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2 10:30최종 업데이트 19.03.12 11:30
김영준님은 <골목의 전쟁> 저자로 2007년부터 '김바비'라는 필명으로 경제 관련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금은 귀금속의 왕이다. 모든 사람들이 금을 좋아하며 종이화폐가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이전까지는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화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금은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것일까?

금은 매우 안정적이어서 부식되지 않고 가공하기 쉽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어왔다. 또한 황금색이라 부르는 그 특유의 아름다운 색 때문에 태양을 상징하는 금속으로도 활용되었고 화려함과 위엄을 돋보이게 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그러나 금을 정말로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위에 언급한 특성이 아닌 희소성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채굴한 금의 양은 약 16~17만 톤 정도로 추정된다. 2017년에 포스코에서 생산한 철강 생산량이 약 4219만 톤이다. 인류의 역사 전체에서 생산한 금이 철강 업계도 아니고 포스코라는 한 회사가 한 해 동안 생산한 철의 양의 0.4%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사람들이 금을 떠받들었던 것도 그 희소성에 있다. 금은 희귀한 금속이자 돌덩이였기에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가 자신의 위상과 위치를 돋보이게 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모든 문화권에서 금이 고귀한 금속이 되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만일 금이 모래처럼 흔해 빠졌다면 금의 색깔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고대의 정치,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의 고귀한 위치를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활용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보다 미천한 보통 사람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기에 적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이라는 빛나는 돌덩이를 사람들이 모두 갖고 싶어하게 만든 핵심은 그 활용도가 아니라 희소성에 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인류가 생산한 다른 모든 상품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얼마나 필요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희소하냐에 따라 사람들은 그것에 가치를 부여했다. 희귀한 것을 소유할수록 자신을 타인과 차별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비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가 가치 있게 평가하는 것들의 본질은 희소성에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높은 가치를 매기는 상품들을 떠올려보자. 각자 그 가치를 지지할 이유들을 줄줄이 늘어놓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상품이 바닥에 굴러다닐 정도로 흔하다면 우리가 그 가치의 본질이라고 믿는 특성은 보잘것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금과 같은 귀금속, 명품과 같은 사치재가 아니라 일반적인 소비품들로 바꾸어 보아도 이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 우리는 공장제 제품을 가장 선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생산기술과 환경 등이 모두 진일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장제와 대량생산품에 대한 신뢰는 과거만 못하다. 오히려 늘 의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여기에 역설이 존재한다. 공장제와 대량생산이 가장 신뢰받던 시기는 이 공장제와 대량생산품이 막 보급되던 시기였고 이것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낮은 지금은 역사적으로 그 어느때 보다도 대량생산과 공장제가 일반화된 시기다. 이는 수제에 대한 선호의 상승이 공장제, 대량생산의 일반화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이를 사람들은 취향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모두가 똑같이 소비하는 것을 소비하는 것으로는 자신을 일반 집단과 차별하기가 어렵다. 모두가 똑같이 소비하는 것은 그만큼 흔한 상품이고 저렴한 상품이다. 희소성이 높은 상품들이 차별화를 위한 상품으로 선택되는 이유도 이것에 기인한다.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어야 한다. 가격이거나 선착순이거나 무엇이 되었든 소유나 소비가 제한되어야 한다. 만일 제한할 수 없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경우라면 그 수요가 늘어날 때, 해당 상품의 소비를 포기한다.

우리가 '힙스터'라 부르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 부분에 예민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정도와 분야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 힙스터의 기질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나만 알던 음식점, 나만 알던 가수가 남들에게 유명해질 때 아쉬움을 느끼거나 변했다고 이야기하면서 떠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님을 생각해보라.
 

힙스터들 사이에서 인기있던 밴드가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혁오' ⓒ 두루두루amc

 

차별화와 희소성의 추구는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본성은 경제발전의 원동력 중 하나로 작용해왔다. 희소한 상품, 희소한 문화를 추구함으로 스스로를 차별화하려는 사람들 덕분에 생산자들은 각자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이 차별화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상품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본질이 '차별화'이다보니 일반화된 상품과 서비스, 문화, 행태 등을 과소평가하거나 폄훼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불신에 빠지기도 한다. 희소성과 경합성으로 인해 상품이 고평가받는 것처럼, 흔하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으로 저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근거도 없이 혹은 부실한 근거나 망상을 기준으로 일반화된 상품 등을 폄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희소하여 가치 있는 것과 필요하여 가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철을 생각해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너무 흔한 나머지 금에 비해 사람들에게 높은 가치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산업과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흔한 철이지 않은가.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문화 등을 돌아보자.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은 모두 일정 이상의 희소성을 가진 것들이긴 하지만 흔하다고 무시할 순 없다. 어떤 상품과 서비스가 흔하다면 그것은 그만큼 필요했기에 흔해질때 까지 공급한 것들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