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02 14:32최종 업데이트 19.07.02 14:43
떡집 주인들은 빵집 주인들을 부러워한다. 같은 분량의 재료로 만들어도 빵은 부풀어오르는데, 떡은 납작하게 졸아든다. 부풀어올라야 값도 더 붙일 수 있는데, 분량이 줄어드니 큰 이문을 못본다고 푸념한다. 같은 크기의 식빵과 백설기를 비교하면 떡집 주인의 고충을 이해할 만하다.
 

방울만 하게 또는 큰 틀에 넣어 기정떡을 만들다. ⓒ 막걸리학교

 
그렇지만 떡에도 부풀어오르는 것이 있다. 기정떡, 기주떡, 기지떡, 증편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술떡이다. 부드럽고 폭신하고 말캉한, 한 입 베어물면 기포가 들어있어 가벼우면서 발효향 짙은 여름떡이다. 흰쌀의 색을 그대로 띠고 있어, 검은 깨나 대추나 석이버섯 따위로 고명을 올려 모양을 낼 수도 있다.

어른들에게 더 인기가 있고, 잘 쉬지 않아서 택배로 전국에 유통되는 대표적인 떡이다. 순흥 소수서원 마을의 순흥 기지떡, 전라도의 화순 기정떡과 광양 기정떡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전국 유통을 하는 소문난 떡들이다.


내게는 늘 익고 있는 막걸리가 있어서 기정떡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기정떡의 주재료는 멥쌀과 막걸리다. 막걸리를 활용한 대표적인 떡이 상화병 계통인 안흥 찐빵과 기정떡이 있는데, 기정떡에 막걸리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막걸리 식초는 막걸리를 그대로 사용하여 만드니, 막걸리 식초를 제외하고 막걸리를 가장 비중있게 사용하여 만드는 파생 상품이 기정떡인 셈이다.

재료로 멥쌀가루 1000g, 막걸리가 300㎖, 40℃ 정도의 물 300㎖, 소금 10g, 설탕 한 컵 200㎖를 준비했다. 멥쌀가루 1000g을 마련하려면 멥쌀이 800g 정도 필요하다. 멥쌀 800g을 잘 씻어 충분히 물에 불려야 한다. 물에 불리면 멥쌀 분량이 20~25% 정도 늘어나, 1000g이 된다. 통상 멥쌀은 물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여름이면 2시간 정도, 겨울이면 4시간 정도 담가두어야 쌀 중심까지 물이 스며든다.

그런데 기정떡은 부드럽게 발효가 되어야 해서, 떡 강사들은 물에 불리는 시간을 더 주라고 충고한다. 어느 떡집은 10시간을 불려두는데, 여름이면 쌀에서 쉰내가 날 수 있어서 물이 고여 있지 않도록 수돗물을 약간 틀어두기도 한다. 그래도 잘못하면 쌀에서 쉰내가 나는데, 기정을 만들면 쉰내가 발효향에 덮여 사라진다고 한다.

멥쌀가루를 사서 쓸 때에는 마른 가루인데, 이는 젖은 가루보다 수분이 20% 정도가 빠져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나는 2시간 동안 물에 불렸다가 30분 물빼기를 해서 돌 롤러에 쌀을 빻았다. 멥쌀가루는 중간체에 내려 쌀가루들이 뭉치지 않게 하고 쌀과 쌀 사이에 공기층이 많이 형성되게 했다.

촉촉한 멥쌀가루 1000g에 생막걸리 300㎖ 미지근한 물 300㎖ 설탕 200㎖ 소금 10g을 넣고 반죽했다. 생막걸리를 이용하는 것은 술 속에 들어있는 효모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막걸리 속의 효모는 반죽 속의 설탕을 먹고 알코올과 기포를 새롭게 형성할 것이다. 그래서 기정떡은 들어간 설탕량보다 더 적은 단맛을 내게 된다.

멥쌀가루 1000g에 막걸리와 물을 합쳐 600㎖이니 수분의 분량이 60%다. 이는 기정떡을 만들 때의 수분 비율 치고는 적은 양이다. 농촌진흥청에서 소개한 기정떡 제조법에는 마른 멥쌀 1000g에 막걸리와 물이 합쳐서 1000㎖로 같은 분량이었다. 통상 마른 멥쌀가루 분량의 80~100%, 젖은 멥쌀가루 분량의 60~80% 가량의 수분이 들어가는 게 기정떡이다. 떡 중에서 가장 무르고 질게 반죽하는 게 기정떡이다.
 

35~40℃를 유지하기 위해 여름에도 담요를 씌워주다. ⓒ 막걸리학교

 
그런데 기정떡의 어려움은 반죽한 뒤부터 시작된다. 반죽하고 나서 충분히 발효시켜야 한다. 반죽을 큰 그릇에 담아 비닐 랩으로 씌우고 위에 두툼한 보를 덮어 35∼40℃의 온도가 유지되도록 하여 4∼5시간 정도 1차 발효시킨다. 1차 발효 후 반죽이 2배 정도로 부풀어 오르면 나무주걱으로 휘저어 탄산가스를 뺀 후, 다시 덮어 2시간 정도 2차 발효시킨다.

2차 발효 후 반죽이 다시 부풀어 오르면 다시 잘 저어 탄산가스를 뺀 후 찜통에 베보자기를 깔고 발효된 반죽을 2∼3㎝ 두께로 붓거나 작은 증편 틀에 기름을 고루 바르고 반죽을 80%쯤 부어 고명으로 대추채와 석이채를 얹고 잣과 흑임자로 장식한다.
 

반죽이 부풀어올라 금이 가기 시작하다. ⓒ 막걸리학교

 
반죽 발효 시간만해도 7시간이다. 그래서 기정떡 수업을 하는 강사들은 8할은 강사 혼자 준비한다고 아주 번거로운 '강사떡'이라고 부른다. 기정떡을 잘 만들려면 효모를 잘 다뤄야하고, 35∼40℃를 유지시켜줘야 하고, 3차례에 걸쳐 탄산가스를 빼주어야 한다. 따뜻한 온도가 필요하니, 여름에 만들기 좋아 기정떡을 여름떡이라고 한다. 그래서 온도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떡집은 겨울에 기정떡을 만들지 않는다.

반죽 발효가 다 끝나면 반죽이 처음보다 더 흐물흐물해진다. 어느 떡집 주인의 비법은 그 반죽의 상태가 일식집의 초장처럼 흘러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홀홀하고 가볍게 반죽이 삭아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삭히면 떡에 쓴맛이 강해져서 맛의 조화가 깨지니 무턱대고 오래 둘 수도 없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떡 시음회를 했던 이의 말을 들으니, 외국인들이 시식을 할 때는 모든 떡이 맛있다고 말하더니, 막상 개인별 시음평가지를 회수하여 보니 기정떡이 가장 인기가 있더라는 것이다. 빠삭거리는 빵을 즐기는 외국인들에게 끈적거리는 찰밥이나 떡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 기정떡은 가벼운 질감 때문에 호평하더라는 것이다.

발효된 반죽을 찌는데, 약한 불에 5분, 센 불에 20분, 다시 약한 불에 5분 뜸을 들였다. 하얀 기정이 완성되었다. 막걸리 발효향이 풍겼고, 폭신했지만, 썩 만족할 만한 맛은 얻지 못했다. 반죽이 흘러내릴 정도로 삭은 것은 아니었는지, 기정떡이 좀 단단하고 쫀득거림이 남아 있었다. 쫀득거리지만 이빨에 달라붙지 않아야 하는데, 떡들이 입에 달라붙었다. 막걸리 효모의 힘, 온도 조절, 반죽의 농도, 발효 관리가 잘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어디선가 균형이 어긋나 있었다.

기정을 만들면서, 기정이 쉽지 않겠구나, 떡집의 그 부드럽고 촉촉하고 폭신함에 도달하려면 "좀 더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구나, 발효 음식이라는 게 제조법대로 한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구나, 시간과 미생물의 움직임에 충실하지 않으면 도달하기 어렵구나"를 느꼈다. 그와 함께 기정은 도전할 만하고 완벽하게 만들면 자랑할 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정을 만드는 시간은 막걸리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기정은 입맛 잃기 쉬운 여름에 만들어 먹기 좋은 매력적인 떡이다. 굳이 떡집 주인들이 빵집 주인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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