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8.06.29 07:49수정 2018.06.29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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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4대강'에 죽어가는 금강을 기록한 금강요정, 김종술 기자 ⓒ 정대희


그는 신대륙을 발견한 듯이 기뻐했다. 금강 세종보 수문을 연 뒤 생긴 모래톱 위에서였다. 투명카약에서 내려 강물이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곳에 서니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금빛이었다. 두 손으로 물속 모래를 퍼 올렸더니 손가락 사이로 물과 함께 흘러 내렸다.  

"어, 여기 붉은 깔따구가 일광욕 나왔네."

두 손에 남은 모래 속에서 붉은 깔따구가 꿈틀댔다. 시궁창 펄에서 사는 최악 수질 4급수 지표종이다. 강물을 가둔 뒤 강바닥에 쌓인 펄을 점령했던 생명체였다. 이게 모래 속에서 나온 건 '산 강'이 '죽은 강'을 뒤집고 있다는 뜻이다. 강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교란의 징표였다. 

그는 붉은 깔따구를 한 번 더 찾으려고 모래를 파서 들어 올렸다. 뜻밖이었다. 이번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이게 진짜여. 재첩이 돌아왔다! 이게 금강의 희망이여!"

그가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 김종술 시민기자. 그는 1년 320여일을 금강으로 출근하면서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의 처참한 모습을 고발해왔다. 물고기 떼죽음, 공산성 붕괴, 큰빗이끼벌레 창궐,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 등 굵직한 특종보도를 해왔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살아있는 강을 보며 감격했다.

[산 강] 강의 허파, 모래톱이 돌아왔다

콘크리트 장벽이 누웠다.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모래톱이 나타났다. ⓒ 김종술


"와, 물살이 겁나게 세네요."

김 기자는 어렵사리 노를 저어 4대강 독립군을 한 명씩 하중도(하천 가운데 생긴 퇴적지형) 모래톱으로 실어 날랐다.

지난 21일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7박8일간의 4대강 탐사취재를 시작했다. 오전 10시경 투명카약을 타고 세종보 하류 하중도에 들어갔다. 사람 발자국은 없었다. 세종보 수문을 개방한 뒤 드러난 모래톱에 사람 흔적을 새긴 건 이날 4대강 독립군이 처음인 듯했다. 

2017년 6월, 이곳 하류에 있는 공주보 수문을 상시 개방했다. 수문 높이인 7m의 수위가 내려가자 강바닥을 채운 펄이 드러났다. 7개월 뒤인 11월부터 500여m 상류의 세종보 수문(전도식 가동보)을 완전히 눕혔다. 강물은 수문에 갇힌 시커먼 펄을 토해냈다. 상류의 모래와 자갈을 실어 날랐다. 

이곳에 와 보니 4대강 사업 때 수심 6m를 유지하려고 강의 모래와 자갈을 파낸 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강바닥 펄을 밀어내고 모래가 돌아왔다. 펄에서 나는 시궁창 냄새를 몰아내고 상쾌한 강바람이 불었다. 수문이 열리자 대자연은 자기 상처를 빠르게 치유했다. 금강은 4대강 사업 이전으로 회군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모래는 강물을 정화하는 허파예요. 그게 돌아왔다는 건 4대강 사업으로 썩은 강이 스스로 정화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죠."

4대강 독립군인 이철재 시민기자(에코 큐레이터)가 물속을 걸으며 말했다. 물은 모래 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면서 깨끗한 물로 거듭난다. 모래는 물고기 산란장이기도 하다. 수문개방 이전의 펄은 '불임의 공간'이지만 모래는 '잉태의 공간'이다. 그곳에 손톱만한 새끼 재첩이 희망의 전령처럼 박혀 있다. 물 가장자리에는 치어들이 떼 지어 놀았다. 

침묵의 강에 소리도 돌아왔다. 보에 가로막혀 흐름이 멈췄던 강은 세차게 흐르면서 물소리를 냈다. 그 흐름은 물고기 비늘과 같은 물결무늬 지문을 모래톱과 물속 모래 위에 새겼다. 모래는 흐르는 물과 함께 하류 쪽으로 흐르고 있다. 곳곳에 여울도 생겼다. 강물은 모래와 자갈 위를 자맥질하듯이 뒹굴면서 물속에 산소를 공급했다.

[죽은 강] 강의 귀환을 알리는 징후들

멈췄던 금강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금강요정의 얼굴에도 웃음이 돌아왔다. ⓒ 정대희


이곳은 세종보와 공주보 수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죽은 강'이었다. 2013년부터 매년 4대강 독립군이 찾았던 이곳에는 녹조가 창궐했다. 가만히 있어도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강바닥을 파면 시커먼 펄이 나왔고,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창궐했다. 하지만 수문을 연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이곳은 죽은 강과 산 강이 공존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펄 속에서 재첩의 사체가 나왔다. 지금은 반대였다. 펄 속에서 살았던 주먹만 한 펄조개가 입에 모래를 잔뜩 머금은 채 모래톱 곳곳에 죽어 있다. 강의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는 뜻이다. 깨끗한 모래 속을 손으로 30cm 정도 파내려갔더니 펄층이 나왔다. 손을 코로 가까이 댔더니 역한 냄새가 풍겼다.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4대강 독립군은 하중도 반대편 모래톱으로 이동했다. 어른 키 두어 배 쯤 자란 갈대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끝이 가늘고 털이 섞인 것을 보니 멸종위기종인 삵의 똥이다. 배변한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다섯 개 발톱자국이 선명한 것을 보니 수달 발자국이다. 고라니 똥과 새똥도 즐비했다.

모래톱에 도착하니 반대쪽보다는 물살이 거세지 않았다. 모래 위 자갈은 회칠을 한 것처럼 펄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했다. 바깥으로 드러난 모래에 말라붙은 펄이 종잇조각처럼 말려 있다. 물속 모래에도 시멘트 가루를 살짝 뿌려놓은 것처럼 펄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본 죽은 강의 흔적은 산 강의 귀환을 알리는 희망의 증거였다. 

[세종보 위에 서서] "흉물 보, 하루빨리 해체해야" 

금강의 세종보가 누웠다. 4대강 독립군은 여기에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 햇볕에 달궈진 세종보에 엉덩이가 뜨거웠다. 발가락 사이로 흐르는 강물과 모래가 몸을 식혀줬다. ⓒ 김종술


4대강 독립군은 하중도에서 나와 세종보로 갔다. 4m 높이의 보는 완전하게 누웠다. 4대강 사업 때 만든 16개 보 중 유일한 전도식 가동보이다. 수문을 위아래로 여닫는 게 아니라 유압식 실린더로 누웠다 세우는 방식이다. 세종 지구를 포함해 2177억 원의 공사비로 만든 세종보는 최첨단 보로 홍보했지만 고장이 잦았다.

"세종보는 매년 4번씩 개방을 했어요. 유압 실린더 관을 청소해야만 보가 작동했기 때문이죠. 최첨단 보라고 자랑했지만 보를 조작하는 유압실린더의 고장이 잦아서 '고철 보'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겨울에도 잠수부가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가 수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김종술 기자는 세종보 철제 가동보 위에 걸터앉아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수문이 개방된 뒤에 이틀에 한 번 꼴로 이곳 생태환경 변화를 취재하면서 혼자 길이 347m나 되는 '세종보 밟기' 행사를 한단다. 4대강 독립군은 금강을 가로지른 거대한 콘크리트와 철재 구조물을 밟으며 식생 상태를 조사했다. 

"저기 쌓인 모래와 자갈밭에 풀이 들어왔어요. 수문을 연 뒤 상류에서 모래와 자갈이 유입되고 있지만, 시궁창 펄들이 뒤섞여 있어서 그런거죠. 저게 다 강물에 씻기고 나면 예전처럼 깨끗한 모래톱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여울 낚시를 하던 어른들이 가족들과 함께 수박을 쪼개먹는 모습을 볼 수 있겠죠.

여기 대평리 모래는 기왓장을 찍을 정도로 질이 좋았어죠. 공주 곰나루 모래는 건물 미장을 할 때에 사용할 정도로 고왔죠. 언제쯤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김종술 기자는 "세종보에 가뒀던 물은 호수공원에 펌핑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는데, 수문이 열린 뒤에도 물을 펌핑하는 데 지장이 없다"면서 "금강을 죽인 이 구조물은 하루 빨리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물치 한 마리가 세종보 구조물에 걸려 머리와 뼈만 남은 채 죽어 있다. 바깥으로 드러난 사석보호공(보의 유실을 방지하려고 쌓아놓은 바위돌) 속에 갇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준치도 보였다. 김종술 기자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흉물을 빨리 걷어내야지."

[또 다른 희망의 근거] 새알 네 개의 정체

금강의 모래톱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자갈틈에 숨어 있던 둥근 물체였다. 물떼새 알이었다. 다시 흐르는 금강에 새 생명이 태어날 예정이다. ⓒ 정대희


4대강 독립군은 세종보 위쪽에 드러난 모래와 자갈밭으로 갔다. 전날 김 기자가 30여 명의 수녀들과 동행하면서 발견한 새알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날에는 어미 새를 보지 못했다. 인기척을 느끼고 새알을 놔둔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날 김 기자는 "꼬마물떼새 알보다 약간 큰 게 흰목물떼새 알인 것 같다"면서 긴가민가했다.

다음 날에는 둥지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멀리서 인기척을 죽이고 관찰했다.

"아, 저기 흰목물떼새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말했다. 카메라 렌즈로 새알 주변을 관찰하던 그는 알을 품던 어미 새가 둥지에서부터 20여m 떨어진 물가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세종보 수문이 닫힌 뒤에 이곳에서 서식할 수 없던 멸종위기종이다. 4개의 흰목물떼새 알은 자갈처럼 위장한 둥지에 그대로 있었다.

둥지 옆으로 차가운 물살은 거세게 흘렀다. 그 물살은 자갈과 모래 속에 박혀있던 시궁창 펄을 씻어내면서 흘렀다. 금강에 세운 3개 보 중 백제보는 그대로 둔 채 2개 보의 수문을 개방했을 뿐이다. 흐르는 강은 4대강 사업으로 생긴 죽음의 그림자를 거둬내고 있었다. 힘차게 흐르면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한 장면] "손톱만한 재첩, 가슴이 두근거린다"


4대강 독립군은 탐사보도 첫날 저녁 공주 한옥마을에서 '수문개방 이후, 금강의 미래'라는 주제로 금강 포럼을 개최했다. 정민걸 공주대 교수, 김영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종술 기자에게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손톱만한 재첩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금강에서는 죽은 사체만 봤죠. 1급수에서 사는 재첩도 사체만 봤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입니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서 치어를 본 적이 없었는데, 녀석들도 오늘 처음 봤어요.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이게 진짜 희망입니다. 금강의 미래입니다. 금강에 마지막 남은 백제보 수문도 열어야 합니다." 

낙동강 지킴이로 활동하는 정수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제 낙동강 현장을 다녀왔는데 녹조가 피지는 않았더라고요. 그런데 살아나고 있는 금강을 취재하기 시작한 오늘부터 낙동강에 녹조가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금강의 산 강에서 낙동강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죠. 낙동강의 수문은 모두 닫혀 있는데, 수문개방 효과를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던 취재였습니다."

MB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허구였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녹조가 창궐했다. 강바닥 시궁창 펄은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점령했다. 수문을 열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이명박근혜 정권'은 끝내 열지 않았다. 수문 2개만 열었는데, 금강에 재첩이 돌아왔다. 

수문 개방이 복원의 시작이라면 4대강을 망친 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건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세금 22조 원을 날렸지만 처벌된 자는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 있지만 4대강 죗값은 혐의 내용에서 빠졌다. 이제부터 혈세를 낭비하고 민주주의도 파괴한 4대강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금강으로 귀환하는 모래처럼, 이게 희망을 만드는 일이다.

지난 10년간 'MB 4대강'을 고발하고, 지금도 강의 회복을 위해 현장을 지키고 있는 4대강 독립군들을 응원해주기 바란다. 



4대강 현장탐사-영화 만들기에 후원을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6월21일부터 27일까지 금강과 낙동강을 탐사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수문을 연 '산 강'과 아직도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은 '죽은 강'을 비교하면서 4대강 사업의 대안을 제시합니다. 

오마이뉴스는 4대강 사업을 소재로 한 최초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4대강 다큐 영화는 불법 비자금을 집중 추적합니다. 부역자들이 받은 '떡고물'을 전격 공개합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운 4대강 독립군의 눈물겨운 투쟁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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