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 07:11최종 업데이트 20.04.1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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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망자 집단 매장 준비되는 뉴욕 하트섬 미국 뉴욕 시 브롱크스 인근 해역에 있는 하트 섬에서 7일(현지시간) 굴착기가 구덩이를 파면서 흙더미를 덤프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뉴욕 시는 이곳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들의 임시 매장지로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이틀 전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오늘 오후 12:20 우리 오빠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동안 기도해 줘서 고맙고 좋은 데 가시라고 계속 기도 부탁드립니다. 

숨이 턱 막혔다. 잠시 멍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한 자 한 자 다시 읽어도 같은 내용이다. 돌아가셨단다. 정오 뉴스를 보며 한숨 쉬던 그 시각에. 사과 하나 씻어 한 입 가득 베어 물던 그 시간에 말이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건강하던 분이. 

가까이에서 벌어진 비극 

그는 내가 사는 동네의 시의원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 전화하면 늘 시원한 대답을 주셨다. 항상 바쁘고 활기찼다. 길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엔 사람이 북적였고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어버이날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날엔 동네잔치를 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동네 노인들은 음식과 음악을 제공받았고 집에 갈 땐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갔다. 어느 날 내 음악 취향이 60~70대 그들 취향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침 일찍 가 음식을 서빙하고 의자를 정리하는 일은 좀 귀찮지만 보람찬 봉사였다. 모두 그의 덕이었다. 


그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은 일주일 전 지역 신문에서 알았다. 사모님께 조심스레 안부 문자를 보냈다.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몇 시간 후 걸려온 전화기 너머엔 평상시 밝았던 하이톤과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괜찮아요. 병원에 있는 사람이 고생이지."

그녀도 집에서 자가 격리 중이었다. 남편을 입원시키고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왔단다. 남편은 병원에서, 자신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중이었다. 

일주일 전 회의에 갔는데 한 사람이 기침을 많이 하더란다. 이제야 마스크를 좀 찾아 쓰지, 당시엔 아무도 쓰지 않던 때였다. 찜찜했지만 회의를 마치고 평상시처럼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러다 기침하던 그 사람이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한 걸 알고 자신도 병원에 갔다. 몸 상태가 의심스러웠을 때였다. 병원에선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며 돌려보냈다. 아내는 며칠 사이 상태가 부쩍 나빠진 남편을 차에 태우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걸어서 검진을 받으러 왔던 때와는 현저히 다른 상태가 되어 바로 입원을 한 것이다. 

"지금 산소호흡기 쓰고 누워 있어요." 

조심스레 상태를 묻는 내게 그녀가 힘없이 대답한다. 갑자기 늘어난 환자로 산소호흡기가 부족하단 얘기를 듣던 때였다. 뉴욕주에 필요한 건 3만 개인데, 4천 개만 보내겠다는 정부에게 뉴욕 주지사가 "직접 2만 6천 명의 죽을 사람을 정하라"고 했던 그 산소호흡기다. 그런 귀한 기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에 난 다행이다 싶었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 얼른 회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내가 잘 몰랐다. 산소호흡기는 자가 호흡이 힘든 이의 호흡을 도와주는 기구였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곧 털고 나오시겠다 생각했다. 너무 무지했다. 

60대 중반이면 아직 한참인 나이 아닌가.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에 나이보다 더 젊어 보였다. 다른 주에서 의사로 일하는 아들이 매일 전화로 챙긴다니 병원에서 더 신경 써주겠다 믿었다. 언제나 활력 넘쳤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병원에 누워있는 일상은 하루도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곧 뚜벅뚜벅 걸어 나오시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은 다 빗나갔다. 어떻게, 저렇게 건강하던 분이 쉽게 가실 수 있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진 서류처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분인데, 어떻게 허무하게 이럴 수 있지? 나도 며칠간 우울증에 빠졌다. 

뉴욕의 수많은 죽음들
 

지게차로 옮겨지는 뉴욕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지난 3월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한 병원에서 비닐로 싸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이 지게차에 실려 임시영안실로 사용되는 냉동트럭으로 옮겨지고 있다. ⓒ 연합뉴스/EPA


현지 시각 8일 뉴욕의 하루 사망자는 779명.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3월 1일 이후 일일 최다 숫자다. 이날 정오 기준 뉴욕주 사망자는 총 6268명, 그 옆 뉴저지는 1540명. 9.11 테러 사망자를 넘어섰다는 뉴스를 본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그 숫자가 두 배가 됐다. 그래서 오늘 뉴욕주 전체엔 애도하는 의미로 조기가 게양됐다. 

특히 사망자 중엔 흑인과 히스패닉이 많은 걸로 집계됐는데, 열악한 직종에 근무하는 인종의 구성과 비례하는 죽음의 그래프다. 

뉴욕 시의 경우 뉴욕 주 총 사망자의 2/3에 해당하는 4000명을 넘어선 상태다. 하지만 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이 엄청난 숫자에는 집에서 사망한 이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공공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의 감염이 심각하다. CNN에 의하면, 뉴욕 경찰의 20%가 코로나 증상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미 12명이 숨졌다. 뉴욕의 지하철, 버스, 기차를 운영하는 MTA 직원 중 1500여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 중 41명이 사망했다. 이들은 어제까지 도둑을 잡고 지하철을 운전하던 이들이다. 

음식을 나르던 냉동 탑차가 시신을 나르고 있다. 장례식장은 포화상태가 됐고 화장터와 묘지는 이미 수 주간 예약이 꽉 찬 상태다. 더 큰 비극은 코로나 환자는 임종 순간조차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높은 감염 가능성 때문에 가족과의 만남이 금지되어 있다. 여유가 있는 곳은 페이스타임으로 작별인사를 하게 한다지만 2분에 한 명씩 죽는 이 시점에 그런 배려는 사치가 된 지 오래다.

장례식장에선 제한된 가족들이 멀리서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뿐이다. 혹자는 사망 연락을 받고 며칠 뒤 상자에 담긴 뼛가루만 받기도 한다. 제대로 된 작별도 위로도 조의도 없다. 사망자가 많지 않고 그마저도 지병이 있던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는 비극이다. 하지만 30~40대 등 비교적 젊은 층 사망자가 많은 이곳 뉴욕과 유럽 지역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남은 이들의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

"모든 이에게 의료보험을" 외치던 샌더스의 퇴장

미국의 사망자수가 1만4700여 명이 된 날,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는 투표가 진행됐다. 공화당, 민주당 경선과 대법관 등을 뽑는 선거다. 감염 우려로 많은 주들이 투표를 연기했지만 공화당 성향이 강한 이곳에선 투표를 강행했다. 참가자가 적은 게 보수표 결집에 유리하다는 분석에서였다. 투표를 독려한 트럼프, 바이든과는 달리 버니 샌더스는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목숨 건 투표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다. 이날 민주당 대선후보 버니 샌더스는 대선 경선을 포기한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패배 이후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갖지 못하던 그가 더 이상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탓이다. 

"Medicare for All(모든 이에게 의료보험을)."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 구호는 버니 샌더스의 캐치 프레이드다. 세계 최악의 의료보험을 가진 나라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pandemic)을 맞고 있는 시점에 어느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아야 할 주제였다. 그러나 그는 초라한 경선 포기자가 되고 말았다. 일찌감치 경선 포기를 선언한 앤드류 양이 주장했던 기본소득은 트럼프 정부가 나눠주는 경기부양금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두 개를 연결 지어 얘기하지 않는다. 나라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책에 대해서 너무나 무심하고 싸늘하다.
 

기자회견 하는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11일(현지시간) 버몬트 주 벌링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AP


혹자는 그것을 '상상력의 부족'이라고 부른다.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싸워온 버니 샌더스의 꿈이 21세기 한가운데서도 '사회주의 정책'으로 폄하되는 이유다. AI 시대에 그 기류에 올라타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자는 앤드류 양은 말 잘하는 아시아인일 뿐이다. 자신만을 위한 정부를 가져본 적 없는 미국인들의 초라한 상상력은 가장 대중적인 선거라는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팬데믹은 버니 샌더스에게 무엇보다 훌륭한 선거 이슈였다. 하지만 올해 78세의 사회주의자 버니는 끝내 자신의 꿈을 대중들에게 설명해내지 못했다. 아니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를 뜨겁게 지지했던 10대, 20대 샌더스 지지자들의 열기는 현실 정치라는 벽 앞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버렸다. 민주당 경선은 전염병에 사라졌고, 1등 주자 조 바이든의 목소리는 자신의 집 지하실 인터뷰에서 가끔 볼 수 있을 뿐이다.

매일 좌충우돌하는 브리핑에도 트럼프의 인기는 높아만 가고, 가난한 이들의 삶은 실직에 돌림병에 피폐해져 가는 중이다. 진정 미국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전염병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건이 임기 4년을 더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절망은 깊어진다. 

한마디 인사도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있는 이들처럼, 지금 미국 사회는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과 풍요로움이 허상이라는 걸 목격하고 있다. 각자도생의 의료보험은 단순히 죽음과 삶을 갈라놓는 무자비한 칼날이었음을 보고 있다. 미국의 자정 작용과 건강함을 믿었던 이들은 이 시국에도 자신의 주머니 채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치판과 거대 기업의 야합에 허탈해 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아메리카 드림조차 전염병 앞에 한 줌의 연기가 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노후를 위해 풍요로운 삶을 위해 미국을 택했던 이들이 과연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회의하는 중이다.

그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나의 지인은 지역사회에 헌신하다 눈을 감은 이를 위해서 경찰 군악대를 불러 연주하게 했다. 차량통제를 하며 지역 주민들이 죽은 이를 추모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숨진 자신의 장례식엔 아무도 초대하지 못한다. 그와 40년 가까이 살았던 아내도,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손주조차.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그가 앞으로 했을 무수히 많은 일들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 것도, 아이들과 누릴 행복한 시간과, 평생 해로한 아내와 늙어갈 소소한 나날들 모두가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만약 그가 한국에서 이 전염병을 겪었다면 저렇게 억울하게 눈을 감았을까. 주변 사람 모두 안전하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더 빨리 진단하고 결과를 받아서 음압병실을 비롯해 좀 더 높은 차원의 서비스를 받았으면 말이다. 그는 살 기회가 여러 번 있지 않았을까? 그럼 그의 극복기는 또 다른 희망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 내 사망자 1만4739명(8일 기준)의 숫자를 보며 반성하게 된다. 우리 상상력의 부족이 그들의 눈을 감게 한 건 아닐까 하고. 제대로 된 정치와, 그를 통해 아름답게 발현되는 시스템이라는 그 상상력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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