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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10.15 07:06 수정 2020.10.15 07:06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식비를 0원으로 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건강 유지를 위해 영양 보충이 필요해서 땅콩잼을 먹어요.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하기엔 가장 싸고 좋더라고요.” 30년 넘게 대학동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이민수(53, 가명)씨의 주식 중 하나는 ‘땅콩잼’이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부실한 식사를 하면서 부족해진 단백질과 지방을 보충하기 위해 선택한 그만의 ‘보약’이다. 인터넷에서 4000~5000원이면 살 수 있는 땅콩잼 1kg은 그의 한 달 치 양식이다. 서울 유명 사립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지난 1991년 대학동 고시원에 자리 잡았다. 고시원은 ‘법관’이 되기 위해, 잠시 스쳐가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했다. 1평 미만으로 협소한 고시원방도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법시험에서 계속 고배를 마셨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기까지 그의 이름은 합격자 명단에 없었다. 징검다리로 생각했던 고시원 생활은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흰 머리도 어느새 성성하게 자라있었다. “과거에는 집에서 도움을 받았는데, 나이가 30세 중반 정도 되고 지원이 끊어졌어요. 그때부터 제가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가족들이랑은 연락을 안하고, 친구들과도 만나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부조나 축의도 해야 하고, 그런 게 부담돼서 모임에 안나가다보니 대부분 관계가 끊어졌어요.” 아르바이트로 번 60만~70만원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그는 현재 월 13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산다. 대학동에서도 10만원대 고시원은 시설이 가장 열악한 축에 속한다. 말 그대로 잠만 자고 가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생활을 하려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곰팡이와 바퀴벌레보다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소음이다.

명문대 졸업 후 거듭된 실패,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

“제일 열악한 곳에 살았어요. 겨울에 물기가 묻은 수건이 딱딱하게 어는 방에도 있어봤어요.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대부분 방음이 안 되는데 그게 제일 힘들어요.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서로 공부하는 심정 다 아니까 서로 배려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니거든요. 전화를 한 시간 동안 큰 목소리로 한다거나… 벽만 있다 뿐이지 바로 옆에 있는 거랑 똑같거든요.” 그럼에도 그는 기나긴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정신을 바짝 잡았다. 사법고시가 폐지된 뒤, 이씨는 세무사로 공부 방향을 틀었다. 한때 무료급식소의 도움을 받아 식사를 해결했지만, 기대는 습관이 생긴다면서 발걸음을 끊었다. 아침은 마트에서 사온 채소, 점심은 즉석 카레로 해결하고 저녁은 땅콩잼 한 숟가락을 먹는다. 매일 턱걸이를 하면서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예전에 치아가 안 좋아서 그대로 방치했다가 치료비로만 1000만원 넘게 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1000만원을 몇십 개월에 걸쳐서 갚느라 고생했던 그는 몸이 망가지기 전에 관리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돈이 충분히 생기면, 우선 맛있는 것을 많이 사먹고 싶어요. 가진 것도 없고 흔한 말로 도움 받을 데도 없고, 유산 받은 것도 없고 이렇게 가선 안 되잖아요. 정상적인 삶의 형태로 돌아가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잖아요. 아직 포기 안했는데 결혼 생각도 있어요. 일단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요.” 이씨는 지난 6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다시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얼마 뒤 연락을 취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립된 삶을 선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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