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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4.13 10:47수정 2018.04.13 10:48
평소에 물고기를 잡는 요리사가 있다. 요리해야 할 때 수족관에 잡아둔 고기 중 필요한 것을 골라 쓴다. 요리할 필요가 없을 때 물고기 잡는 것은 취미다. 즐거움이다. 잡아둔 고기 중에 무엇을 쓸까 고르는 재미도 있다. 이에 반해 요리할 때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것은 노동이다. 고기가 잡힐까? 무슨 고기가 잡힐까? 잡힌 고기로 요리할 수 있을까? 초조하다.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다. 대다수는 요리할 때 낚싯대 들고 고기 잡으러 나간다. 평소에 다양한 고기를 잡아 저장해놓자. 물고기가 필요할 때 낚싯대를 드리우면 늦다.

대우증권에 다닐 때 모든 직원이 차를 팔아야 했다. 직급별로 1년 동안 팔아야 할 대수가 연초에 할당됐다. 나는 1, 2월에 내 목표치를 팔았다. 내 차를 바꾸고, 못 채운 것은 영업 직원에게 돈 주고 샀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캠페인을 즐겼다(?). 차를 잘 팔았다고 포상도 받았다. 다른 사람은 12월 인사고과 철이 되어서야 차를 바꾸고 돈 주고 실적을 샀다. 대당 가격이 연초에 비해 몇 배 뛰었다. 1년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몇 배 많은 돈을 지불했다. 다음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 혼자 살겠다고 동료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 나를 본받으라고 상사들이 그랬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써야 할 때 쓰는 사람과 평소 써두는 사람이다. 쓰기 전에 쓸거리가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다. 가진 것 중에 무엇을 쓸까 즐긴다. 흥분하기까지 한다. 이에 반해 써야 할 때 찾기 시작하는 사람은 초조하다. 평소 잘 나던 생각도 나지 않는다. 가슴만 두근거리고 썼다 지웠다만 반복한다.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고, 흥분이 아니라 패닉이다. 당연히 결과도 좋지 않다.

평소에 쓴다는 것은 단지 글을 조금씩 쓴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생성, 채집, 축적해두라는 뜻이다. 써놓은 글을 평소에 조금씩 고치는 것도 포함한다. 나아가 평소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의 흐름 안에서 살라는 의미다.

어차피 써야 할 글이다. 미리 써두면 여러모로 좋다. 써둔 글에 이자도 붙는다. 써둔 글이 늘어나면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이 부딪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써둔 글이 있으면 쓰고 싶다. 갖고 있는 것을 써먹고 싶어진다. 누구나 평생 잡아야 할 물고기의 양이 있다. 누구는 평소에 잡고 누구는 잡아야 할 때 잡는 차이가 있을 뿐, 결국은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평소에 잡는 게 옳지 않겠는가. 

요즘 나는 평소에 글을 쓴다. 그래서 글 쓸 일이 있으면 들뜬다.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갈 때 흥이 난다. 나가기 위해 머리 감을 때부터 머릿속에 쓸거리가 맴돈다. 이것을 쓸까 저것을 쓸까 고르는 재미가 있다. 블로그와 홈페이지에도 이미 2000개 가까운 글을 써뒀다. 나에겐 수족관이다. 검색도 가능하다. 써야 할 글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그곳에 물고기가 있다. 실마리가 있으면 글쓰기는 쉽다. 그 한 줄이 없어 글쓰기가 힘들다.

나는 블로그와 홈페이지에 글을 쓰기 위해 세 가지를 한다. 우선, 내가 써야 할 글의 키워드가 제목에 들어 있는 칼럼을 한두 편 읽는다. 그래도 생각이 안 나면 동영상 강의를 한두 편 듣는다. 그렇게 해도 생각이 안 나면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서 제목에 키워드가 들어간 책의 목차를 몇 개 본다. 그래도 생각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게 칼럼과 동영상 강의와 책의 목차는 물고기를 잡는 도구다. 고기가 잘 잡히는 장소에 가서 낚싯대를 드리우면 더 효과적이다. 나는 산책을 하면서 동영상 강의를 듣는다. 카페에 가서 책의 목차를 보고, 지하철에서 칼럼을 읽는다. 그러면 백발백중이다.

평소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방법이 있다. 먼저, 나의 글쓰기 주제를 정한다. 그러면 내가 보고 듣고 읽고 느끼는 거의 모든 것이 나의 글쓰기 주제와 연결된다. 매일 호기심이 발동한다. 떠오르는 생각이 없으면 매일 하나씩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한다. '누군가 내게 무엇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하지?' 의도적으로 묻고 답해본다. 그럼으로써 그것에 관한 내 생각을 정리한다.

하루에 한 가지 생각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길어봐야 10분 이내다. 어떤 생각 정리는 1분도 필요하지 않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혹은 산책하면서 생각하면 된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이다.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다. 네 가지가 필요하다. 독서, 토론, 학습, 메모다. 이것이 자기 생각을 만들어내는 도구다.

의문 갖고 까칠하게 또 삐딱하게 들어야

첫째, 독서다. 책을 한 권 읽었는데 자기 생각이 새롭게 만들어진 게 없으면 헛일이다. 남의 생각을 알려고 하는 독서는 부질없는 일이다. 남의 생각을 알고 싶으면 검색해보라. 요즘 같은 세상에 뭐 하러 시간 내고 돈 들여서 남의 것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나. 독서하는 이유는 자기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다. 책을 읽다 보면 내 생각이 정리된다. 남의 생각을 빌려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게 독서다.

나는 책을 읽기 전, 목차를 보고 저자의 생각을 가늠해본다. 그리고 그런 내용에 관해 내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런 다음 책을 읽는다. 한 꼭지씩 읽은 후에 또 생각해본다. 저자가 거기서 밝힌 생각이 뭔가. 그것을 읽으면서 내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나. 새롭게 만들어진 생각은 무엇인가. 만들어진 게 없으면 시간 들인 게 분해서라고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찾아본다.

둘째, 토론 역시 생각을 만드는 필수 도구다. ​정색하고 하는 토론 말고 회의, 토의, 대화, 잡담, 수다 등 말하고 듣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말을 하면 생각이 정리된다.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생각이 일목요연해진다. 또한 생각이 발전한다. 없던 생각도 만들어진다. 언제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샘솟는다.​ 말하기 전에는 자기 생각이 아니다. 말을 해야 분명한 자기 생각이다. 말하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아는 것은, 중·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 설명은 알아들었는데 나와서 풀어보라고 하면 못 푸는 것과 같다. 나가서 풀 수 있어야, 즉 말할 수 있어야 진짜 아는 것이고, 진정한 자기 생각이다.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말해야 한다. 들으면서도 생각이 난다. 남의 얘기를 듣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서 상대 말을 가로막고 자기 생각을 말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의 말을 들으면 생각이 난다. 그러므로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물고기가 잡힌다. 어찌 보면 말하는 것은 내 물고기를 나눠주는 행위이고, 듣는 것은 남의 물고기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셋째, 학습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마는 ​배우는 것만이 학습은 아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학습이다. 호기심과 문제의식만 있으면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다. 개그콘서트에서도 배우고 드라마에서도 배운다. 반대로, 정식 수업을 들어도 주입식으로 들으면 자기 생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린 백(Lean back)이 아니라 린 포워드(Lean forward) 자세여야 한다. '과연 저 사람 말이 맞을까' 의문을 갖고 까칠하게 또 삐딱하게 들어야 한다. '내가 당신이라면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거야'라고 대들면서 들어야 한다. 내준 문제를 풀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생각이 만들어지고 진정한 학습이 이뤄진다.

우리는 문제분석은 잘하는데 문제제기와 문제해결 능력은 약하다. 주어진 문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역량은 읽기와 듣기를 많이 하면 키워진다. 그러나 문제제기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고, 문제해결 능력은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는 말하기와 쓰기를 통해 길러진다. 문제제기와 문제해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호기심과 공감능력에서 비롯된다.

끝으로, 메모다. ​독서, 토론, 학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메모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메모하지 않은 것은 모두 잊힌다. 메모는 그 자체가 글쓰기이고 생각하는 과정이다. 메모하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메모해둔 것은 훌륭한 글감이 된다. 무엇보다 메모를 해야 하는 이유는 메모를 해야 뇌가 자꾸 새로운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뇌는 가급적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을 받아 써주는 메모는 뇌를 격려해주는 것이다.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일이다.

뇌가 무언가를 생각해냈는데 그냥 흘려보내면 그다음부터는 뇌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봤자 주인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난 것을 열심히 메모하면 뇌가 신이 나서 생각을 자꾸 길어 올린다. 주인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시도 때도 없이 생각을 해낸다. 메모는 완전한 게 아니다. 생각의 조각을 키워드 중심으로 써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를 더욱 돕는다. 과거에 한 생각을 낯설게 봄으로써 객관적으로 재평가해볼 수 있고, 당시 설익은 감정을 정화해서 표현하게 된다. 이런 보완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메모가 생각을 숙성시킨다. 메모의 가장 큰 효용은 글을 쓰게 한다는 점이다. 메모를 한다는 것은 언젠가 이것을 써먹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실제 글쓰기에 써먹어야 한다. 그래야 메모한 이유를 뇌가 분명히 알게 되고 메모하려고 한다. 나는 글감이 생각나지 않을 때 메모해둔 것을 본다. 지금까지 메모해둔 것은 거의 글로 써먹었다.

써야할 때 쓰는 게 글쓰기 아니다


다시, 글 쓰는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쓸거리는 있는데 그것을 잘 표현하지 못해 글쓰기가 어렵다는 사람과, 아예 쓸거리가 없는 사람이다. 전자는 훈련과 연습으로 짧은 시간 안에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후자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방법은 평소 고기를 잡는 것이다. 쓸거리가 있어 이것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쓰는 것이, 필요한 글의 수요에 맞춰 당겨내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고 쉽다. 나는 평소에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밀어서 내놓는다. 기고 요청이 오면 그 내용 중에 골라서 당긴다. 일종의 밀고 당기는 '밀당' 글쓰기다.

강의에 가면 글쓰기에 관한 잘못된 생각에 관해 얘기한다. ▲글은 재능으로 쓰지 않는다. 땀과 노력으로 쓴다. ▲글쓰기는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통 사람, 힘없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무기다. ▲글은 알아서 쓰는 게 아니다. 쓰면서 아는 것이다. ▲글은 첫 줄부터 쓸 필요 없다. 아무 데서나 시작해도 된다. ▲글쓰기는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경우에 따라 함께 쓰면 더 잘 쓸 수 있다. ▲글은 머리로 쓴다. 글은 가슴과 발로 기획하고 엉덩이로 마무리한다. ▲글쓰기는 창조적 행위다. 어딘가에 있던 것의 재현이고 모방이다. 그리고 끝으로 꼭 하는 말이 있다. 써야할 때 쓰는 게 글쓰기가 아니다. 평소에 써뒀다 써야할 때 써먹는 게 더 나은 글쓰기다.

꽤 오래전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언젠가 극본을 쓰기로 아내와 작당했다. 역할 분담도 했다. 나는 전체 플롯을 짜고, 아내는 대사를 쓰는 것이다. 평생 드라마를 봐왔으니 못 쓸 것도 없다. 살아오면서 TV 시청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극본 쓸 생각을 하면 설렌다. 쓰고 싶은 글이기 때문이다. 쓰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없고, 써야 할 글도 아니기 때문이다.

글 잘 쓰는 방법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평소 쓰고 싶은 글을 쓴다. 그러면서 글쓰기 근육을 키운다. 그리고 써야할 글이 있을 때 단련된 근육을 쓴다. 나무에 빗대 얘기하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은 뿌리를 내리는 일이고,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것은 꽃과 열매를 맺는 것이다.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 먼저 뿌리를 굳건히 내리자.
덧붙이는 글 필자 강원국은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출간한 이후 글쓰기 관련 강연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3월 26일부터 매주 월·수·금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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