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11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문듣기 등록 2020.05.01 20:34 수정 2020.05.01 20:34
샤토 마고(Château Margaux)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투르, 샤토 오 브리옹과 더불어 '5대 샤토'라 불리는 보르도의 최상급 와인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집필한 공산주의 사상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샤토 마고 1848 빈티지'라고 대답했단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이 와인을 너무 좋아해 심지어 손녀 이름을 마고라고 지었다는데. 나에게 샤토 마고는 좀 다른 의미로 각별하다. 샤토 마고 2003 빈티지가 나의 첫 해외직구 와인이기 때문이다. 와인에 빠지고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2015년 11월.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네덜란드 와인매장 홈페이지에 접속해 샤토 마고 2003을 모셔왔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매년 2회 정도 꾸준히 와인 직구를 하고 있다.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2003 ⓒ 고정미

 
 

샤토 마고 2003 나의 첫 해외직구 와인. 집에 빈병을 고이 모시고 있다. ⓒ 임승수

   
국내 마트에도 와인이 넘쳐나는데 뭐하러 직구까지 하느냐고? 타당한 지적이다. 예컨대 칠레 와인 시데랄(Sideral)은 한국의 마트에서 할인가로 3만 원대 중반인데 영국의 한 매장에서 2만 원대에 판다. 영국이 더 싸니 직구할까? 어리석은 행동이다. 비싼 해외운송비에 세금까지 고려하면 국내 구입이 바람직하다. 그런 이유로 중저가 와인은 해외직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 고급 와인은? 얼마 전 모 마트에서 프랑스 보르도의 고급 와인인 샤토 랭쉬 바쥬 2015를 할인가 19만9200원에 팔더라. 프랑스의 유명 와인매장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현지 가격(세금 포함)이 126유로, 한화로 대략 17만 원 조금 밑이다. 술에 붙는 세금이 프랑스보다 높은 것을 감안하면 국내 판매가 19만9200원은 상당히 좋은 가격이다.

이걸 굳이 프랑스에서 돈 더 들여 직구할 이유는 없다. 고급 와인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 가능한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그런 고급 할인 정보를 얻으려면 발품을 팔아야겠지만 말이다(똑같은 샤토 랭쉬 바쥬 2015가 다른 마트에서는 할인가 27만 원에 판다. 백화점에서는 훨씬 더 비싸다. 국내 와인 업계의 고질병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직구를 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잘 숙성되어 시음 적기가 된 와인을 구하기 위해서다. 앞서 언급한 샤토 랭쉬 바쥬 2015의 경우, 와인서쳐(wine-searcher)에 나오는 시음적기는 2022년부터 2043년까지이고, 셀러트래커(cellartracker)에는 2025년부터 2047년이다.

그러니 이 와인의 진가를 느끼려면 아무리 일러도 2030년 이후에 마시는 게 좋다. 잘 숙성된 고급 와인의 매력은 풋내나는 어린놈과는 비교 불가다. 전혀 다른 와인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 지금부터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와인이 무슨 관상어인가 셀러에 넣어놓고 10년 동안 감상만 하게. 나는 그런 인내심 1도 없다.
 
괜찮은 할인가의 고급 와인 대부분은 최근 빈티지다. 잘 숙성된 올드 빈티지 와인도 드물게 출몰하지만, 수량이 너무 적고 해외 가격보다 지나치게 비싸다. 포도 작황이 워낙 좋아 와인이 최고의 맛과 향을 보여줄 수 있는 해, 그러니까 보르도로 치면 1982년, 1990년, 2000년, 2005년 같은 그레이트 빈티지의 경우는 거의 보이지를 않는다. 요컨대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와인이나 10년 이상 잘 숙성되어 시음 적기가 된 고급 와인을 구매할 때 해외직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해외직구를 할 때 전적으로 도움을 받은 블로그가 있다. 바로 '와인과 떼루아(https://blog.naver.com/httpseok)'이다(운영자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의 내용은 이 블로그의 와인 직구 내용을 핵심만 간추린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다면 '와인과 떼루아' 블로그를 방문하기 바란다. 그러면 주문 경험이 있는 유럽과 미국을 기준으로 설명하겠다.
 
■ 와인 매장 찾는 방법
 
예컨대 샤토 꼬스 데스뚜르넬(Château Cos d'Estournel) 1990을 구매하고 싶다. 1990년은 보르도의 그레이트 빈티지다. 어디에서 팔까? 와인서쳐 앱을 이용하자. 와인서쳐에서 해당 와인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온다.
 

와인서쳐 캡처 화면 샤토 꼬스 데스뚜르넬 1990 관련 정보를 검색한 화면. ⓒ 임승수

 
SHOPS, TASTING NOTES, VINTAGES의 세 카테고리로 정보를 제공한다. 사진에도 나오듯 TASTING NOTES를 보면 1990 빈티지의 시음적기가 2004년부터 2035년이다. 2020년이면 이 와인의 최절정기에 접어든다. 지금 마시면 뿅 간다는 얘기. VINTAGES 항목에서 1990 빈티지를 선택하면 이 빈티지를 판매하는 매장들을 병당 판매가가 낮은 순서로 보여준다. 각 매장 홈페이지를 구글 검색으로 방문하면서 적당한 매장을 찾는다.
 
■ 와인 매장 선택 시 유의사항
 
웬만하면 유럽 와인은 유럽 매장에서, 미국 와인은 미국 매장에서 사자. 왜냐고? FTA를 적용해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서다. 와인 해외직구 때 부과되는 세금은 관세, 주세, 교육세, 부가세를 모두 합치면 구매액의 약 68% 정도다. 그런데 FTA를 적용해 관세가 면제되면 구매액의 약 46% 수준으로 경감된다.

FTA를 적용받으려면 유럽 와인은 유럽에서 사고, 미국 와인은 미국에서 사야 한다(면제 받는 구체적 방법은 나중에 쓰겠다). 또 하나 유의할 점! 한국까지 직배송해주는 매장을 선택하자. 특히 유럽의 경우 와인에 부과되는 현지 세금이 20%가 넘어, 배송대행지를 이용하면 현지 세금까지 추가로 내야 해 부담이 크다.
 
■ 관세 면제 방법
 
한국 직배송이 가능한 매장은 홈페이지에서 현지 세금을 포함한 가격과 세금을 제외한 가격을 분리해서 보여준다. 결제 과정에서 배송지를 한국으로 선택하면 현지 세금을 제외한 가격에 배송비와 소액의 보험료(배송 중 파손 관련)를 합산한 금액이 결제된다. 이러한 주문 과정에서 FTA를 적용해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유럽 와인을 구매할 때 한-EU FTA를 적용받으려면 송장(invoice)에 원산지가 유럽임을 증명하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삽입되어야 한다.
 
"The exporter of the products covered by this document declares that, except where otherwise clearly indicated, these products are of EU preferential origin."
 
그런 이유로 구매 시 유럽 와인매장 측에 해당 문구를 송장에 넣어달라고 다음과 같이 '꼭' 요청해야 한다.
 
Could you insert the specific comment and your signature on the invoice?
Just 'copy and paste' the following phrase.
 
"The exporter of the products covered by this document declares that, except where otherwise clearly indicated, these products are of EU preferential origin."

 
송장에 해당 문구가 들어가면 통관 시 관세를 면제받아 구매금액의 약 46% 정도 세금을 낸다. 이 문구가 없으면 관세가 부과되어 약 68%의 세금을 내게 된다.
 
미국 와인을 미국 매장에서 구매하는 경우, 한-미 FTA에 근거해 1,000달러 미만은 원산지 증명서가 없어도 관세가 면제된다. 다만 1,000달러가 넘는 경우는 원산지 증명서가 필요하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네덜란드의 모 매장은 UPS을 통해 한국으로 직배송해준다. 통관 시 UPS에서 연락이 오는데, 그때 FTA를 적용해달라고 요청하고 세금을 지급하면 안전하게 집으로 배송된다.
 
■ 기타사항
 
유럽 와인인데도 불구하고 미국 매장의 판매가격이 너무 착해서 관세가 포함된 68%의 세금을 내더라도 유럽 매장보다 이득이면? (거의 없겠지만) 그런 경우는 미국 매장에서 사면 된다. 만약 찾는 유럽 와인이 유럽에 없고 미국이나 홍콩 매장에만 있다면? 관세 포함 68% 세금을 내고 구입해야 한다.

직구할 때 1000ml 이하 용량 1병을 주문하면서 물품가격이 미화 150달러 이하이면 원산지 관계없이 관세와 부가세까지 면제받을 수 있다(주세와 교육세는 내야 한다). 하지만 와인 1병에 150달러 이하의 직구는 비싼 배송비 탓에 대부분 금전적으로 이득이 없다. 그런 이유로 와인 해외직구를 하는 이들은 목돈이 들더라도 한 번에 3병 이상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직구로 구입한 와인들 2016년 3월 4일에 집에 도척했다. 한 번에 네 병을 구매했다. ⓒ 임승수

   
이 글 쓰면서도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다. 첫 해외직구 와인인 샤토 마고 2003이 별로였으면 나도 이 지경까지는 안 왔다. 2015년 12월 25일의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와인을 전혀 모르던 시절, 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다가 주인공 시즈쿠가 사토 마고를 마신 후 감탄사를 연발하며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리는 걸 보고 '염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5년의 크리스마스 밤, 내가 '염병'하고 있더라.

첫 주문 버튼을 누르기 전에 향후 벌어질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딱 한 번만 생각하자.
댓글1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인포그래픽 뉴스를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