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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3.21 10:40 수정 2019.03.21 10:40

프랑스의 기후 변화 대응 촉구 시위지난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학생들의 지구온난화 대응 촉구 시위 ⓒ 연합뉴스/AP


"엄마, 교장선생님이 우리가 파업하는 걸 허락해줬어."

무릇 파업이란 것이 누구의 허락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건만, 14살 중학생 딸의 생애 첫 파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3월 15일, 아이는 그렇게 지구의 100여 개 나라에서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를 위해 당장 결단하라고 외치며 수업을 빠진 아이들 중 하나가 됐다.  

길 맞은편 고등학교는 전체학생회의를 열어 파업을 공식 결의하고 책걸상으로 철저히 교문을 봉쇄했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뜨거운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교장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교장은 희망하는 모든 아이들은 금요일 오후에 수업을 듣지 않고 지구를 위한 행진에 동참해도 좋다고 동의했다.

단지 이 학교 교장이 너그러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인 아이들이 파리에서만 4만 명이었고, 프랑스 전역 200개 도시에서 같은 집회가 열렸다.

15살 스웨덴 소녀가 쏘아올린 공

지난해 8월, 15세의 스웨덴 소녀 그레타 턴버그가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려는 어른들을 꾸짖으며 스웨덴 국회 앞에서 매주 금요일 1인 시위를 시작한 지 7개월. 그레타의 결단이 지구촌 아이들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행동으로 이어지게 했다. 벨기에, 네덜란드에 이어 프랑스에도 그 증폭된 박동이 지난달 처음으로 상륙했다. 고교생, 대학생들 중심이었던 2월 첫 파업에 이어 3월 파업에는 중학생들이 합류해 전선을 더욱 확장시켰다.

그들의 심장이 어른들보다 더 가까이 지구에 닿아있어서일까. 앓고 있는 지구의 아픔을 더 또렷이 체감하던 아이들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기다리다간, 그들에게 미래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미래가 오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없죠."
"어른들이 어른들의 숙제를 하면, 저도 저의 숙제를 하겠어요."
"자본주의 시스템이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한, 지구를 구할 순 없을 거에요."
"지구가 은행이었다면, 그들은 진작 구했겠죠."
"기후변화를 방치하는 건, 반인류 범죄에요."
"돈으로 두 번째 지구를 살 수는 없다."


저마다 골판지에 구호를 적어놓고, 목청이 터져라 외친 아이들은 자신의 가슴에도 서로의 구호를 깊이 새겨 넣었다. 이날 아이는 4시간을 걷고 돌아왔다. 지쳐 쓰러져있는 아이를 위해 지구본 조명을 켜주려고 하자 아이가 실눈을 뜨며 말했다. 

"엄마, 지구본 불 꺼. 지구한테 안 좋은 일이야~"

적록동맹으로 하나된 어른들
 

지난 16일 노란조끼 시위대가 개선문 앞에서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EPA


그 다음 날인 16일에는 29개 단체가 함께 제안한 어른들의 기후변화 행진이 펼쳐졌다. 옥스팜, 그린피스같은 환경단체뿐 아니라, 아탁(ATTAC·조세정의시민단체), 프랑스노동총연명(CGT)까지 가세하여 기후변화에 저항하는 생태주의 싸움과 사회적 투쟁에 어깨를 걸고 나란히 걸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35만 명이 참가했다. 이날의 공식 타이틀은 "기후와 사회정의를 위한 행진"이었다. 

같은 날 샹젤리제에서는 오랜만에 다시 격렬해진 노란조끼 시위가 18번째로 열렸다. 에콜로지와 노란조끼는 경쟁하는 대신 끌어안기를 택했다. 오후 3시, 그들은 경찰의 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노란조끼들을 위해 무릎을 꿇으며 그들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행진 대열엔 노란조끼를 걸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노란조끼들과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의 적은 같으며, 그 싸움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도 같다. 생명과 존엄을 훼손하며 개발하고 생산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들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살고자 한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지구를 위해 행동하기로 한 15~16일은 한 환경소비자 단체가 제안한 '대형 슈퍼마켓 안 가기 운동'이 이틀째 벌어지는 날이기도 했다. 소비자와 상품을 연결하는 대형유통업체들이 벌여온 횡포에 대항해 시민들이 단결된 힘을 과시하며, 시대의 흐름을 따르라 경고하는 행동의 날이었다. 이날 공화국 광장은 늦은 밤까지 온기를 나눠가진 사람들의 기쁨이 넘실 거리는 축제였다.    

핵심 이슈로 자리잡은 생태-사회 정의 투쟁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사회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자각은 지극히 일부 사람들의 것이었다. 프랑스 녹색당의 희미한 존재감이 반영하듯 환경문제는 사회적 이슈의 주류를 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땅 밑에 잠자고 있던 의식들이 일제히 깨어나기라도 한 듯 환경 이슈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치 지렛대가 하늘에서 내려와 깨어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 지렛대를 들어 올린 것처럼 말이다. 사회문제와 포옹한 환경문제는 자본주의의 모든 해악들이 결국 지구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되면서 핵심 이슈로 자리 잡는다.

조짐은 이미 나타났었다. 정부의 위선을 고발하며 대통령 마크롱과 싸늘하게 결별한 이 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 니콜라 윌로가 지난 5일 우파성향의 노조연합 'CFDT'와 환경을 위한 66가지 협약을 들고 재등장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이다. 미디어가 사랑하는 장관 출신의 스타 환경운동가와 우파 노총이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문제를 결합시키는 거대한 과제를 위해 손잡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달라진 사회적 온도를 실감케 했다. 

그들이 제시한 협약은 대부분의 노동운동 단체들과 환경단체들의 환영을 받았다. 

▲ 환경오염 기업에 대한 추가과세 ▲ 대중교통 비용 인하 ▲ 가정의 재생에너지전환 지원 확대 ▲ 공장식 농업에서 유기농식 농업으로의 전면 전환 ▲ 화석연료 생산에 대한 국가와 기업, 은행의 투자 종료 등 조세정의와 환경정의를 연결하는 꼼꼼한 정책적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정치권과 정부를 향해 구체적 결단을 촉구했다.

경제학자 삐에르 라루튀루(Pierre Larrouturou)는 유럽연합이 유럽의 은행들을 지탱하기 위해 매달 쏟아 붓는 800억 유로(약 102조5천억 원)의 절반만 에너지 전환에 사용해도 지금의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를 단시일 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중교통 시설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대중교통 요금을 낮추고, 지열, 태양열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고, 단열이 안 된 주택들의 단열공사를 전면 지원하며, 녹지를 확대하고, 유기농산물 지원하고, 농약 사용을 억제하며, 지구가 더 이상 파괴되지 않고, 기후가 더 이상 상승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이미 나와 있으며,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이미 충분히 있다. 다만 필요한 건 결단일 뿐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15세 스웨덴 소녀의 주장도, 이틀 동안 지구 위를 걸었던 아이들과 어른들의 주장도, 바로 이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단 한사람
 

유대인 단체 대표 회의(CRIF) 연례 만찬 참석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EPA


프랑스에선 2018년 한 해 동안, 유기농업으로 전환한 농가가 62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 "역사적인 수치"로 기록되기도 했다. 유기농으로 전환한 농민들은 농약과 GMO사료, 항생제에 의존한 지금의 공장식 농업·축산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이다. 시장에서의 급속한 변화가 그들에게 이런 판단을 가능케 했다고 그들은 답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암물질로 결정한 몬산토의 살충제 글리포세이트가 인간과 땅에 가한 피해가 밝혀지면서, 더 많은 소비자들이 급속히 유기농식으로 옮겨갈 것임을 시장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부가 유기농가에 약속한 지원금을 2년째 받지 못해 정부를 제소한 유기농 농가들의 집단 소송 소식도 들려온다. 

시민들 사이에서 퍼져가는 급격한 인식의 전환과 빠르게 변모해가는 시장 속에서 유독 한사람만 이를 외면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몬산토의 발암성 살충제 글리포세이트를 2020년까지 퇴출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했다. 그런데 정작 지난해 집권당이 퇴출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자 마크롱은 '현실적 상황'을 이야기하며 거부 사인을 보냈다. 결국, 법안을 대표 발의한 집권 정당 의원들조차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는 촌극이 빚어졌고, 글리포세이트는 여전히 프랑스 땅에 뿌려지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한 시민단체 3개가 급기야 마크롱 정부를 제소했고, 2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 제소를 지지하는 성명에 서명했다. 지난 20일에 발표된 여론 조사는 프랑스 국민 86%가 "정치·사회·경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글리포세이트보다 마크롱이 먼저 퇴출되어야 하는 상황에 이른 듯하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라는 외침이 프랑스 전역에 울려 퍼진 지난 주말, 마크롱은 한가롭게 스키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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