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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8.23 20:24 수정 2020.08.23 20:24

어느날, 쪽지가 왔다

지난 6월 22일 오마이뉴스 계정 쪽지함에서 새 쪽지를 발견했다. 발신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수입하는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였다. 와인 연재 글을 재미있게 보고 있으며 회사에서 수입하는 와인을 소개하고 싶어 용기를 내 쪽지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제 메일로 와인 받으실 주소 남겨주시면 저희 와인 브로셔와 함께 제품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다. 특히 이 부분은 메아리가 되어 머릿속에서 울렸다.

'제품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품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품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품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수입사에서 이런 연락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와인 지식도 일천하고 경험치도 적은 데다가 좌충우돌 우왕좌왕 음주 생활을 날것 그대로 글에 담았으니, 업계 관계자나 전문가 눈에는 얼마나 철딱서니 없어 보였겠나. 수입업체 입장에서는 와인 유튜버, 전문 기자, 소믈리에, 레스토랑 관계자 등 신경 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서 아내와 마시는 애호가 수준의 나에게는 연락 없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데 내 글을 유심히 챙겨 봐주고 수입하는 와인도 보내주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게다가 딱히 조건을 단 것도 아니고 단순 홍보 및 판촉용 와인이니, 막말로 받아도 켕길 것 없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 호의를 사양하는 메일을 썼다.
 
◯◯◯ 과장님, 안녕하세요. 페이스북 친구 신청하신 것도 반갑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부족한 구석이 많은 연재 글인데 즐겁게 보신다니 그저 민망한 마음입니다. 와인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일천한데, 진정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어떻게든 쓰고 있습니다. 변변치 않은 글이지만 그래도 나름 고심하며 쓰는 과정에서 와인을 마셨던 경험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그때마다 특히 '가성비'가, 제가 와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더군요.

그런데 직접 비용을 치르지 않는 경우, '가성비'를 평가하는 것이 애매하고 어렵더군요. 물론 해당 와인의 가격을 염두에 두고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어림짐작하는 것과 직접 돈을 지불하는 것은 확실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너무 감사한 제안을 주셨는데, 그러한 저의 작은 기준 때문에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 부탁드립니다. 대신 수입하시는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매장을 알려주시면 여건이 될 때 제가 직접 구입해서 마시겠습니다. 수입하시는 와인 중에 특히 재구매율과 평가가 좋은 와인의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뒷광고도 아니고, 왜 먼저 보내주겠다는 홍보용 와인마저 거절하는지 의아해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예컨대 홍보용으로 받아서 마신 와인의 맛과 향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연재 글에서 다루고 싶다 치자. 그런데 돈 들이지 않고 마셨으니 '가성비'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같은 풍미더라도 해당 와인이 2만 원대냐 10만 원대냐에 따라 가성비는 확확 달라지지 않는가.

게다가 아무리 판촉용으로 받은 와인이라 하더라도 공짜로 마신 건 사실이니, '내돈내산'을 표방한 입장에서는 양심에 걸려 소개하기 껄끄럽다. 감사해 마지않을 호의가 본의 아니게 족쇄가 되는 셈이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내가 너무 까탈스러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둑이 무너질 때도 언제나 작은 균열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중히 고사하는 메일을 보내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답장이 왔는데, 수입하는 와인 중 세 가지를 추천하며 모두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살 수 있다는 거였다. 홍보용 와인을 고사하긴 했으나, 연재 글에 보여준 호의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인근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셋 중 이 와인을 2만4980원에 구입했다.

- 마리에타 아르메 카베르네 소비뇽 2016 (Marietta Armé Cabernet Sauvignon 2016)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 지역 와인인데, 마리에타(Marietta)는 와인 제조사, 아르메(Armé)는 제품명,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은 포도 품종이다. 와인 서쳐(Wine-Searcher) 앱으로 해외 거래가를 확인하니 이마트 트레이더스 구입가와 큰 차이가 없는 것 아닌가. 해외 거래가 대비 두 배 이상 뻥 튀겨 파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참으로 은혜로운 가격이다.
 

마리에타 아르메 카베르네 소비뇽 2016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 지역 와인이다. 풍미에서 모난 데 없는 균형감이 인상적이다. ⓒ 임승수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은 다소 과한 과실 및 오크 풍미로 찐득하게 들이대는 스타일이 흔한데, 이 녀석은 풍미에서 모난 데 없는 균형감이 인상적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밸런스 좋은 와인을 선호하는 나에겐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열어서 바로 마셔도 마치 한 시간 이상 브리딩 한 것처럼 부드럽고 매끈했다. 2만 원대에서는 가성비로 누구랑 견줘도 뒤지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다음에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방문하면 한 병 추가로 구입해야지.

이 기사, 뒷광고 아니냐고?

그나저나 최근 소위 '뒷광고'가 이슈이다 보니, 내 와인 연재 글에도 광고 아니냐는 댓글이 종종 달린다. 지난 연재 글의 포털 사이트 댓글에는 소개한 와인 세 개가 모두 특정 수입사 것 아니냐며 나름 근거까지 들이밀더라. 전직 대통령의 발언을 빌려 이렇게 답을 해주고 싶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관련 기사] 이 가격에 드문 나파밸리 와인, 발견하면 즉시 사세요
 

포털 사이트 댓글 최근 소위 ‘뒷광고’가 이슈이다 보니, 와인 연재 글에도 광고 아니냐는 댓글이 종종 달린다. 어떤 사람은 A수입사와의 관계를 의심했다. ⓒ 임승수


우선 사실관계가 틀렸다. 세 개 중 둘은 A업체에서 수입했고 하나는 다른 수입사다. 참고로 연재 글에서 소개하는 와인 중 A업체 수입 와인의 비중이 다소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나는 2015년에 와인의 매력에 빠진 후 집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이마트 영등포점을 주로 이용한다. 한마디로 단골이다.

거기서 줄곧 나에게 와인을 소개해주는 분이 '하필이면' A업체 직원이다. 그런 탓에 다른 수입사 와인에 비해 A업체의 와인을 좀 더 구입하는 편이다. 이마트 영등포점 지하 2층 와인 매장에서 A업체 직원을 찾아 <오마이뉴스>에 와인 글 연재하는 임승수 아느냐고 물어본다면, 2015년부터 지금까지 매번 가족 동반으로 장보러 와서 와인 산다고 할 거다. 우리 애들의 성장 모습도 기억할 정도다.

잘 키운 단골 하나라면 열 소비자 안 부럽다. 와인 글 연재하는 내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뭔가 궁금한 것도 많고 구입할 때 갈등하고 고뇌하는 사람일수록 와인에 진지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면, 무럭무럭 자라나 와인교 전도사로 성장한다(바로 나다). 언제나 그렇듯 당장 와인 한두 병 더 파는 것보다 고객과 신뢰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다. 나 또한 그동안 독자와 쌓은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단순 판촉용 와인까지 거절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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