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 20:19최종 업데이트 20.07.12 11:08
  • 본문듣기
 

2020 싱가포르 총선 결과. 빨간색이 여당인 인민행동당, 파란색이 야당인 노동당의 당선을 표시합니다. 이 결과를 두고 야당의 역사적 승리라 합니다. ⓒ The Straits Times

 
10일 치른 싱가포르 총선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당인 인민행동당(PAP: People's Action Party)이 83석, 야당인 노동당(WP : Workers' Party)이 10석을 얻어 결과적으로 집권여당의 참패, 야당의 대승입니다. 여기서 잠깐, 여당이 83석이고 야당이 10석인데 어떻게 '집권 여당의 참패'이고 '야당의 대승'이라고 쓸 수 있냐고요?

이해를 위해 일단 지난 2015년 선거결과를 보겠습니다. 당시 전체 92석 가운데 여당이 83석을, 야당이 9석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야당이 차지한 9석 가운데 실제로 지역구에서 이겨서 얻은 의석은 두 지역구의 6석에 불과하고, 나머지 3석은 전체 야당 의석 수가 9석이 되지 않을 경우 가장 높은 득표율로 떨어진 야당 후보로 채우는 무선거구 의원(NCMP : Non-Constituency Member of Parliament)입니다.
 

싱가포르 독립 이후 역대 선거 결과. 처음 4번은 야당 의석이 하나도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2020 선거에서 야당은 무선거구 의원 2석을 포함해 모두 12석을 차지했습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 독립 이후 치른 4번의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이 모든 국회 의석을 차지하게 되자 국회에 야당 의원도 있어야 한다며 만든 제도가 바로 무선거구 의원 제도입니다.

2010년 이후로 최대 9명을 선출할 수 있었고, 2017년 이후로는 12명으로 늘었습니다. 무선거구 의원 제도를 도입해야 할 만큼 야당이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는 것이 힘든 게 지금까지 싱가포르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93석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여당은 지난 선거와 같은 수인 83석을 얻었고, 야당인 노동당은 지역구에서만 10석을 얻었습니다. 야당의 지역구 의석 10석은 싱가포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리셴룽 수상의 동생인 리셴량이 여당의 승리를 막아야 한다며 입당한 또 다른 야당 전진싱가포르당(PSP : Progress Singapore Party)은 무선거구 의원 2명을 배출했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싱가포르 총선은 늘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기 때문에 여당의 의석 수 보다는 여당이 얻는 지지율의 추이가 더 중요한 지표로 여겨졌습니다.

싱가포르 독립 이후 첫 선거인 1968년 선거에서 86.7%를 기록했던 여당의 지지율은 그 후 70%대를 거쳐 1984년 선거에서 60%대로 떨어졌습니다. 2011년 선거에서는 역대 최저인 60.1%까지 떨어지고, 야당이 지역구에서 6명이나 당선되면서 리콴유 초대 총리가 정계를 완전히 은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치르는 싱가포르 총선. 리셴룽 총리가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을 착용한 채 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 리셴룽 총리 페이스북

   
이번 선거의 여당 득표율 61.24%는 2011년 당시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역대 최저 수준의 지지율입니다. 그가운데 지역구에서 야당 의원이 10명이나 당선되는 전례없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선거 결과가 싱가포르에 어떤 변화를 가져 오게 될지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선거 결과가 나온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셴룽 총리는 "기대한 만큼 높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인민행동당에 대한 폭 넓은 지지를 확인했다"면서도 "이번 결과는 싱가포르인들이 코로나19 사태에서 느끼는 고통과 불안을 반영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이후 대부분의 사업장이 두 달 이상 문을 닫으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정한 조건 하에 문을 열기는 했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시내 상점과 관광지는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안전 거리를 유지하고, 손을 소독하는 등의 조치를 한 후 투표를 하게 되면서 투표소 곳곳에서 긴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정부는 투표 시간을 오후 10시까지 연장했는데 그 과정에서 야당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코로나19가 이번 선거 과정과 결과에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투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투표소마다 긴 줄이 만들어졌고, 결국 투표시간을 10시로 연장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 이봉렬

 
이제 선거는 끝났습니다. 여당의 참패와 야당의 대승으로 새로운 변화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세습정치에 일당독재국가로 비판을 받는 싱가포르지만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선거를 치르고 그 결과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맞습니다. 시민들의 투표 참여가 세상을 바꾸는 것을 이곳 싱가포르에서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