니다. 아시아쪽에서 많이 재배하는 일종의 콩을 갈아서 반죽을 만들고 고기와 다진 채소를 얹어 기름에 지진, 일종의 피자 같은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과일도 있습니다. 한국의 사과와 배는 모두 이탈리아보다 과육이 단단하고 풍미가 있는 편이니 마찬가지로 안주 삼아 드시기에 좋을 겁니다. 혹시 식사가 드시고 싶으면 한국의 흰 쌀밥과 고기국 정도는 바로 준비해드릴 수 있습니다."

"뭐든 준비되는 대로 주시구려. 음, 이 조기구이와 녹두전이라는 음식은 정말 소아베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니콜로,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전 위가 약한 편이라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음식들이 다 맛이 좋군요. 하지만 선배가 마시던 키안티에는 고기 요리가 좋을 듯한데, 주인장, 고기 요리는 없소? 우리 피렌체에서 먹던 비스테카 알 라 피오렌티나(피렌체식 티본 스테이크)가 생각나는데."
 
"있습니다. 비스테카 피오렌티나는 아니지만 질 좋은 소고기가 있으니 여기에 갖은 양념해서 절반 정도만 익히는 육적(肉炙)이라는 음식은 준비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그거로 합시다. 우리는 시간이 많으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 주시오."

"예, 그럼 와인과 녹두전부터 드시고 계십시오.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오. 자, 니콜로여. 우리의 영원한 고향 피렌체를 위해 건배하지 않겠나. 그리고 친절한 이 타베르나의 주인장을 위해서도."
"플로렌티나(Floentina, 꽃의 도시라는 뜻의 피렌체의 옛 이름. 피렌체를 가리키는 영어 지명 플로렌스는 여기에서 유래됐다)를 위해!"

 
그들과 함께 건배를 한 후, 나는 이 위대한 인물들에게 내 요리를 대접한다는 기쁨에 신이 나서 주방으로 몸을 돌렸다. 순간 '딸랑' 하는 풍경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사장님, 사장님?"
 
언뜻 고개를 들어보니 늘 가게를 찾아오던 바로 그 사내였다. 단테와 마키아벨리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었다. 혼란스러워진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테이블 위에는 아까 읽던 <신곡>과 마키아벨리의 옛 별장터인 '안티카 파토리아 마키아벨리(Antica Fattoria Machiavelli)'에서 생산하는 키안티 클라시코가 놓여 있었다. 그 사내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웃었다.
 
"사장님, 꿈 꾸셨나봐요?"
 
나는 아쉬움과 묘한 경건함에 젖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대단한 꿈이었어요. 글쎄 꿈에 단테랑 마키아벨리가 나타나서 말이죠…"
 
가게 창문 밖으로 보름달이 둥실 떠 있었다.
 
(1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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